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27일 국회에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 등이 ‘학부모 시민단체 연대’라는 이름을 건 리박스쿨과 김문수 대통령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TV조선뉴스 갈무리
단독 경쟁이 시작됐다. 리박스쿨 건이다. 대선 직전, 뉴스타파에서 ‘자유손가락군대’, 일명 ‘자손군’을 처음 보도하면서 이 레이스의 포문이 열렸다. 이후 리박스쿨의 ‘지하 네트워크’라고 할 만한 고구마 줄기가 줄줄이 뽑혀 나오는 중이다. 다행이다. 내란을 지지했던 뉴라이트 극우 세력이 어디까지 조직적으로 암약하고 있는지,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이야말로 국민에게 함부로 총을 겨눌 수 있다고 판단했던 내란 세력의 사상적 근간이기 때문이다. 리박스쿨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 뿌리의 영향력 있는 일부분임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교육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2025년 7월10일, 리박스쿨 사태를 다룰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증인으로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 이수정 전 교육부 정책자문관 등 5명이 채택됐다. 다가오는 청문회에서 이 사태의 경위와 책임 소재, 제도적 허점 등이 어떻게 드러날지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리박스쿨은 이승만과 박정희, 두 인물을 대한민국 역사와 체제의 중심에 두는 극우 성향의 역사교육 단체다. 그래서 이승만의 ‘리’, 박정희의 ‘박’을 따 ‘리박스쿨’이다. 이 단체는 학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역사 강의와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 목적은 ‘극우국민 양성’에 있다.
물론 일반적인 교육단체라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곡된 역사관을 바탕으로 그릇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조사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리박스쿨은 다르다. 방과후 강사 자격증 발급을 미끼로 ‘자손군’이라는 댓글 공작팀을 조직적으로 모집, 운영했다. 자손군은 대선 기간에 김문수(국민의힘)를 올려치고 이재명(더불어민주당)·이준석(개혁신당) 등 다른 후보를 깎아내리는 ‘작전계’를 운영하는 등 여론조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교육단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불법적인 정치 활동을 벌인 것이다.
심지어 이런 활동을 통해 리박스쿨에서 자격을 취득한 늘봄강사 43명이 전국 57개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늘봄학교는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후 돌봄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정부 주도의 교육정책이다. 결국 사이비 교육단체가 공교육과 국가 돌봄 시스템에 침투한 셈이다.
덕분에(?) 늘봄강사 자격의 검증 절차가 얼마나 부실한지 역시 드러났다. 리박스쿨과 연계된 일부 민간단체는 민간자격증을 발급한 뒤, 이를 “초등 방과후 늘봄강사 자격증”이나 “교육부 인가 자격증”처럼 허위 과장 광고를 했다. 이렇게 부풀려진 자격증을 소지한 이들은 별 검증 없이 학교에 들어가 강사로 활동할 수 있었고, 리박스쿨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활동을 확장해왔다.
리박스쿨은 이승만·박정희를 찬양하고 일제 식민지배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등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르쳤다. 리박스쿨 강사 중 한 명인 ‘국사교과서연구소’의 김병헌은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의 대표로 ‘위안부와 노무동원 노동자 동상 설치를 반대하는 모임’의 주요 참여자이기도 하다. 김병헌은 ‘평화의 소녀상’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우거나 ‘흉물 소녀상을 철거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는 등 조롱의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자발적 매춘”을 운운했다.
이에 더해, 리박스쿨의 교육관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줄기는 극우 개신교의 세계관이다. 관련 보도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의 며느리 양메리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는 “왜 아니겠어” 싶어진다. 그는 리박스쿨의 ‘주니어 영어 역사교실’ 등에 강사로 참여해 임신중지 반대,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등 극우 개신교의 가치관을 교육했다.
대전의 ‘넥스트클럽협동조합’ 같은 보수 기독교 단체가 리박스쿨 돌봄지도사 양성 교육에 참여한 사실 역시 드러났다. 넥스트클럽은 2019년 소속 강사가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성으로서 성품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고 혼전 순결을 강조하는 교육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던 단체다. 단체 대표인 남승제 목사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과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에 반대하는 활동을 지속해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5년 6월27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박소영 전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이 리박스쿨과 협업관계를 유지해왔다. 박 전 위원은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과 함께 ‘국민수사대’ 대표를 맡아 윤석열 탄핵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박 전 위원은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포함시킨 것”과 “보건, 가정, 윤리 교과서에 실린 잘못된 성교육 용어들을 삭제하거나 바꾸는 일” 등을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했다. 이때 ‘잘못된 용어’란 ‘성평등’이나 ‘성소수자’ 같은 단어다. 박 전 위원 외에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 재임시 대통령 추천을 받아 국교위원으로 활동한 인사 중 리박스쿨과 연결된 이는 더 있다. 극우의 세계관이 국교위를 통해 공교육으로 스며든 정황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채식주의자’(한강), ‘구의 증명’(최진영),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등과 같은 소설책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고,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학교 도서관에서 축출하려고 움직여온 보수 성향 교육단체 ‘보건학문&인문연구소’와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도 리박스쿨과 연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게다가 리박스쿨이 고교학점제를 통해 고교 수업에도 침투하려 했다는 기사를 읽게 되면, 그만 기가 질린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리고 이 내용들이 겹치는 자리에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있다. 그는 자신을 “기독의원”이라 밝히며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정치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신앙적 원칙을 공개적으로 강조해왔다. 2025년 5월27일, 리박스쿨은 조정훈 의원실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국회에서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리박스쿨 대표와 측근들은 학부모 단체로 위장해 기자회견을 준비했는데, 참석자 11명 중 5명은 자손군 댓글팀 소속원이었다고 한다.
기자회견 전, 조 의원과 리박스쿨 쪽은 간담회를 열어 급식노조 파업 저지 방안 등 구체적인 정책을 논의했다. 리박스쿨 쪽은 “조리·급식을 필수 공익사업으로 지정하면 파업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고, 조 의원은 이를 “중요한 정보”라고 언급하며 보좌관에게 메모하도록 지시했다.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조 의원이 “정치인의 책무인 중립성과 공공성을 저버린 채 노조 파괴의 공범 역할을 자처했다”고 비판하고, 의원직 제명을 요구했다.
교회와의 이런 관계 안에서 조 의원이 저출생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와 그가 제시한 해법의 문제적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2023년 3월, 저출생 해결을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의 가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저렴한 외국인 노동력 도입을 통해 가정의 육아 부담을 줄이고, 일·가정 양립을 돕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법안은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 의원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관심은 보수 개신교가 2022년을 전후로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대안학교 등 교육·돌봄 영역에 교회 시설과 인력을 적극 투입했던 시점과 맞물린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은 “저출생 극복”을 내세우며 학교 밖 늘봄사업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돌봄사업에 종교단체가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런 교회의 요구에 정치권이 호응하면서 교회가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방해되는 행정적·법적 장벽이 낮아지는 중이다.
돌봄은 종교의 오래된 역할이다. 문제는 스스로를 ‘기독의원’이라 하며 정교분리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치인들과 손잡고 국가 교육 기조와 정책을 좌지우지하려는 데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한국 사회에 “스며들게” 하려는 의도 자체도 문제지만, 이 흐름이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와 특정 인구의 배제와 차별로 이어진다면, 이는 반드시 견제돼야 한다.
리박스쿨을 둘러싼 단독 경쟁을 따라가던 중 눈에 들어온 뉴스가 있었다. 2025년 6월24일 부산 부산진구에서 일어난 아파트 화재로 세상을 떠난 두 자매의 이야기다. 다음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강선우 의원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화재가 발생한) 그 시간에 돌봐줄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 가족 곁에 국가라는 돌봄 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정치가 실패하면 사랑이 무너진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벌어진 성경 낭독 장면도 지나칠 수 없었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문회 도중 갑자기 성경책을 펼쳐 마태복음 6장 34절을 읊고는 김 후보자의 신실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칭송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민주주의자”라 말하는 김 후보자가 과거 “동성애는 모든 인간이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했던 발언이 떠올랐다. 그에게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정치가 실패하면 사랑이 무너지고, 사랑이 무너진 자리에선 나와 다른 존재를 기꺼이 짓밟겠다고 말하는 극우의 목소리가 득세한다. 돌봄 공백을 해결하는 주체가 정치가 아니라 극우적 세계관을 판매하는 종교가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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