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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오가는 말, 회복되지 않는 상처

등록 2026-08-06 22:43 수정 2026-08-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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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16일 섭식장애 당사자 정윤지(31)씨가 부산역 옥상 벤치에 앉아 있다. 권지담 기자

2026년 7월16일 섭식장애 당사자 정윤지(31)씨가 부산역 옥상 벤치에 앉아 있다. 권지담 기자


국가가 방치한 섭식장애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제1625호엔 분량상 담지 못한 섭식장애 당사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산에 사는 31살 정윤지씨는 2018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던 23살 때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부담감에 ‘다이어트 강박’이 심해졌습니다. 식사 시간과 메뉴, 걸음 수까지 스스로 정한 규칙에 집착했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자신을 벌하듯 더 심한 운동을 했습니다. 정씨는 “취업도 안 되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데 몸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날씬해지기라도 하자는 생각이 강했다”고 돌아봤습니다. 절식해 날씬한 몸을 유지하면서 ‘나는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랜 겁니다.

2019년 회사에 취업했지만 강박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자영업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영업사원으로 일했는데, 실적 압박이 컸습니다. 그는 “먹으면 살찌고, 살찌면 계약을 못하고, 그럼 일자리를 잃는다는 생각이 반복됐다”고 했습니다.

2021년 두 달을 기다려 찾은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선 “입원 외 선택지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씨는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 입원을 선택하긴 어려웠다”며 “살면서 마른 몸은 처음 스스로 이뤄낸 성취였고, 치료는 그 유일한 증거를 포기하라는 요구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씨는 섭식장애 증상이 악화돼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섭식장애 당사자들과 온라인으로 만나고 식단을 공유하며 스스로 치료법도 찾고 있습니다. “성인 섭식장애 환자도 치료가 힘들지만, 특히 가족 도움 없이 치료가 힘든 소아·청소년 환자들은 치료 접근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그는 2026년 3월 ‘부산 내 소아·청소년 섭식장애 의료 인프라 구축’을 요구하는 글을 국민신문고에 올렸습니다.

최근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는 눈에 띄게 야윈 모습으로 거식증 의혹에 시달린 끝에 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너무 말랐다”는 대중의 반응에 시달린 탓입니다. 에스엔에스(SNS)에서도 연예인을 대상으로 ‘너무 살쪘다’ ‘너무 말랐다’ 등 함부로 외모를 평가하는 글이 넘쳐납니다.

섭식장애 환자에게도 ‘그냥 먹으면 되지 않냐’ ‘뼈말라가 되고 싶어서 걸린 병 아니냐’는 말을 쉽게 합니다. 이렇게 단언하기 전에 섭식장애 환자들이 어떤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사는지부터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그래서 한겨레21은 기사를 썼습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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