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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틴 섬은 끝장나지 않았다

성착취 카르텔 떠받친 일상 속 남성중심 가부장제…한국에서 반복되는 성범죄 권력의 면죄 구조
등록 2026-02-20 14:02 수정 2026-02-28 01:41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2026년 2월10일 공개된 제프리 엡스틴 관련 문서 인쇄본. EPA 연합뉴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2026년 2월10일 공개된 제프리 엡스틴 관련 문서 인쇄본. EPA 연합뉴스


 

 

“와우! 저 상은 모든 아티스트가 원하는 그래미예요. 거의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원하는 만큼이나 말이죠. 일리가 있습니다. 엡스틴 섬이 사라졌으니, 빌 클린턴과 함께 어울릴 새로운 섬이 필요할 테죠.”

2026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진행자 트레버 노아가 던진 농담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심기를 긁었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노아를 “찌질이”(loser)라 비난하고 “국가안보와 관련 사안을 성범죄와 엮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모독”이라고 썼다. 그리고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다른 수많은 조롱과 달리 노아에게 유독 과민반응을 보이며 고소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은 엡스틴 문건의 파괴력을 방증한다.

물론 노아의 촌철살인도 한몫했을 것이다. 노아는 미국의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과의 친분을 단순한 ‘사회적 교류’로 치부하려는 트럼프를 비웃으며 그들이 공유했던 공간, 즉 ‘엡스틴 섬’의 약탈적 성격을 그린란드와 연결해 부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이 공화당 vs 민주당이라는 진영 싸움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이번 엡스틴 문건 공개를 민주당 공격의 무기로 삼지만, 노아는 프레임을 전환해 엘리트 남성들의 공모 관계를 폭로하는 렌즈로 삼았다.

엘리트 남성들의 성착취 카르텔

흥미롭게도 트럼프의 반응은 도리어 엡스틴 게이트의 글로벌 군산복합 네트워크를 떠올리게 한다. 엡스틴은 이스라엘 군 정보국 출신들이 설립한 정보 처리 회사인 ‘카바인’의 핵심 투자자였고,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팔란티어’를 이스라엘과 미국 국방부에 연계해준 연결고리였다. 이런 ‘엡스틴 군사주의 네트워크’에는 인공지능, 트랜스휴머니즘, 수명 연장 등을 연구하는 과학계와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그루(전문가)들 역시 연루돼 있었다. 그리고 엡스틴이 자신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파워 엘리트들에게 여성을 상납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모든 문건의 중핵이다. “국가안보”는 엡스틴을 고리로 이미 “성범죄”와 “엮여” 있었다.

개그맨의 농담은 흘러갔고, 웃음은 사그라들었다. 이제 우리 앞에 남겨진 것은 그 농담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어디까지 파헤쳐 들어갈 수 있느냐다. 2005년, 엡스틴 게이트의 첫 실타래가 풀렸다. 엡스틴의 플로리다 저택에 불려갔던 14살 소녀의 어머니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는 곧 자본과 권력의 보호막에 가로막힌다. 엡스틴은 수많은 미성년자를 체계적으로 착취했음에도 연방검찰과의 형량 거래(이 중심에는 당시 플로리다 남부 연방검사였고 이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이 된 알렉산더 어코스타가 있었다)를 통해 단 13개월형을 선고받았고, 그마저도 12개월 만에 석방된다. 심지어 그는 복역 기간에도 ‘근로방면’을 통해 일주일에 6일, 하루 12시간씩 자신의 개인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었다.

엡스틴 사건은 그렇게 일개 ‘스캔들’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생존자들과 조력자들이었다. 그들의 끈질긴 투쟁은 증언을 증거로 만들어냈고 결국 월스트리트(경제), 워싱턴(정치), 할리우드(문화)가 엡스틴 리스트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여기에 실리콘밸리의 기술 관료들과 학계, 영국 왕실까지 얽혀 있었음이 폭로됐다. 2019년, 마침내 엡스틴은 재구속된다. 그리고 수감 한 달 뒤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는다. 자살로 알려졌지만 대중 사이에선 그가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거나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없는 어떤 ‘윗선’으로부터 살해당했을 것이라는 등 음모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음모론은 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대중이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착취 카르텔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로 엡스틴이라는 괴물 포식자 한 명의 목을 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이런 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거대한 네트워크를 분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엡스틴이 특별히 끔찍한 인간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유일무이한 괴물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충실한 수행자였다.

제국을 무너뜨린 저항 네트워크

온갖 인사가 모여들어 파티를 즐기고 어린 소녀들을 착취했던 엡스틴 섬은 단순한 유흥의 공간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남성 엘리트들과 그들의 여성 동조자들은 비윤리적 성착취의 기억을 공유하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에 기반한 신용을 담보로 자신들이 누릴 자원을 생산하고 분배했다. 여기에 동원된 어린 여성들은 이 신용 사회를 지탱하는 물적 토대였다. 금융, 투자, 정보기술(IT) 같은 고급 언어들이 유통되는 바탕에 여성의 물리적 신체와 삶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오싹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엄청난 분량의 문건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약탈자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들이 있다. 이 끔찍한 착취 시스템의 촘촘한 그물망을 찢고 나온 ‘살아남은 자매들’(Suvivor Sisters·엡스틴 생존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의 이름이다.

엡스틴 ‘스캔들’이 ‘게이트’가 되기까지, 엡스틴 섬에서 벌어진 지옥 같은 일상을 최초로 경찰에 알렸던 코트니 와일드, 엡스틴의 저택에서 벌어진 범죄의 메커니즘을 증언한 애니 파머와 마리아 파머 자매,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수많은 ‘제인 도’(신원을 알 수 없거나 비밀로 해야 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미국의 법적·관습적 가명)가 있었다. 이들은 엡스틴의 죽음 뒤에도 그의 사후 자산을 동결하고 그를 도왔던 금융기관과 측근을 상대로 끝없는 법적 투쟁을 이어갔다. 엡스틴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결국 검사의 기소장이 아니라 생존자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이어 붙여 형성한 저항의 네트워크,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급 저항’의 네트워크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버지니아 주프레도 그중 한 명이었다. 주프레는 엡스틴의 조력자이자 여성들을 유인해 사냥했던 ‘여성 포식자’ 길레인 맥스웰을 법정에 세웠다. 맥스웰은 엡스틴에게 ‘어린 소녀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고, 실제로 성폭행에도 가담했다. 그의 상류층 사교계 인맥은 엡스틴의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주프레가 제공한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과 사진 자료 등은 맥스웰을 20년형에 처하게 한 결정적인 스모킹건이었다. 게다가 영국 왕실이라는 지원군을 등에 업은 앤드루 마운트배튼 윈저 전 왕자를 대상으로 사법적 승리를 이뤄내기도 했다.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빈 민스키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그의 증언에서였다.

가부장제라는 잔혹한 매트릭스

주프레가 이처럼 엡스틴-맥스웰에게 치명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너무나 취약했기 때문이다. 주프레의 회고록 ‘노바디스 걸’(은행나무, 2026년 2월 펴낼 예정)은 엡스틴 사건이 타락한 권력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고통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주프레가 어째서 맥스웰의 가스라이팅에 그토록 철저하게 무너지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는지 통렬하게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해지는 밑바탕에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제라는 잔혹한 매트릭스가 놓여 있다.

주프레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고, 어머니는 이를 묵인했다. 삶의 근간이 흔들린 상태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고군분투했지만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 깊은 상처와 자기혐오, 불안정을 파고든 것이 바로 엡스틴-맥스웰이었다. 사회적 보호망에서 밀려난 그에게 엡스틴의 세계는 유일한 비빌 언덕이자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었다. 쉽게 언어화되지 않는 혼란의 시간 속에서 주프레는 엡스틴의 행적을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엡스틴의 영향력을 가까스로 벗어난 뒤에도 그는 가정폭력과 사회적 낙인에 시달렸다. 주프레의 기록은 남성중심적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취약하게 하고, 그 여성들을 가해자에게 배달하며, 그들이 소모되는 동안 얼마나 철저하게 방치됐는지 보여주는 구조적 증언이다.

권력을 지탱하는 거대한 성착취 카르텔을 폭로하는 것, 심지어 단 한 명의 포식자를 응징하는 것조차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도 안 오는 이 끔찍한 시스템을 해체하려면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주프레의 상세한 묘사가, 그리고 ‘살아남은 자매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그려내는 투쟁의 지도가 이끄는 자리는, 의외로 우리 일상에 위치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왼쪽)와 박정현 부여군수가 2026년 2월7일 열린 박 군수의 출판기념회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 군수 페이스북 갈무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왼쪽)와 박정현 부여군수가 2026년 2월7일 열린 박 군수의 출판기념회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 군수 페이스북 갈무리


출판기념회에 나타난 안희정

한국에서도 엡스틴 문건 때문에 연일 시끄럽다. 때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말하면서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벌써 혁명이 났을 것”이라고 떠드는 이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김학의, 버닝썬 등 한국 땅에서 벌어진 성착취 카르텔이 어떻게 휘발돼버렸는지 기억한다.

혹은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정현 부여군수의 출판기념회에 등장한 안희정의 귀환은 어떨까? 박 군수는 “(이 자리에서 뵈니) 눈물이 난다”고까지 말했다. 이 눈물이야말로 남성 엘리트들 사이의 신용을 공적으로 회복시키는 정서적 담보처럼 보인다. 안희정의 지지자들은 ‘이미 죗값을 치렀다’거나 ‘그의 뛰어난 정무적 능력은 별개’라며 그를 감싼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의 범죄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았고, 회복적 정의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남성 정치인의 성비위에 이토록 관대한 태도가 성착취 카르텔의 주에너지원이다.

한국 사회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생존자, 조력자, 여성들이 이미 길을 내왔고 여전히 내고 있다. 길이 없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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