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에 내정된 나경원 의원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2025년 5월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특히 청년 여성은 진보적이라는 통념이 있다. 2022년 ‘시사인(IN)’에서 출간한 ‘20대 여자’는 이런 믿음이 크게 어긋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 따르면 20대 여자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태도”를 중요시하고 “차별을 금지하고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정치세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동물권이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았다. 그렇다고 “민주·진보 계열 정당의 집토끼는 아니”었고,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유하는 심판자’에 가까”웠다. 지난겨울, 응원봉을 들었던 사람들도 이러한 성격을 공유했을 것이다.
하지만 광장에 선 모든 여성을 동일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계엄에 반대하면서도 “외국인에게는 떡볶이를 주지 않겠다”거나 트랜스젠더의 발언에 불편함을 표하고, 이재명의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반대편 광장, 즉 탄핵에 반대하는 집회에 나선 여성들도 존재했다. 예컨대 나경원이 2025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발탁한 1호 청년 참모 백지원은 청년 우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전한길뉴스’에 출연해 마거릿 대처를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고, ‘공정’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 극우에도 여자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실은 공적 담론의 장에서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거나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박근혜의 경우만 봐도,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반복적으로 그를 모욕하는 근거가 되어왔지만, 그가 우파 여성으로서 한국 극우 정치의 형성과 성장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별로 조명받지 못했다. 대체로 ‘박정희의 딸’ ‘우리의 영애’로만 다뤄졌을 뿐이다.
물론 극우와 여성이 맺는 관계는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극우에서 최근 광장에서 더욱 큰 목소리를 얻고 있는 대안우파에 이르기까지, 극우는 본질적으로 남성 중심적이며 여성을 폄하하고 홀대하는 정치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여자들은 극우 커뮤니티의 중요한 행위자였다.
심지어 20세기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에 앞장섰던 페미니스트 중에 훗날 극우 파시스트 운동에 동참한 이도 있었다. 역사학자 마틴 퓨는 이에 대해, 파시스트들이 “위대한 백인종의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을 옹호”하면서 여성을 숭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체에 대한 본질주의적이며 인종주의적인 관점과 함께 여성은 얼마든지 극우화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2025년 대한민국 여성들의 인종주의와 트랜스포비아 역시 잘 설명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극우의 준동 속에 여성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주도한 남성 청년들에게 “꽃등심을 사주고 싶”어 하는 여자는 있지만, 그 폭동의 최전선에 직접 나선 여자는 없다. 로이스 시어링은 여성들의 극우화를 분석한 책 ‘분홍약을 먹다’(Pink-pilled)에서 이렇게 짚는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직접 폭력을 행사한다기보다는, 혐오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조직의 전수가로서 활동하며, 다른 이들의 급진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무엇보다 이들은 “증오를 합리화하는 ‘품위의 외피’ 역할”을 수행한다. 극우 운동은 여성의 얼굴을 통해 그 이데올로기에 ‘그럴듯한 외양’을 덧씌운다는 것이다.
“품위의 외피라고?” 요즘 한국의 여성 극우 스피커들을 보면 좀 의아해진다. 이들은 오히려 품위의 파열, 통제 불능의 감정, 막말과 조롱, 그리고 노골적인 공격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온라인 플랫폼에서 시선을 끌고 팔릴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전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김계리의 욕설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던 건, 그 정도 발언은 대안우파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여성 유튜버들 사이에선 일상적인 수위이기 때문이다.

김계리 변호사가 2025년 2월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 출석해 대화하고 있다. 김계리 변호사는 이날 최후 변론에서 “저는 계몽되었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리하여 김계리란 어떤 인물인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쪽 변호를 맡으며 갑자기 등장한 그는 “저는 계몽되었습니다”라는 한마디로 홈런을 쳤다. 출산과 육아에 집중하느라 “더불어민주당이 저질러온 패악”을 몰랐다는 고백은 극우 유권자들에게는 하나의 간증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덕분에 ‘계몽령’은 2025년 한국의 대표적인 유행어이자 정치 밈이 됐다.
그가 두 번째로 전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건 찰진 욕설 덕분이었다. 극우 유튜버 안정권과의 통화 녹취가 공개되며, 김계리는 또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찬탄’(탄핵 찬성) 중년 대중이 이 욕설 잔치의 ‘발견’에 신이 나버린 것이다. 그건 아마도 한국 극우의 ‘품위의 외피’를 담당해야만 하는 ‘여자’가 그 품위를 박살 냈기 때문이었을 터다. 하지만 김계리가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기대고 있는 아스팔트 청년들은 “계몽 엄마”의 욕설에 동요하지 않았다. 여자와 욕설의 관계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고, 심지어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러니 오히려 자신을 ‘진보’라 생각하는 이들이 고리타분한 젠더 의식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대단치 않은 김계리보다 더 이상한 건 나경원이다. 그는 오랜 시간 ‘중도보수의 상징’이자 ‘보수 엘리트 여성’의 얼굴을 담당해왔다. 그야말로 우파가 원하는 ‘품위의 외피’였다. 하지만 그의 품위는 이제 드럼통 속에 처박혔다.
이번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나경원이 내걸었던 정치적 구호는 “체제 전쟁”이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이념이 밥”이라는 낡은 주장을 꺼내 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자유 대한민국 핵주권”을 운운하고 “신(新) 군복무 가산점” 도입도 약속했다. 저출산 해법으로 신혼부부에게 무조건 2억원을 대출해주고, 국제노동기구(ILO)를 탈퇴해 값싼 가사도우미를 수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민자를 늘리지 말고 대한민국 국민을 재생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정책이 “거리에서 피눈물 흘린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여러분’이 누구인지는 유튜브 정치에서 드러난다. 나경원티브이(TV)가 게시하는 숏폼 콘텐츠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정통 보수)부터 ‘서울대 시진핑 자료실? 나경원 분노하다’(청년 대안우파)까지, 극우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등장한 것이 드럼통 퍼포먼스였다. 군복무 가산점과 혐중 정치에 열광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2022년 즈음부터 유행했던 ‘이재명 드럼통 밈’이 나경원의 ‘청년 보좌관’들에 의해 정치의 장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드럼통에 들어가 있는 모습.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러므로 나경원이 “살기 위해 (정치 철학 없이) 아무거나 붙들고 있다”는 모욕적인 평가는 어쩌면 타당하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수준 낮은 길을 선택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글의 관심사 안에서는 그의 정치인생에 끼어든 두 가지 변수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2021년의 이준석, 다른 하나는 2024년의 한동훈이다. 이준석과의 대결에서 그는 남초 커뮤니티와 대안우파 세계관이 대중정치에서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인식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한동훈과의 대결에선 자신의 ‘선명성’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심하지 않았을까?
나경원과 한동훈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정치인들이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정통 보수의 관점에서 ‘충분히 남자답지 않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하다. 나경원은 (김어준으로 대변되는 민주당계로부터) 피부 미용에 1억원을 쓴 것으로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판사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을 ‘여자로 끌어내린’ 순간이었다. 한동훈은 어떤가? 그는 ‘안동운’이라는 별명에 조롱 조로 녹아들어 있듯이 가발을 쓰고, 키높이 구두를 신고, 외모를 가꾼다는 것으로 (사랑도 받지만) 공격을 받는다. 홍준표처럼 ‘약은 여우’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동훈의 외모 꾸밈을 공격한 건, 그저 우습고 수준 떨어지는 쇼였던 것만은 아니다.
‘더 젊고 예쁜’ 정치인이 상식적인 중도 우파의 이미지를 들고나왔을 때, 그리고 그와 정념에 휩싸인 정치 경쟁을 벌여야 했을 때, 나경원은 더 극우화한 스탠스, 더 남성화한 퍼포먼스로 이를 돌파하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동훈과 나경원은 서로 다른 숏폼 전략을 취하게 된다. 한동훈은 엑스(X)세대의 문화자본을 활용해 여성향의 댄디한 이미지를 강조하여 팬덤을 구축하고, 나경원은 남초 커뮤니티의 언어에 기대어 드럼통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서글픈 건, 나경원의 전략이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담컨대 그 남초 커뮤니티는 자신들을 대변하는 여자에게 환호할지언정 그 여자를 자신들의 대표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극우화하는 한국 정치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는 더 이상 예외적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거나 추상적인 논쟁거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과거의 분석 틀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계몽령’ ‘윤버지’ 등 타고난 엠제트(MZ)의 언어적 감각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려는 김계리와 보수 엘리트의 이미지를 벗고 대안우파 노선을 택한 나경원의 사례는 이런 복잡한 역학 관계를 보여준다. ‘응원봉 광장’ 이후, 한국 여성정치는 여러 도전을 만나고 있다.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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