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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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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중년+레즈비언, 이장님 될 수 있을까?

독립영화 ‘이반리 장만옥’ 만든 이유진 감독 인터뷰
‘퀴얼업 명랑 코미디’ 표방한 색다른 영화
‘퀴어 프렌들리 시골’ 꿈꾸는 난장 한마당
등록 2026-06-04 20:08 수정 2026-06-10 14:09
영화 ‘이반리 장만옥’ 포스터.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이반리 장만옥’ 포스터. 인디스토리 제공


 

중년 레즈비언, 귀향, 이장 선거, 노인과 소수자 연대, 코미디….

2026년 6월10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이반리 장만옥’의 줄거리를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어쩐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런 키워드로 영화의 서사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반리 장만옥’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중년 레즈비언의 당당한 도전과 연대를 매끄럽게 풀어낸다. 그것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왁자하게. ‘보는 내내 웃기는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유진 감독을 6월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퀴어 영화 주인공은 고뇌·좌절만 하나

 

영화 ‘이반리 장만옥’은 보수적인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살던 장만옥(양말복)이 결혼 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이혼한 뒤 서울로 떠나 20년간 레즈비언 바를 운영하다 빈털터리가 돼 고향 이반리로 돌아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돌아와 보니 마을의 실권을 장악한 이장은 아직도 만옥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전남편. 평온하게 살고 싶은 자신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전남편에 분노한 만옥은 새 이장이 되기 위해 선거에 출마한다. 여기에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전남편의 고등학생 딸 재연(성재윤)과 서울에서 만옥을 데리러 온 금자(김정영), 선아(색자)까지 합류하면서 한바탕 난장이 펼쳐진다.

‘이반리 장만옥’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이유진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이반리 장만옥’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이유진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씩씩하고 똘끼 충만한 주인공 만옥은 단 한 순간도 의기소침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퀴어 영화 속 주인공이 사회의 차별적 시선에 고뇌하고 좌절하는 것과는 영 딴판이다. “퀴얼업(퀴어+치얼업) 명랑 코미디”라는 감독의 정의대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발랄하다. “퀴어 영화 중에 나이 든 퀴어를 다룬 영화가 거의 없더라고요.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눈물 스톱!을 외치며 깔깔대고 웃으며 볼 수 있는 중년 레즈비언 주인공 영화를 만들어보자 결심했어요. 대신 20대 젠지 세대 감성으로. 많은 매체에서 퀴어 이야기를 무겁고 심각하게 다루는데, 실제 제가 아는 대부분의 퀴어 친구들은 명랑해요.”

영화 제목이 풍기는 매력도 상당하다. 꽤 고심하고 ‘전략적으로’ 지은 제목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단번에 ‘후킹’이 걸리는 제목이었으면 했어요. 이반이란 말 자체가 퀴어를 뜻하기도 해서 시골이니 ‘이반리’라고 지었고, 퀴어 사이에 닉네임(별명)을 많이 사용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배우 ‘장만옥’이 떠오르더라고요. 중년이라는 나이대에도 딱 맞는 이름이고요. 또 이반리의 ‘이’와 장만옥의 ‘장’을 따면 ‘이장 선거’라는 영화 속 주요 사건도 연상되니까요. 하하하.”

독립영화 ‘이반리 장만옥’은 중년 레즈비언 만옥과 외롭고 소외된 시골 공동체의 연대를 명랑 쾌활하게 담아낸다. 인디스토리 제공

독립영화 ‘이반리 장만옥’은 중년 레즈비언 만옥과 외롭고 소외된 시골 공동체의 연대를 명랑 쾌활하게 담아낸다. 인디스토리 제공


 

가상의 마을 ‘이반리’는 충청도로 설정했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그랬어유~ 저랬어유~’ 하는 충청도 사투리가 정겹다. 왜 충청도일까? “고향이 천안인데, 천안만 해도 도시죠. 충청도 사람들 속내를 잘 알 수 없다고 하잖아요? 딱 부러지게 표현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고. 이게 만옥이란 캐릭터의 보호장치가 돼줄 것도 같았어요. 마을 사람들이 싫어도 싫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할 것만 같거든요.”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재연이 남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파출소에 간 장면에서 담임교사와 만옥이 충청도 사투리로 ‘랩 배틀’을 벌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백미다. “충청도 사투리가 느리다고 하는데, 안 그래요. 밀당하는 느낌이 있어서 랩이랑도 딱 들어맞더라고요.”

감독은 퀴어와 시골 마을이라는, 거리가 먼 두 가지 설정을 잘 버무려낸다. “영화 속 ‘인권단체 하나 없는 깡시골’은 도시보다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거잖아요? 만옥이도 그런 이유로 떠났겠지만, 고향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죠. 중년 레즈비언이 돌아가서 ‘짱 먹는’ 영화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2026년 6월10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이반리 장만옥’은 중년 레즈비언 만옥이 고향 이반리로 돌아와 전남편의 핍박에 맞서 이장 선거에 출마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디스토리 제공

2026년 6월10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이반리 장만옥’은 중년 레즈비언 만옥이 고향 이반리로 돌아와 전남편의 핍박에 맞서 이장 선거에 출마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디스토리 제공


 

태극기 옆에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

 

영화 속 캐릭터는 하나하나 모두 주인공처럼 색깔이 분명하다. 캐스팅 단계부터 고심했을 터다. “재연 캐릭터가 제일 중요했어요. 조건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퀴어’였거든요?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공개 오디션 공고를 냈는데, 커밍아웃이 전제된 배역이었음에도 20명 가까이 지원해 놀랐어요. 성재윤 배우는 연기가 처음인데도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이 역에 딱 맞았어요. 색자 배우는 연극 ‘드랙(DRAG)×남장신사’에 출연한 걸 보고 반했어요.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성재윤 배우와 색자 배우는 퀴어를 흉내 낼 필요가 없으니, 나머지는 베테랑 연기자들이 알아서 받쳐줄 거라 믿었죠.”

영화는 이장 선거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레즈비언 만옥과 소외된 시골 노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는 ‘연대’로 나아가며 마무리된다. 만옥이 마을 어귀 태극기 옆에 무지개 깃발을 거는 장면은 뭉클하면서도 뭔가 ‘판타지’ 같은 느낌마저 든다. “처음 영화를 찍던 3년 전에는 시골 할머니들과 레즈비언의 연대가 판타지스럽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어디서나 연대는 어려운 거니까요. 하지만 서로 오해하고 싸우고 갈등해도 다시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잖아요. 홍대나 이태원의 퀴어 프렌들리 가게처럼 퀴어 프렌들리 마을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만옥이 전남편에게 건네는 ‘이게 (이 마을에서) 니 딸과 내 위치야. 걱정 말어’라는 대사처럼, 어쩌면 ‘서로 다름’ 정도는 인정할 수 있는 ‘이반리’ 같은 공동체가 존재했으면 하는 감독의 바람이 담긴 듯도 하다. “진정한 연대는 연민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응원하는 거 아닐까요? ‘친구면 걱정도 좋지만 응원을 좀 해줘’라는 대사처럼.”

영화 ‘이반리 장만옥’을 연출한 이유진 감독은 “앞으로도 관객이 깔깔거리며 웃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이반리 장만옥’을 연출한 이유진 감독은 “앞으로도 관객이 깔깔거리며 웃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인디스토리 제공


어쩌면 재연은 만옥이 그랬듯 앞으로 이반리를 떠나 사회와 불화하며 살지도 모른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재연이 만옥의 용기를 부러워하며 ‘어떻게 그렇게 욕심이 많아요?’라고 묻자 만옥의 대답은 ‘희망이 없어서 그래’였다. “세상이 한꺼번에 바뀔 거라는 희망, 모두가 날 사랑해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은 내려놔라. 그렇지만 불화할 용기와 행복해지고 싶은 욕심을 낸다면 너와 함께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런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영화 속 재연에게 만옥을 선물하고 싶었거든요.”

 

“다음번엔 뽕짝 코미디가 어떨지”

 

이유진 감독은 ‘이반리 장만옥’이 관객에게 재밌는 영화로 다가가길 바란다고 했다. 영화 속 메시지를 읽어내지 않아도, 퀴어 영화인지 모르고 봐도 관객이 한바탕 깔깔거리다 극장을 나선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전 무조건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다음번엔 뽕짝 코미디가 어떨까 싶어요. 스릴러 코미디 같은? 하하하. 저 평소에도 좀 웃기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투자를 받을 수 있으려나? 하하하.”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광양 남도영화제, 토론토릴아시안영화제 등에서 연거푸 ‘관객상’을 받은 걸 봐서는 감독의 유머가 벌써 통하고 있는 듯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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