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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신공항, 불멸의 잼버리

수라갯벌 뭉개버릴 ‘무늬만 국제공항’ 건설… “전북환경청은 환경평가 ‘부동의’하라”
등록 2025-07-31 21:09 수정 2025-08-04 18:09
전북 군산의 새만금에 있는 수라 갯벌. 한겨레 류우종 기자

전북 군산의 새만금에 있는 수라 갯벌. 한겨레 류우종 기자


천막 내부 온도 37.7도, 천막 밖은 41도. 절절 끓는 날씨에도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전북지방환경청 앞에 설치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의 천막 농성장이다. 국토교통부가 새만금 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협의기관인 전북지방환경청에 접수한 뒤로 공동행동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환경청이 평가서에 동의하지 않으면, 신공항 건설은 취소되기 때문이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 이슈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건, 2023년 8월 세계잼버리대회가 국제적 망신으로 떠오른 직후였다. 이 사건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새만금 간척사업의 문제점이 재소환됐다. 시민의 격렬한 반대에도 강행된 세계적 규모의 간척사업은 계속 혈세를 빨아들이며 30년 동안 진행 중이었고, 그 연장선에 있는 새만금 신공항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어처구니없는 규격, 터무니없는 사업성

당시 “잼버리를 위해 신공항을 건설한다더니, 대회가 열릴 때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니 황당하다”는 말이 세간을 떠돌았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잼버리와 신공항은 직접 관계된 사업은 아니었다. 다만 잼버리가 신공항 건설 추진에 명분으로 동원된 것은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내는 사업의 목적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이리저리 흔들려왔다는 의미다.

“전북의 오랜 숙원 사업”이라는 새만금 신공항 건설 계획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본격화한 것은 2019년 1월, 문재인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면제됐고 국토교통부는 2022년 6월 기본계획을 확정, 고시했다. 그러나 잼버리 파행 뒤 국토부가 새만금 지역의 공항·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적정성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보류된다. 이후 정부는 별다른 문제를 찾지 못했다면서 사업을 재개했고, 전북특별자치도는 2025년 착공, 2029년 개항을 목표로 사업 추진에 나섰다.

하지만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는 새만금 신공항이 “전북의 희망”이 아니라 “생태학살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일단 “전북의 희망” 파트를 살펴보자.

신공항 예정지는 기존 군산공항에서 도보로 5~1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이미 미군이 사용 중인 공항과 너무 가까운 위치에, 수천억의 세금을 들여 새 공항을 지으려는 것이다.(예산은 기사에 따라 7천억원에서 9천억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도 공항의 효용성과 경제성은 제대로 입증된 바 없다.

우선 국토부의 건설안이 국제공항 규격에 맞지 않는다. 활주로 길이는 2.5㎞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최소 규격(3~3.2㎞)에 미치지 못해 중대형 항공기의 취항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군산공항의 활주로 길이 2.7㎞보다 짧은 규모다. 비행기를 주차할 수 있는 주기장도 5개뿐이다. 인천공항 주기장 285개와 견주는 건 당연히 무리겠지만, 무안국제공항이 50개인 것을 보면 국제공항으로서의 위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2019년 국토부의 비용-편익 분석은 0.479로 사업 타당성 기준인 1.0의 반도 안 된다. 쉽게 말해 100원을 투자했는데 50원의 이익도 안 나오는 사업인 셈이다. 물론 ‘국토균형발전’의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한 경제 논리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명분조차 확인된 바 없다.

 

‘토건 카르텔’ 뒤에는 수상한 주한미군

애초에 새만금 간척사업도 그랬다. 1989년 농지를 조성하겠다며 시작한 간척사업은 쌀이 남아돌자 계획이 바뀌었고, 지금은 관광·산업·레저 등 다양한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미미하다. 국가에서 떠들썩하게 홍보했던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비상할 녹색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의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건설하는 국책사업”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진행됐지만, 사업 목적은 계속 표류했다. 포장지는 점점 화려해졌지만 그저 말잔치일 뿐이었다. 잼버리 사태가 폭로한 것은 이 민망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국책사업의 수혜자는 누구였을까? 정치인-관료-투자기관-지방 토호-건설 자본-언론이 얽힌 ‘토건 카르텔’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이보다 더 염려되는 건 주한미군과의 연계성이 의심된다는 점이다.

2007년 당시 미 제8전투비행단장과 군산시장이 주고받은 공문에는 새로운 활주로에 대한 미군의 요구가 적시돼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군산기지에 한 개의 활주로가 추가 설치되기를 바랍니다. (…) 활주로 서쪽에 있는 새만금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에 추가 활주로와 국제공항이 포함됐으면 합니다.” 이 때문에 신공항이 미군의 대중국 군사전략과 맞물린 예비 활주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신공항과 군산공항 사이에는 택시웨이(공항 내에서 항공기가 이동할 수 있는 도로)가 설계돼 있다. 게다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상 미군은 이 공항을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 사실상 군산공항의 확장인 것이다. 이는 한반도를 새로운 군사 긴장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그리고 ‘사드 배치’ 이후 한국인이 겪었던 곤란이란 군사적 긴장만이 아니었음을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판이 거세지자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쪽은 건설 계획 보완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생명을 죽이는 일에 보완은 없다”는 서늘하고도 뜨거운 구호가 나왔다. 이제 “생명을 죽이는 일”의 문제로 넘어가보자.

공항이 들어설 부지는 수라, 새만금에 남은 마지막 갯벌이다. 국토 지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이름은 지난 20년간 새만금의 습지를 지켜온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비단에 새긴 수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읊조릴 때마다 내 몸이 주위의 공기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것 같은 떨림을 느끼곤 한다. 여기엔 개발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에 뭔가 아름다운 것이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그건 어쩌면 지켜야 할 것에 이름을 붙이는 시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전북의 희망’ 아닌 ‘생태학살 범죄’

수라를 지켜온 이들은 2000년대 초 생태조사를 시작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강행되던 당시, 정부의 환경영향평가 보고서가 터무니없이 축소된 수치로 작성됐음을 확인한 뒤였다. 정부는 당시 새만금 갯벌을 찾는 조류가 41종, 약 7천 마리에 불과하다고 밝혔지만(모든 걸 수치화하고 표준화함으로써 통치하는 ‘국가처럼’ 볼 때나 ‘불과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시민 생태조사단은 2003년부터 10년간 매년 평균 150종 이상, 25만 마리 이상의 새를 관찰했다. ‘토건 카르텔’이 쥐락펴락하는 관제 서류는 새만금의 생태적 가치를 폄하했지만, 그건 오로지 악의적인 조작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파괴적인 토건이 재개되려는 상황이다보니 전문가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2025년 2월,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공항 계획이 한국의 갯벌을 위협한다’는 제목의 서신이 실렸다. 국내외 생태학자들은 이 서신에서 “공항 건설이 수라갯벌의 생물다양성과 갯벌이 가진 사회문화적 영향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5년 7월28일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제공

2025년 7월28일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제공


이뿐만이 아니다. 2025년 5월, 서울행정법원에는 랜돌프 T. 헤스터, 최재천, 샤론 맥도널드 등 국내외 과학자 10명의 의견서가 제출됐다. 이들은 “수라갯벌은 새만금 지역에 마지막 남은 자연 갯벌로, 최소 59종의 국가 법정보호종과 27종의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라며 “부실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근거로 추진된 공항 개발 계획은 새만금 전체 생태계에 광범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고 썼다.

그런데 신공항 건설이 위협하는 것이 오로지 인간 문명 밖의 생명뿐일까? 최근 경향신문은 기후위기로 인해 원자력발전소가 멈출 위기에 놓였다는 단독 기사를 냈다. 원전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로 쓰이는 바닷물 온도가 계속 올라, 2030년 신월성 1·2호기를 시작으로 국내 원자로 8기가 10년 내 가동을 중단하게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주저할 줄 모르는 테크놀로지가 생태계 질서를 교란하는 수준을 넘어 엄청난 파국을 예고하는 것이다.

한국의 갯벌은 8천 년에 걸쳐 흙과 바다, 달과 지구의 얽힘 속에서 형성된 생명의 터전이다. 하루에 대략 0.01㎜씩 곱고 고운 흙이 쌓이고 쌓여 광대한 습지가 됐다. 그리고 그 갯벌이 계절에 따라 바다에 열을 주거나 빼앗음으로써 지구의 온도를 유지하는 일을 해왔다. 홀로세에 인간 문명이 번창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였다. 갯벌이 지금의 인간을 키웠다. 그러나 그 갯벌이 만들어질 때, 인간이 기여한 바는, 없다.

 

무안공항보다 610배 높은 조류 충돌 위험

그런 하찮은 인간이 이 심원한 역사 위에 서 있는 땅을 단 30년 만에 ‘잼버리 부지’처럼 척박한 죽음의 공간으로 부숴버렸고, 이제 그 생태학살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수라조차 단 5년의 시간 안에 아스팔트로 덮어버리려 한다. 그리고 그 위를 채우는 건 전쟁기계들이다. 그때 우리가 천막을 다시 세운다면, 천막 안의 온도는 40도가 될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새만금 신공항 부지는 조류 충돌 위험이 무안공항보다 610배 높다는 국토부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수치도 있다. “생명을 죽이는 일에 보완은 없다”는 말을 재차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다. 새만금 신공항 반대는 먼 미래의 학살을 논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당장 내일 나 자신에게 행해질 학살을 막으려는 의지다. 그리하여, 오늘 이 긴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다. 전북지방환경청은 환경영향평가서에 부동의하라.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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