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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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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패 돌풍’으로 32강 진출… 52만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쓴 기적

평화와 민주주의도 실력, 월드컵 정신을 소환하다… 서아프리카 작은 섬나라가 세상에 알린 당당함, 환대, 포용의 DNA
등록 2026-07-02 21:35 수정 2026-07-03 19:07
2026년 6월21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가든스의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H조 카보베르데 대 우루과이 경기 시작 전, 관중석에서 카보베르데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6월21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가든스의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H조 카보베르데 대 우루과이 경기 시작 전, 관중석에서 카보베르데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날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H조 우루과이 대 카보베르데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케빙 피나(6번)가 팀의 첫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 득점은 카보베르데의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이다. AFP 연합뉴스

이날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H조 우루과이 대 카보베르데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케빙 피나(6번)가 팀의 첫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 득점은 카보베르데의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이다. AFP 연합뉴스


 

2020년 나는 아프리카 공부를 하는 동료들과 함께 ‘아프리카마치’(Africa March·아프리카여 행진하자)라는 모임을 만들어 첫 책 ‘카보베르데, 당신이 모르는 아프리카’를 세상에 내놓았다. 실은 당신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몰랐던 나라였다. 아프리카를 조금 먼저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급히 공부한 지식을 갖고 카보베르데를 아는 척하며 이런 나라도 알아야지, 잘난 척하며 훈계하듯 내민 책이었다.

2026년 카보베르데가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 처음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줄어들어 월드컵의 존재마저 희미해지던 차에, 몇 년 만에 내 귀를 사로잡은 카보베르데라는 이름은 2020년 무렵의 뜨거웠던 학구열과 사명감,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사이 나는 아프리카학도에서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아프리카학부에 갓 입학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아프리카 입문’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아프리카의 카보베르데라는 나라가 처음으로 월드컵에 진출했대. 너희 카보베르데, 들어봤니?” 모두 눈을 껌뻑거렸다. 나는 아프리카를 전공하겠다고 나선 학생들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백㎞나 떨어진 이 작은 섬나라가 월드컵에 진출한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설명했다. 아이들도 신기함과 호기심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는 게 느껴졌다.

강의와 연구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월드컵과 카보베르데가 뇌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6월 말의 뜨거운 오후,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한겨레21이 우리 ‘아프리카마치’에 월드컵에서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카보베르데에 관한 원고를 청탁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카보베르데가 전통의 강호 스페인·우루과이와 무승부를 펼치며 월드컵에서 뜻밖의 선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카보베르데는 사우디아라비아와도 비기며 32강에 안착했다.

월드컵에 난생처음 출전하는 이 작은 나라, 아프리카에서도 존재감이 미약한 나라가 ‘자력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다니! 카보베르데의 선전이 한때 이 나라를 알리는 데 순수한 열정을 바쳤던 모임 ‘아프리카마치’의 업적인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움이 꽃피운 환대 문화

서아프리카 세네갈 해안에서 약 600㎞ 떨어진 곳에 있는, 섬 10개와 작은 무인도들로 이루어진 카보베르데는 사람들이 아프리카 지도를 그릴 때 누락되기 쉬운 쓰라린 운명을 타고난 나라다. 대륙의 이미지로 각인된 아프리카에 이런 군도 국가가 있다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아프리카 배지나 마그넷 같은 굿즈를 만들 때도 카보베르데까지 포함해 제작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카보베르데가 낳은 세계적인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 위키미디어

카보베르데가 낳은 세계적인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 위키미디어


카보베르데는 처음 이 나라를 접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계 문화에 기여하고 있다. 비록 소수이겠지만 ‘세계음악’ 애호가들은 세자리아 에보라라는 이름을 꽤 친근하게 느낄 것이다. 카보베르데를 세계에 알린 전설적인 ‘맨발의 디바’ 말이다. 거기에 애상적인 멜로디의 ‘소다드’(Sodade)를 떠올린다면 카보베르데를 이해하는 첫 관문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에보라의 삶과 음악이 이산과 그리움의 정서로 가득한 카보베르데인의 애환을 무심한 듯 처연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유독 이산의 아픔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을까. 생각해보라. 대륙 본토에서 한참을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섬 위에 살고 있다면 흡사 유배지에 갇힌 느낌이 들지는 않을까? 어서 이 답답한 곳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들처럼 돈도 벌며 인간답게 살고 싶지는 않을까?

그래서 피가 펄펄 끓는 젊은이에게 카보베르데는 머물기보다 떠나야 하는 곳이다. 이는 꿈이 아닌 생존이 걸린 문제다. 화산섬에서 무엇을 기대하랴? 노동력이 있는 청년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벌이를 찾아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번 돈을 가족에게 보내야 한다. 디아스포라가 약 150만 명으로 50만 카보베르데 인구의 세 배나 되고, 그들이 카보베르데 은행에 예치한 누적 예금 규모는 2025년 기준 5억4천만유로(약 93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 무대로 나오기 이전의 에보라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뭍으로 떠나보내야 했고, 그리움에 사무친 채 아버지가 다른 세 아이를 홀로 키워야 했다. 항구의 선술집에서 거친 바다로 나아가는 선원들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음악마저 삶을 지탱하지 못할 때는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이 모든 이야기와 상념이 아스라이 담긴 그의 노래에 사람들의 가슴은 뜨거워진다.

 

노예무역과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

 

카보베르데 지도

카보베르데 지도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고 가뭄이 잦은 화산섬의 척박한 환경에, 가족과 연인을 멀리 떠나보낸 뒤 천형과도 같은 그리움까지 더해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이 고립된 섬에서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삶 자체로 터득한 카보베르데인들은 자신의 불리한 운명을 “누구든 우리 섬에 오면 따뜻하게 먹이고 재워준다”는 환대 문화로 승화했다.

모라베자(Morabeza).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이 자던 침대마저 기꺼이 내어주는 호의, 처음 보는 여행자조차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는 카보베르데인 특유의 미소는 바로 이 모라베자에서 나온다. 나만의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말라는 선언이 무엇보다 절대적 규범으로 군림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카보베르데인의 모라베자는 감동적이지만 몸소 실천하기는 힘든, 아득히 먼 문화적 가치다.

사실 모라베자 정신은 노예무역과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는 고립된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15세기 포르투갈 항해자들에게 발견된 뒤 유럽인들의 정착이 이어지며 대서양을 오가는 배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항구가 되었다. 나아가 대서양의 노예무역이 본격화하면서는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신대륙으로 끌려가기 전 머물렀던 비극의 중계 기지가 되었다.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팔려 가기 전, 좁은 섬에 갇힌 채 쇠사슬과 채찍의 공포를 견뎌야 했던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척박한 화산섬을 통치하며 그들과 부대껴야 했던 포르투갈인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던 이 삼엄한 노예무역과 식민지배의 숨 막히는 공간 속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 생존을 위해 서로의 언어와 핏줄,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삶의 양상을 섞어가며 ‘크리올’(Creole)이라는 독특한 혼종 문화를 빚어냈다.

물론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나라가 식민지배와 노예무역의 비극을 겪었다. 그럼에도 왜 유독 카보베르데만이 이토록 유연한 포용의 공동체를 일궈낼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이 섬이 본래 단 한 사람도 살지 않던 ‘완벽한 무인도’였다는 사실에 있다. 1462년 포르투갈인들은 이곳에 첫 정착지를 건설한 뒤, 섬을 개간하고 농장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까운 서아프리카 본토에서 흑인들을 강제로 끌고 왔다. 카보베르데의 인류 역사는 포르투갈이라는 지배자와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라는 피지배자의 ‘동시 유입'으로 시작된 셈이다.

 

유럽도 아프리카도 아닌, 그 모두인 혼종성

 

카보베르데 거리를 걷다보면 흑인이라 하기엔 너무 흰 사람들, 백인이라 하기엔 너무 검은 사람들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유럽도 아프리카도 아닌, 그러나 그 모두이기도 한 이 독특한 혼종성은 카보베르데인을 섣부른 배척이나 갈등 대신 포용과 조화를 선택하는 인간으로 길러냈다. 흑백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서로를 ‘타인’이 아닌 ‘우리’로 품어 안는 삶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이는 단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만이 옳다고 우기지 않는 것, 각자가 처한 상황과 역할, 경험이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가변적인 정체성을 인정하는 태도다.

카보베르데의 반식민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인 아밀카르 카브랄. 위키미디어

카보베르데의 반식민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인 아밀카르 카브랄. 위키미디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삶이 한데 뒤엉켜 만들어진 크리올 고유의 이중성과 유연함은, 식민지배를 벗어나는 투쟁과 독립 초기 과정에서 800㎞나 떨어진 기니비사우와 ‘하나의 국가’를 세우려 했던 반식민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 아밀카르 카브랄의 거대한 정치적 상상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카브랄의 암살과 독립 이후의 이해관계로 인해 연합국가의 꿈은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가 심어놓은 통합과 대화의 디엔에이(DNA)는 카보베르데의 단단한 뼈대가 되었다.

정치적 불안정을 겪는 대륙의 여러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카보베르데가 보기 드문 평화적 민주주의를 일궈낸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계를 허물며 자라난 크리올의 포용 정치가 국가 안정의 값진 열매를 맺었다.

2002년부터 월드컵의 문을 두드린 카보베르데는 마침내 24년 만인 2026년, 세계 무대에 입성했다. 스페인과는 0 대 0, 우루과이와는 2 대 2, 사우디아라비아와는 0 대 0으로 비기며 32강에 올랐다.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았고, 그렇다고 누구도 짓밟지 않았던 이 세 번의 무승부는 묘하게도 모라베자의 환대 정신과 크리올의 포용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 중심에는 첫 경기에서 우승 후보 스페인의 슈팅 27개를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고 막아낸 철벽 수문장, 골키퍼 보지냐가 있었다. 경기 내내 결연한 표정을 지었던 40살 노장 골키퍼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직후 다 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카보베르데는 작은 나라이지만, 열정과 사랑으로 이 자리에 왔다. 전세계에 있는 카보베르데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카보베르데의 노장 골키퍼 보지냐가 2026년 6월21일 북중미 월드컵 H조 우루과이 대 카보베르데 경기 전에 몸을 풀다가 물을 마시고 있다. AFP 연합뉴스

카보베르데의 노장 골키퍼 보지냐가 2026년 6월21일 북중미 월드컵 H조 우루과이 대 카보베르데 경기 전에 몸을 풀다가 물을 마시고 있다. AFP 연합뉴스


 

누구도 즐길 수 있고, 누구든 승리할 수 있다

 

카보베르데는 둥근 축구공으로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결과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진리를 보여줬다. 32강 토너먼트에서는 더 이상 무승부가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웃고, 누군가는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카보베르데는 이미 값진 결실을 거뒀다. 지도에서조차 쉽게 지나치던 작은 섬나라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든 승리할 수 있다”는 월드컵 정신을 증명하며 자기 존재를 전세계에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카보베르데 마치!

 

송정은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학부 강사·연구모임 ‘아프리카마치’ 멤버

 

2026년 6월21일 북중미 월드컵 H조 우루과이 대 카보베르데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엘리우 바렐라(맨 위)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6월21일 북중미 월드컵 H조 우루과이 대 카보베르데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엘리우 바렐라(맨 위)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6월21일 북중미 월드컵 H조 우루과이 대 카보베르데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엘리우 바렐라(맨 위)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6월21일 북중미 월드컵 H조 우루과이 대 카보베르데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엘리우 바렐라(맨 위)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날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엘리우 바렐라(맨 위)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날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엘리우 바렐라(맨 위)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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