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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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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걸 알면서도 도전하는 이들을 위한 헌사

게임으로 인문학적 성찰 길어올리는 ‘이준호의 루돌로지’… 뫼비우스 같은 인생이지만,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등록 2026-06-11 21:11 수정 2026-06-16 16:11
유튜브 채널 ‘이준호의 루돌로지’에서 게임 ‘엘든 링’에 등장하는 한 이름 없는 병사를 소개하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이준호의 루돌로지’에서 게임 ‘엘든 링’에 등장하는 한 이름 없는 병사를 소개하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준호의 루돌로지(https://www.youtube.com/channel/UCwhklH9dELCGrOPLYnKyPtQ)’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게임 미디어에서 기자로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준호는 게임을 소재로 ‘비디오 에세이’를 만들어 올린다. 대체로 품평에 그치는 게임 유튜브 생태계에서 드물게 게임을 활용해 인문학적 성찰을 풀어내는 귀한 채널이다.

2026년 6월2일 이 채널에 새로 올라온 ‘이 게임은 왜 전부 폐허일까?’라는 제목의 영상은 게임 ‘엘든 링’을 소재로 폐허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엘든 링’은 전투 난도가 매우 높기로 유명한 ‘다크 소울 시리즈’의 개발사 프롬소프트웨어가 2022년 출시한 작품이다. 개발사의 노하우와 특징이 농축돼 굉장한 흥행을 이뤄냈고, 많은 시상식에서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엘든 링’이 이렇게 뛰어난 성과를 이뤘음에도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인 스토리에 대해서는 ‘스토리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독특한 평가를 받곤 한다. ‘엘든 링’의 스토리는 잘 짜인 세계관 속에서 이곳저곳 다양한 방식으로 흩뿌려져 있고, 유저가 의욕을 갖고 끈질긴 탐험과 탐구를 이어나가야 비로소 스토리가 짜맞춰진다.

 

유튜브 채널 ‘이준호의 루돌로지’에서 게임 ‘엘든 링’에 등장하는 한 이름 없는 병사를 소개하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이준호의 루돌로지’에서 게임 ‘엘든 링’에 등장하는 한 이름 없는 병사를 소개하는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엘든 링’ 세계 속 병사가 의미하는 것

 

‘엘든 링’의 배경 대부분은 일종의 폐허처럼 그려져 있다. 이준호는 폐허라는 배경이 ‘엘든 링’ 특유의 파편화돼 흩뿌려진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이어붙이는 기능적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이곳의 스토리와 저곳의 스토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놓여 있으니, 그 사이를 잇는 배경은 어딜 가나 공통되게 폐허인 것이 개연성 있다는 것이다.

이준호는 이 영상에서 ‘엘든 링’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하다 발견한 병사 엔피시(NPC·인간이 직접 조작하는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 운영을 위한 캐릭터) 한 명에게 주목한다. 이 병사는 해안절벽 깊숙한 곳에 모닥불 하나를 피워놓고 가만히 졸고 있다. 병사의 몸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그의 등 뒤로는 ‘엘든 링’의 폐허 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 병사는 스토리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이준호도 그 사실을 알지만, 어쩐지 이 병사가 놓인 풍경에 매료됐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병사는 바다를 바라보다 잠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엘든 링’의 세계를, 이 거대한 폐허를 외면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베냐민이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에 대해 이야기한 글을 인용한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유명한 에세이에서 베냐민은 새로운 천사의 기묘한 모습을 세세하게 살피며 그것이 곧 역사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천사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있지만 그가 바라보는 과거에는 “폐허 위에 폐허”가 쌓일 뿐이다. 천사가 파국으로 향해 가는 과거를 바라보는 사이에, 저항할 수 없는 폭풍이 불어와 천사를 미래로 몰아간다. 베냐민은 이 폭풍이 바로 ‘진보’라고 말한다.

‘엘든 링’ 세계 속 병사는 파국으로 치달은 과거의 폐허를 등진 채, 그렇다고 미래로 떠밀려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병사는 세계를 복원하기 위해 싸울 마음이 없다. 망가진 세계를 직면하거나, 망가진 세계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것도 그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플레이어가 다가가면, 병사는 마침내 일어나 싸움을 걸어온다. 이준호는 병사의 이 선택을 지켜보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때가 온다면, 우리도 일어나 싸울 수 있을까요? 피할 수 없는 문명과 역사의 폭풍, 반복되는 폐허의 비극과 고통에 맞서, 절망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으며, 싸워가고, 또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세계는 붕괴했지만 병사는 제 일을 멈추지 않는다. 무너진 세계 앞에 절망하거나 세계를 무너뜨린 무엇을 증오하지 않으면서, 다시 일어나 싸우는 것. 병사는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인 것처럼 싸운다. 싸우지 않으면 삶의 목적이 없어질 것처럼 싸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알베르 카뮈의 책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시지프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영원히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시지프는 자신의 형벌이 영원히 계속될 것을 알지만, 기어이 다시 내려가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린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한다.

베냐민이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베냐민이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반복되는 실패, 멈출 수 없는 도전 ‘하데스’

 

폐허에서 일어나 다시 싸우는 것,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어쩌면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의 본질적 주제의식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게임은 ‘게임 오버’와 ‘리트라이’의 반복을 통해 조금씩 ‘클리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실패한 자리에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게임이 주는 위안이다.

그런데 어떤 장르의 게임은 ‘실패한 자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른바 ‘로그라이크’(Roguelike) 장르가 여기에 속하는데, 이 장르에서는 어떤 단계든 게임 오버를 당하면 게임의 가장 첫 단계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게임 오버를 당할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어드밴티지를 제공해 다음번 도전에서는 조금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면 ‘로그라이트’(Rogue-lite)라고 부른다.

미국의 게임 개발사 슈퍼자이언트게임스가 2020년 출시한 ‘하데스’는 로그라이트 장르의 전형이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들인 자그레우스다. 저승 궁전에서 평생 살아온 자그레우스가 우연히 자신에 대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의 진실을 찾기 위해 저승을 탈출하려 한다. 그러나 하데스를 비롯한 저승의 신들은 자그레우스의 앞길을 막아선다.

이 게임은 자그레우스가 수많은 신을 물리치고 저승을 탈출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주 실력 좋은 게이머가 아닌 한, 자그레우스는 몇 번이고 패배해 저승 궁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그레우스는 자신이 패배해 돌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신들은 자그레우스가 탈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모두 알지만, 자그레우스를 특별히 더 강하게 막아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다만 자신들이 위치한 곳에 덤벼들 때만 최선을 다해 맞설 뿐이다.

실패한 자리에서 시작하는 위안 같은 것은 이 게임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 게임을 계속 이어나갈 동력은 충분하다. 너무나 아쉽게 처음으로 돌아와버렸지만 조금도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는 자그레우스의 강인한 의지가 그것이다. 그는 깨질 듯한 머리를 붙잡고 앞서의 실패를 가볍게 복기하며 곧장 달려나간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 장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 장면. 에스앤코 제공


저승에서 꽃피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

 

마침 똑같이 하데스가 등장하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다. 그리스·로마 신화 원전에서 둘은 부부관계다. 어느 날 에우리디케가 끊임없이 구애하는 남자를 피해 도망치다가 독사를 밟아 숨지고,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살려내기 위해 저승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다.

‘하데스타운’은 이 이야기를 재해석했다. 오르페우스가 창작 활동에 빠져 생활을 뒷전으로 한 탓에, 생활비를 걱정하던 에우리디케는 하데스의 꼬임에 넘어가 저승 세계인 ‘하데스타운’의 노예가 된다. 뒤늦게 에우리디케의 부재를 알아차린 오르페우스는 아름다운 노래로 무생물조차 감동시키며 저승으로 향한다. 저승에 당도한 오르페우스는 또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하데스에게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이 이야기가 정립한 유명한 모티프가 여기서 나온다.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돌려주는 대신 조건 하나를 내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오르페우스가 앞서 나가고 에우리디케가 뒤를 따르되, 지상에 완전히 도착하기 전에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면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저승에 갇힐 것이라는 조건이다. 신화에서 금기가 제시됐다는 것은 그것이 곧 위반되리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오르페우스는 의심과 번뇌를 못 이기고 출구 바로 앞에서 뒤를 돌아봤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오르페우스의 좌절이 지배하는 지상의 폐허 위에서 작품의 내레이터이자 오르페우스를 아끼는 신인 헤르메스가 노래한다. “슬픈 노래/ 슬픈 얘기/ 슬프디슬픈/ 슬픈 노래/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다시 부르리라/ 중요한 것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그리고 이 작품의 첫 장면과 같은 장면이 이어진다. 오르페우스가 등장하고, 에우리디케도 등장한다. 특정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일종의 ‘루프물’인 셈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앞서 실패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헤르메스만이 그 기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자기가 이미 경험한 것을 두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구해내고, 탈출을 시도할 수 있도록 은근한 도움을 제공할 뿐이다.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관악구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왕복근 정의당 후보가 2026년 6월4일 오전 신대방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낙선 인사를 하고 있다. 왕복근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관악구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왕복근 정의당 후보가 2026년 6월4일 오전 신대방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낙선 인사를 하고 있다. 왕복근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6·3 지방선거에서 전남 목포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박수인 진보당 후보가 2026년 6월4일 낙선 인사를 하고 있다. 박수인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6·3 지방선거에서 전남 목포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박수인 진보당 후보가 2026년 6월4일 낙선 인사를 하고 있다. 박수인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오버랩 되는 군소정당 후보들의 뜨거운 의지

 

지방선거가 끝나고 며칠 지하철역 인근에는 낙선 인사를 하러 나온 후보들이 있었다. 낙선 인사는 다음 선거의 시작점이다. 낙선 인사에 나왔다는 것은 다시 출마할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중 이른바 군소정당 후보들이 있다. 선거제도가 자신에게 지독하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선거에 출마했고, 예상대로 결국 낙선한 후보들이다. 낙선 인사를 하는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어떤 투쟁심을 본다. “절망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으며, 싸워가고, 또 살아가는” 사람들의 뜨거운 의지 같은 것을 본다.

실패할 걸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들, 폐허가 된 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한 번 더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열한 것은, 그들의 그 의지를 어떤 식으로든 이 지면에 기록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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