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만요” 외치던 리센느, 680일 뒤 1위가 됐다

더뮤즈엔터테인먼트 제공
“노래가 그렇게 좋았는데 왜 그때 몰랐지, 우리가?”
2026년 7월11일 방송한 문화방송(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 그룹 리센느(RESCENE)가 출연했을 때 홍현희는 최근 역주행에 성공해 재조명된 곡 ‘러브 어택’(LOVE ATTACK)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자 송은이가 거든다. “이제라도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러브 어택'은 2024년 8월 발매됐을 때도 “2024년에 가장 멋진 멜로디 훅이 탄생했다”(음악 웹진 ‘이즘')는 호평을 받았고,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2024년 베스트 케이(K)팝 앨범'과 그래미닷컴의 ‘2024년을 뜨겁게 달군 K팝 10곡'에 포함됐다. K팝을 좋아하는 청자 사이에서도 ‘그룹은 잘 모르겠지만 노래가 좋더라'라는 반응이 이따금 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러브 어택'이란 노래는 달라지지 않았다. 바뀐 것은 이 곡을 부른 리센느의 위치, 리센느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다.
원이·미나미·리브·메이·제나로 이루어진 5인조 걸그룹 리센느는 ‘장면'(Scene)과 ‘향'(Scent)의 의미를 결합해, 향을 통해 ‘다시 장면을 떠올린다'라는 콘셉트를 내세워 2024년 3월 데뷔했다. ‘플로럴 향' ‘비누 향' ‘자몽 향' 등 앨범마다 고유한 향을 입힌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뜻을 품고 대중 앞에 섰다.

2024년 8월 발매한 미니 1집 '씬드롬' 콘셉트 사진.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 역주행으로 멜론 '톱100' 1위를 한 ‘러브 어택'이다. 더뮤즈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년 현재, 어떤 가수(팀)의 음악이, 발매 당일 특정 시청자/대중에게 ‘제 발로' 가닿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음악 외에도 즐길 거리는 넘친다.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는 ‘계속되는 이용자 수 감소'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음원 강자'든 ‘인기 가수'든 매번 음악으로 사랑받을 수 없는데, 두꺼운 팬층도 없고 대중적 인지도도 낮은 신인이라면? 데뷔나 컴백 소식을 누군가 ‘인지'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관심의 결과다.
어떤 노래나 팀이 대중에게 닿는 방법은 또 있다. 바로 ‘무대 영상'이다. 특히 K팝은 듣는 것을 넘어 ‘보고 느끼는' 음악을 지향하기에, 노래+안무+표정+애드리브 등 모든 것을 종합선물세트로 제공하는 ‘무대'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잘 찍은 무대 영상은 가장 보편적인 ‘입덕'(팬이 되는 것)의 계기가 된다.
전폭적인 홍보를 하거나, 무대 영상을 많이 남기거나. 리센느 소속사 더뮤즈엔터테인먼트는 인지도와 투자금 면에서 모두 한계가 있는 ‘신생 소형 기획사'였다. 열심히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손편지를 곁들인 프로필을 수백 장 돌리고, 음악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자체 제작 케이크를 선물해 감사를 표했고, 소속사 대표는 길 가는 유명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간절하게 리센느를 홍보했다.
벽은 높았다. 종종 첫 무대가 마지막 무대가 됐다. 아이돌을 꿈꿀 때만 해도 ‘당연한 줄 알았던' 음악방송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잘되고 난 지금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요새 바빠지셨죠?”이지만, “사실 우린 안 바빴던 적이 없잖아”라는 메이의 말처럼, 지켜보는 사람이 아주 적었던 시절에도 리센느는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스케줄 없는 날에, 스케줄을 하러 가는 차 안에서, 퇴근하고 나서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했다. 언젠가는 화채를 만들었고, 춤을 추기도 했으며, 응원법을 알려줬다. 데뷔 한 달이라서, 멤버의 생일이라서, 그냥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그렇게 쌓인 라이브 방송이 200개(2026년 7월15일 기준)가 넘는다.
회사는 멤버들이 스케줄 없이 연습만 반복하면 사기가 떨어질 것을 걱정해, ‘별의별 스케줄'을 다 잡았다. 대학 축제, 지역 축제 등 여러 행사에서 팀과 노래를 알리고자 고군분투했다. 리센느를 몰라 별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도 “여기까지 아직 저희 ‘러브 어택'이 전해지지 않았나봐요”라며 “이거 (음원 차트) 멜론 114위까지 했던 곡이거든요~ 아마 오늘 꼭 들으시면 중독돼서 리센느 검색해보실 수도 있어요”라고 웃으며 홍보에 나섰다.
인지도 낮은 신인 그룹의 곡이 멜론 ‘톱100'에 근접한 순위(114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성과가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 후로도 리센느는 여러 장의 미니앨범과 싱글을 끊임없이 발표했으나 ‘러브 어택'만큼의 반응이 뒤따르지는 않았다.

화제의 밈이 된 ‘거제 야호’ 장면.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정석적인 루트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던 리센느에게, 기회는 뜻밖의 곳에서 왔다. ‘스튜디오ㅋㅇㅋ(크으크)’가 제작한 유튜브 콘텐츠 ‘나의연수아저씨'는, 원이를 ‘운전 교육생'으로 출연시켜 코미디언 이선민·유영우에게 연수받는 내용을 담아냈다.
각각 16살, 9살 차이 나는 이선민, 유영우와 처음 호흡을 맞추는 자리, 원이는 주눅 들지 않은 채 스스럼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솔직한 매력을 자랑했다. ‘이선민이 옷을 잘 못 입는다'라는 유영우의 말에 오히려 이선민의 옷이 낫다고 하는가 하면, “생각보다 아저씨는 아니다”라는 말로 웃음을 자아냈다. 필기시험도 안 쳤던 ‘왕초보' 시절 “후진?” “위로?” 등의 명대사를 남겼다. 현대차 로고를 알아보지 못한 아찔한 순간은 그대로 첫 회 제목 ‘현대차도 모르는데 운전을 어떻게 해'가 됐다. ‘나의연수아저씨'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던 원이는 ‘갸루'1 미나미와 ‘신라 공주' 제나 등 멤버들과 봄나들이를 떠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다른 리센느 멤버도 고정 시청층에 노출했다.
2026년 상반기, 원이는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이하 안원잘부)라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열어 리센느 ‘공식 소셜미디어'와는 결이 다른, 본인을 비롯해 조금 더 리센느 멤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특색 있는 콘텐츠를 공개했다. ‘나의연수아저씨'로 인연을 맺은 이선민·유영우는 콩나물국밥을 먹고 인생 첫 파인다이닝 방문에 동행하며 눈물 참기 대결을 하는 콘텐츠에 함께 출연해 반가움을 더했다.
음원 역주행을 비롯해 지금의 리센느 열풍 출발점이 된 영상은 5월22일 공개된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거제 1편)'이지만, 미나미에게 ‘갸루'라는 캐릭터를 부여한 영상은 3월6일에 처음 올라왔다.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등 일본 시부야에서 만날 것 같은 화려한 차림새의 ‘잘 노는 언니들' 느낌이 ‘갸루'라는 스타일을 시청자에게 인식시킨 다음에는 그 세계관을 넓혀나갔다.
3월20일 공개된 ‘갸루의 자세에 대해서 배워보았습니다'에서 미나미는 ‘갸루 출신'으로서 갖춰야 할 스타일링이나 말투, 태도까지 원이에게 설명한다. 원이가 미나미를 향해 “너 지금 이러고 거제 가잖아? 너 거제 시민들한테 혼나 지금”이라고 일침을 놓자, 미나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제 야호!”를 외쳤다. 갸루 말투로. 미나미의 갸루 라이브 메들리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구독자 10만 기념 질의응답(Q&A)에서 원이가 미나미에게 채널을 뺏길까봐 위협을 느끼는지 질문이 들어올 만큼 미나미는 ‘갸루'를 고유한 캐릭터로 굳히는 데 성공했다.
‘거제 출신 아이돌'이란 점을 강조하며 사투리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온 원이는 경북 경주 출신 멤버 제나와는 온종일 사투리만 쓰는 영상을 함께 찍었다. 누군가에게는 ‘덕질'의 흥미를 돋우는 포인트이지만 대개 ‘고쳐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투리가, 어떤 제약도 없이 끊임없이 나오는 장면은 아이돌 콘텐츠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희소함'으로 더 주목받았다. 멤버 5명 전원이 서울/도쿄가 아닌 ‘지역' 출신이라는 리센느만의 캐릭터성이 십분 활용된 사례로, 제나는 ‘신라 공주'라는 별명을 널리 알리게 됐다.

2024년 3월 데뷔한 5인조 걸그룹 리센느. 더뮤즈엔터테인먼트 제공
원이, 미나미, 제나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캐릭터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알릴 때 아직 나오지 못한 메이와 리브를 걱정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제작사 솔파스튜디오는 틈을 놓치지 않고 6월 초 ‘저희도 리센느입니다…'를 공개했다. 안원잘부에 출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습생'이라 불리고, 처음 같이 나오는 영상을 ‘데뷔작'이라고 하는 ‘웃픈' 세계관을 설계한 제작진은,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리는 두 사람의 ‘조급함'마저 하나의 소재로 유쾌하게 풀어냈다. 시청자가 리브와 메이를 ‘패트와 매트'2에 빗대 ‘리트와 메트'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까지가 하나의 서사다.
시간이 없다고 만류하는 와중에 짧게라도 무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1분만요'라고 간청하고, 어떤 무대장치도 없이 운동장 한복판 ‘생' 흙바닥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리센느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핫아이콘이 됐다.
자체 콘텐츠의 조회수가 급상승하면서 그로 인한 파생 콘텐츠를 내고, 또 수백만의 조회수가 터지고, 일본인 미나미를 제외한 모든 멤버 고향(거제·수원·경주·고양)의 홍보대사가 되고, 발매 당시 900위였던 곡이 680일 만에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다. 리메이크 싱글 ‘프리티 걸'(Pretty Girl)로는 840일 만에 첫 음악방송 1위를 했다. 음악방송뿐 아니라 수많은 곳에서 리센느를 ‘먼저' 초청하고, 광고주들도 뛰어들어 모델로 발탁한다.
한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K팝 팬들은 ‘자수성가형 아이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인기의 척도를 각종 수치로 줄 세우는 문화는 더 심해지고 성공을 향한 갈망도 여전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아등바등하는 ‘과정'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비좁고 때로 물이 새기도 하는 숙소를 탈출해 넓은 숙소로 가는 일화는 통하지 않는다고. 지금은 ‘고생한 티 나지 않는 부잣집 아이' 같은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라고.
그런 팬들이 있을 수는 있어도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이번 리센느 ‘열풍'을 보면서 더 느낀다. 꿈을 키우며 성실하게 한발 한발 걸어온 이들이 비로소 꿈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이렇게까지 많은 이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장면을 분명히 목격하고 있으니까. 음원 차트 1위 소식을 듣고 오열한 원이는 “우리 1등 하고 싶었잖아”라고 고백했다. 회사가 작다고 품은 꿈의 크기까지 작지는 않을 터. 물이 들어오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노를 저어 결국 물을 만난 리센느는 그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이 트로피가… 뭔가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걸 뭔가 꿈을 향해 달리시는 분들에게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뭔가 응원하는,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 저희 진짜 최선을 다해서 달릴 테니까 항상 예쁘게 봐주시고 리센느 많이 사랑해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더쇼' 1위 원이 소감)
김수정 노컷뉴스 엔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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