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베이글뮤지엄 서울 안국점 앞에서 시민들이 상품과 매장을 구경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종이봉투는 300원이고요, 비닐봉투는 무료입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하 런베뮤) 계산대 앞에 섰을 때 점원이 건넨 말이다. 사람으로 가득 찬 매장이 너무 시끄러워 잘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다. “네?” 그러자 그는 로고가 큼직하게 찍힌 종이봉투와 아무 표시 없는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300원을 내고 종이봉투를 들고 나왔다.
길을 걸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마 전 런베뮤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그런 사실에도 아랑곳없이 빵 덕분에 들뜬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물론 지나친 자의식이었다. 그러나 덕분에 깨달았다. 런베뮤의 상품은 빵만이 아니라 그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기분 자체임을. 로고 봉투는 그 감정을 완성해줬다.
나는 왜 그곳을 찾았을까? 노동자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엄청난 노동 강도 때문이었다는데, 그 노동이 무엇을 생산했는지 궁금했다. 런베뮤는 빵이 아니라 경험을 판다니 직접 가봐야겠다 싶었다. 다만 화려한 봉투를 들고 길을 걷는 순간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 사람이 죽었다. 인천점 오픈을 준비한 정효원씨다. 2025년 7월, 건강했던 20대 청년이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사망 직전 최소 12주 동안 60시간을 일했고, 마지막 한 주는 80시간 가까이 격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유족은 과로사를 호소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고, 런베뮤 쪽은 사실무근이라고 발뺌했다.
이후 공개된 회사 임원의 메시지는 충격적이다. “과로사로 무리하게 신청을 시도한다면 저와 직원들이 과로사가 아님을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이며 “양심껏 행동하시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장례식장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도와주겠다”던 태도는 유족 쪽에 노무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표변했다. 방어적으로 되어 유족을 협박한 셈이다.
런베뮤는 정씨의 평균 노동시간이 44시간이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확한 근거를 대진 못했다. 근태를 기록하는 지문인식기에 오류가 났다는 핑계를 댔지만, 의지만 있다면 정씨의 근무 시간 확인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직원들의 업무 보고가 이뤄지는 카톡방만 20여 개라니, 동료들의 증언만으로도 실태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사건 직후 직원 입단속이 있었다는 정황 역시 드러났다.
런베뮤 쪽의 주장이 애초에 신빙성이 없었던 건 정씨의 근로계약서 자체가 주 14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기준으로 작성됐기 때문이다. 이미 주 52시간 상한제 위반이다. 게다가 정씨는 매장 오픈을 준비하는 오픈바이저였다. 일반 매장 근무와는 일의 강도가 질적으로 달랐다. 정씨는 애인에게 남긴 마지막 카톡 메시지에서 15시간 내리 근무하면서도 “이슈 때문에 밥을 먹으러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입을 막은 건 함구령만은 아니었다. 더 큰 장벽은 ‘영업비밀서약서’였다. 런베뮤 쪽은 이것이 제품 레시피 등 영업비밀을 지키기 위한 장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사 및 노무에 관한 내용’ ‘기타 회사 측이 영업비밀로 인정한 일체의 사항’ 등이 영업비밀에 포함된 건 아무래도 과도하다. 심지어 이를 위반할 시 “어떤 민형사상 처벌”도 감수할 것을 서약하고 “중대한 사항의 경우 일억원을 위약벌로 지급한다”고 적시돼 있다.
매장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계약서는 귀여운 수준이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한 상시 감시, 외모 관리 압박, 시말서 남발, 창피주기와 일상적인 모욕, 달 단위로 이뤄지는 쪼개기 계약 등 노동자는 불공정한 현장에서 그야말로 조련당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생산 활동 대부분을 사회 초년생의 아르바이트 노동에 기댄 덕분이다. 런베뮤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의 브랜드를 향한 애정과 열정페이에 기생했다.
‘악덕 기업주’의 비상식적인 기업 운영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빠르게 반응했다. 매장 앞에서 1인시위가 진행되고, 추모에 동참하는 작은 책방들도 있었다. 제주의 한 서점은 창업주인 이효정씨, 일명 료씨가 쓴 단상집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산재·중대재해처벌법 코너에 배치한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 실제로 런베뮤가 영업해온 지난 3년간 63건의 산업재해가 신청됐고, 100% 승인됐다. 업계 1위인 에스피씨(SPC)삼립보다도 많은 숫자다.
‘전설의 베이커리’가 청년 노동의 착취와 죽음 위에 세워졌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런베뮤의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에는 금이 갔고 불매 조짐이 확산됐다. 결국 사 쪽은 유족에게 ‘위로금’을 제안하고 유족이 산재 신청을 취하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런베뮤에 대한 근로감독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법 위반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관계자들이 2025년 10월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매장 앞에서 런던베이글뮤지엄 청년 노동자 과로사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의당 제공
런베뮤의 노동자 사망 사건을 둘러싼 갑론을박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건 이효정씨에게 쏟아진 주목이다. ‘옷가게’와 ‘카페’를 운영하던 자영업자의 빛나는 성공 서사 때문에 몰렸던 관심이 순간 “아니나 다를까”라는 조롱으로 전환됐다. 게다가 2025년 7월, 정씨 사망 시점과 맞물려 런베뮤 운영사인 엘비엠(LBM)이 사모펀드인 제이케이엘(JKL)파트너스에 2천억원에 매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은 소란이 되었다.
창업 4년 만에, 전국에 단 여섯 개의 매장을 가진 ‘빵집’의 가치가 어떻게 2천억으로 뛸 수 있었을까? 이건 세금·이자·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11배의 가격이다. 핵심은 희소성이었다고 평가된다. 런베뮤는 단순히 빵을 파는 집이 아니라 ‘힙과 경험’을 파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미지와 이야기를 구매했다. 이 흐름을 타고 매출은 1년에 두 배씩 뛰었고, 그것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몸값을 불려줬다. 당연히 그 희소성을 디자인한 창업자 이씨의 재주와 경영 마인드에 관심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정당한 비판도 있었으나, 여타의 악플과 사이버 괴롭힘에서 힘을 발휘하는 기이한 열정 역시 존재했다. 여성혐오와 샤덴프로이데(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였다. 이효정의 감성 마케팅은 ‘진짜’를 결여한 속이 텅 빈 여자의 허영으로 빠르게 평가 절하됐고, “50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젊음”이라 칭송받던 외모는 “빵만 먹는 기기묘묘함”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각종 숏폼과 SNS용 콘텐츠는 그의 몰락에 대한 기대를 땔감으로 불타올랐다.
사실 “맛보다 바이브”라고 말하는 이씨가 대단히 새로운 인물은 아니다. 봉투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포장지가 상품의 완성이라는 건 낡은 통찰이다. 사용가치가 아닌 상징가치를 판매하는 건 이미 1960~1970년대 시작된 소비자본주의의 마케팅 전략이다. 필요를 판매하는 것으로 더는 수요를 창출할 수 없을 때, 자본은 필요 없는 물건도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법을 고안한다. “내가 소비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허상은 그렇게 상식이 됐다. 21세기에 열린 ‘드림 소사이어티’(롤프 옌센)는 여기에 꿈, 감성, 스토리, 경험을 덧붙여 상품화했다.
이효정은 단지 한국인의 꿈을 기가 막히게 잘 포착했을 뿐이다. 그건 ‘빈티지’로 밈화된 ‘선진 문명’에 대한 향수다. 이름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이지만, 그곳에는 런던 베이글도, 박물관에 쌓여 있는 오랜 시간도 없다. 제국주의가 열어준 런던의 ‘영광’과 그로부터 만들어진 (예컨대 박물관) 문화는 한국인의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원본 없는 향수, 노스탤지어다. ‘유니언잭’의 색감과 로마자 알파벳의 조합, 그리고 낡은 것으로 연출된 나무 상자들, 젊은 점원들의 활기가 예쁘게 느껴지는 것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미감이다.
그러나 ‘런던 베이글 없는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노동자를 업신여기는 착취 구조, 그리고 M&A 시장이 키워놓은 ‘화려한 엑시트’라는 신화다. 이번 사망 사건을 두고 신규 지점 오픈과 매각 절차가 맞물려 발생한 ‘구조적 과로사’라는 말이 나온다. 매각을 앞둔 기업은 통상 기업 가치 평가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기 수익성에 집중하며, 그 과정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효정의 에세이 ‘료의 생각 없는 생각’ 표지.
‘료의 생각 없는 생각’에서 이씨는 반복적으로 자신이 돈 버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세상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며, 그게 진짜를 사랑하는 자신이라 말했다. 하지만 창업 4년 만에 그토록 사랑하는 일의 총체를 매물로 내놓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비상식적인 일을 행하는 건 그 말과 상응하지 않는다. 료의 허세를 비판할 수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어야 한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마음에 품는 한탕에는 주식과 코인, 부동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엑시트의 꿈’이 있다.
봉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전문가들은 런베뮤가 동종 업계 대비 높은 가격 정책을 유지하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위해 인테리어와 마케팅에 과감히 투자해왔음을 짚는다. 5천원을 넘는 베이글 가격 속에는 빵값을 넘어서는 ‘힙의 가치’가 포함돼 있다. 한 유튜버는 이를 ‘힙택스’라 불렀다.
런베뮤 봉투를 들고 걷는 나는, 매장 밖 거리를 ‘런베뮤의 공간’으로 확장하는 하나의 소품이 된다. 소비자는 이동식 광고판이고, 그들의 SNS는 영리한 마케팅이 펼쳐지는 스크린이다. 기꺼이 힙택스를 내면서 홍보 ‘노동’까지 해주는 현상. 그 이면에는 ‘진짜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죽음이 놓여 있다. 여기까지 와서야 ‘진짜’ 타령을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 알겠다.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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