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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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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구 탈출이 까발린 동물원의 민낯

탈출한 동물들이 던지는 여러 겹의 문제제기… ‘동물의 정치적 권리’ 향해 먼 길 나설 때
등록 2026-04-16 19:50 수정 2026-04-19 20:55
대전 오월드 동물원 탈출 이후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늑대 ‘늑구’가 2026년 4월13일 밤 10시43분께 오월드 인근 야산에서 목격됐다. 사진은 목격한 시민이 찍은 영상 갈무리. 연합뉴스

대전 오월드 동물원 탈출 이후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늑대 ‘늑구’가 2026년 4월13일 밤 10시43분께 오월드 인근 야산에서 목격됐다. 사진은 목격한 시민이 찍은 영상 갈무리. 연합뉴스


2026년 4월13일, ‘늑구’ 탈출 엿새째. 생후 2년의 수컷 늑대 늑구는 대전 오월드에서 약 1.8㎞ 떨어진 야산에서 잠시 포착됐다가 다시 사라졌다. 대전시는 부상 없이 생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8년 9월 같은 시설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당한 퓨마 뽀롱이가 자꾸만 생각난다.

늑구의 탈출이 화제가 되자 늑구 코인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소셜미디어 엑스(X)에 ‘Neukgu’라는 영문 계정이 개설됐다. 여기에는 “늑구는 독립적이다” “나를 절대 찾지 못할 것” 등 늑구를 의인화한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국외에서도 “자유를 찾아 떠난 늑대”의 서사에 열광했다. 물론 늑구 코인 홍보 역시 함께 흘렀다.(현재 계정은 정지된 상태다.)

늑구 코인은 사건의 화제성을 팔아 투기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밈코인’이다. “밈이 마음에 들면 매수하고 오르면 팔라”고 명령하는 밈코인은 화폐로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바이럴 효과에 의존한다. 말하자면 늑구의 안전을 비는 마음을 채굴해 돈을 버는 투기의 장이 열린 셈이다. ‘외로운 늑대’라는 관습적인 ‘아웃사이더’ 서사는 그저 인간의 욕망을 투영한 엔터테인먼트다.

퓨마 뽀롱이, 얼룩말 세로, 타조 타롱이, 늑대 늑구, 그리고 인간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탈주 동물들. 사실 동물원의 착취적인 성격은 일상적이지만, 도심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낯설고 위협적인 광경을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 동물은 이 기이한 시스템에 잠깐이나마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나눠야 할 이야기, 만들어가야 할 변화가 있다.

 

동물원, 제국주의의 산물 또는 무기

 

우선, 동물원은 어떤 공간일까. 진귀한 생명체를 모아다가 가둬놓고 즐기는 이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대 바빌로니아, 중국, 그리스 등에서 이미 권력자들이 동물을 전시해서 권력을 과시하는 문화가 발견된다. 이런 과시성 컬렉션은 중세 유럽의 머내저리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는 점차 ‘근대적 동물공원’으로 전환됐고, 동물원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의 상징이 된다.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배타적 공간이 근대화를 지나면서 시민 교육과 과학 연구를 위한 ‘평등한’ 공간으로 재정의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동물원은 여전히 대상화된 ‘자연’을 수집해서 인간의 입맛에 맞게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장치였다. 제국주의적 침탈 과정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포획된 동물들은 낯선 땅으로 끌려와 서구인들의 볼거리로 재배치됐다. 동물원의 구성 원리인 동물학(Zoology)은 계몽주의 시대, 서구인들이 ‘문명’의 반대편인 ‘야만’으로 규정한 존재들 위에 군림하는 필수적인 무기이기도 했다.

20세기가 되면 동물원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바로 독일의 동물상인 카를 하겐베크가 주도한 ‘하겐베크 혁명’이다. 그는 자신에게 동물을 ‘납품’하는 사냥꾼들의 잔혹한 밀렵 행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이런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동물 친화적’ 동물원 환경을 개발한다. 1907년 창살 대신 해자가 등장했고, 더 ‘자연에 가까운’ 시설이 만들어진다. 이는 이후 동물원과 민속촌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니겔 로스펠스, ‘동물원의 탄생’)

1970년대가 되면 전 지구적으로 생태계를 교란하는 과도한 밀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야생동물과 식물의 거래를 규제하는 국제협약이 체결된다. 1973년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주최한 회의에서 비준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다. 이에 따라 목록에 올라간 야생동물의 수출과 수입이 규제된다.

협약은 동물원이 종 보존 및 번식의 장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번식 프로그램은 새로운 동물을 포획할 수도 구매할 수도 없게 된 동물원이 사업 유지를 위해 합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시설 운영의 허구적 구실, ‘종 보존’

 

물론 시작이 그러하였으므로 끝도 그러하리라는 법은 없다. 다만 오월드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종 보존이니 번식이니 하는 것은 실제로는 시설 운영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기능하기 쉽다.

동물권 단체인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2026년 4월8일 발표한 성명에서 오월드가 추진해온 한국늑대 ‘복원’ 사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오월드의 늑대는 “러시아 사라토프주에서 포획한 늑대”를 수입한 것으로 “한반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히말라야늑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곰보금자리는 “한국늑대”의 “복원”도 번식을 반복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짚는다. 게다가 이렇게 번식된 개체들은 다른 동물원으로 옮겨져 “계속 전시된다”.

종종 동물원은 종 보존의 궁극적인 목적이 ‘야생 복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동물원의 번식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간 종은 매우 극소수이며, 실제 이게 가능한 것은 조류 정도뿐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북극곰, 코끼리, 고래, 유인원은 특히 더 동물원 생활에 맞지 않는다. 애초에 광대한 공간을 누비며 생활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동물원 문제는 비인간 동물에게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늑구 탈출의 구조적 문제로 지목된 사육·관리 체계도 살펴봐야 한다. 곰보금자리는 “동물 탈출은 대부분 기본적인 관리 절차 미준수에서 발생한다”며 “2인 1조 근무 원칙 등 최소한의 안전 체계만 지켜도 예방 가능한 사고”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현장 사육사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끝내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으며, 사육사들 역시 위험으로 내몰리곤 한다.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2026년 3월18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 개최에 앞서 열린 언론설명회에서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2026년 3월18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 개최에 앞서 열린 언론설명회에서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리할 것인가,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

 

늑구 탈출 전, 한국 사회에선 동물 착취를 둘러싸고 또 하나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러 동물을 자신의 작품활동에 착취적으로 활용해온 ‘세계적인 아티스트’ 데이미언 허스트의 국내 전시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는 ‘예술의 자유’와 ‘생명윤리’ 사이의 긴장을 드러냈다. 그리고 동물의 안녕을 인간의 권리 아래 두는 사고방식으로는 인간이 유구하게 휘둘러온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허스트와 늑구를 한자리에 놓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게 된다. 인간은 동물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쯤에서 우리는 질문을 좀더 근본적인 층위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동물은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권리를 가진 주체인가. 이와 관련해 최근의 법적 논의는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6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침팬지 ‘세실리아’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적 장치인 ‘인신보호영장’을 통해 동물원에서 벗어나 훨씬 침팬지‘답게’ 생활할 수 있는 침팬지 생크추어리(보호구역)로 이송됐다. 이는 영장류가 법적 인격으로 인정된 지구 최초의 사례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앨러스데어 코크런)에 따르면 법적 인격을 가진다는 건 동물이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간주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동물이 법적 권리를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물보호법’처럼 한국의 법제도 안에서도 동물은 이미 (제한적이나마)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물이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포함될 수 있는가를 타진해야 한다. 이른바 ‘동물의 정치적 권리’ 논의는 동물이 단순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공공선의 구성 요소로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이는 동물의 이해관계가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돼야 함을 의미한다. 예컨대 서식지 파괴, 산업 축산, 동물원 운영 등은 더 이상 인간의 효용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동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표성을 부여하는 방식, 예컨대 옴부즈맨, 시민단체의 개입, 또는 제도적 대리인 설정 등을 통해 그들의 이해관계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일 수는 있다.

동물에게 정치적 성원권을 부여하자니,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결국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우리는 동물을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갈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 이렇게 보면 그렇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다.

 

동물원에서 생크추어리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인간이 동물원을 자연문화의 일부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동물원 자체를 당장 폐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동물원의 동물이 다음의 다섯 가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 목마름·배고픔·영양실조로부터의 자유. 둘,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셋, 고통·부상·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넷,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다섯, 공포와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로브 레이들로,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그러나 이것이 고귀한 동물의 삶을 위한 충분조건일까 하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또 다른 방안이 제출돼 실천되고 있다. 바로 생크추어리로의 전환이다. 생크추어리는 관상용 전시가 아닌 동물의 삶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한 환경 개선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체험형 동물원이나 실내 동물원처럼 동물을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을 통해 관람객이 배울 수 있는 건 오히려 생명의 대상화와 생명 경시라는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한국에서도 법적·제도적 변화는 시작됐다. 2022년 12월 이뤄진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은 무분별한 시설 운영을 제한하고, 동물 복지를 중심에 두는 방향을 지향한다. 그러나 역시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동물원 이후의 세계를 더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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