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인 김어준씨가 2026년 3월18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말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김어준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런데 이번엔 기세가 좀 다르다. 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 ‘공소취소 거래설’을 유튜브에 방송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키워드는 ‘음모론’이다. 이제야 더불어민주당계 인사들과 지지자들이 김어준의 음모론을 문제 삼는 건 좀 우습기도 하다. “슈터가 슛을 쏘다보면 볼이 안 들어갈 때도 있지 않으냐”며 김어준을 옹호하던 이들 아닌가.
그러나 진영 논리에 따른 감탄고토를 비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 우리가 음모론적 서사에 왜 그렇게 쉽게 매혹되는지를 묻는 일이다. 이제 음모론은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자 할 때 눈을 돌리게 되는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도구가 됐다.
음모론은 21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음모론의 시대’(문학과지성사 펴냄, 2014)에서 전상진은 격변이 지속되고 대중문화와 언론이 힘을 발휘하는 근대 자체를 ‘음모론의 시대’라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것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 담론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말 이후다.
전상진은 음모론이 힘을 얻는 이유를 ‘고통’에서 찾았다. “인간이 겪는 고통은 어떻게든 설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세에는 종교가 그 역할을 맡았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는 신정론이 인간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근대로 넘어오면 종교의 힘은 약해지고 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예컨대 정치 담론에서 ‘이데올로기’라거나 ‘헤게모니’ 같은 개념이 등장해 민중의 핍박과 고난을 설명하고 변혁 운동을 조직하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종교와 정치 모두 보편적인 영향력을 상실했다. ‘극우 기독교’ 같은 세속화된 종교가 정치를 탐하고, 정치는 대중문화의 문법으로 흡수돼 그저 덕질의 대상이 돼버렸다. 그 와중에 편재하는 시장만이 유일한 구원의 장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경우 1987년 제도적 민주화 이후 열린 87년 체제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화를 경유해 사회가 질적으로 전환됐다.
김어준식 음모론의 부상 역시 시대적 전환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우리가 알던 세계’가 무너져내리는 격변의 한가운데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 최초의 정권교체조차 “살림살이 좀 나아지게” 만들지 못했다는 정치적 좌절과 따라서 “그놈이 그놈”이라는 패배주의가 팽배해지던 시기였다. 이때 ‘나꼼수’는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하나의 얼굴로 통합한 엠비(MB)라는 협잡꾼을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다른 복잡한 요인들을 지우고 진영의 각을 세우며 “한 놈만 때리는 방식”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한 낙관적 전망 속에서 ‘참여’와 ‘집단지성’이라는 이상이 확산하던 웹2.0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반지성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타고 급진적으로 부상하던 때이기도 했다. 민주당계에서 ‘김어준류’가 부상했다면, 역사적 극우 블록에서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등장했다. 물론 일베와 김어준류를 동류로 말하는 건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두 집단은 반지성주의와 음모론적 세계관에서만큼은 그 형식과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있었다.
요즘에도 종종 김어준이 자신을 일컬어 “무학의 통찰”이라 했던 걸 떠올린다. 진실로, 지나간 한 시대를 포착하는 기가 막히게 정확한 표현이다. ‘무학’은 제도권 지식 바깥에 있음을 강조하고, ‘통찰’은 자신이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고 있음을 선언한다. 기존의 지식 체계는 낡은 것으로 밀려나고, 개인의 직관이 진실을 발견하는 도구가 된다. 이는 웹2.0의 반권위주의적 성격과 반지성주의적 성격을 두루 내포한다. ‘공소취소 거래설’ 건에서처럼 레거시 미디어의 게이트키핑 같은 절차가 종이 쪼가리 취급을 당해도 지지자들이 여전히 환호하는 이유다. 절차와 증거는 덜 중요해지고, 내가 신뢰하고 싶은 직관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음모론의 무대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전적인 설명만으로는 오늘날의 음모론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 미디어의 문제가 좀더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뇌썩음’을 말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뇌썩음은 SNS의 자극적이고 파편화된 저해상도(혹은 저질) 콘텐츠에 과도하게 노출돼, 논리적 사고력이나 집중력이 감퇴하고 인지 기능이 단순화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대통령의 입에서 ‘부정선거’라는 단어가 흘러나왔을 때 시민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저 소수의 한물간 정치인들의 헛소리거나 온라인상을 떠도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말이 실제로 일국의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쳐 헌정질서 유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졌고, 여전히 부정선거를 비롯한 극우의 음모론적 세계관은 ‘윤 어게인’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다.
계엄을 선언하던 윤석열은 우리가 조잡스러움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미디어 이론가 플로리안 크레이머는 인공지능(AI) 구루들이 초지능 시스템을 찬양하는 동안 현실은 오히려 점점 더 조잡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이점’(singularity)이 아니라 ‘조잡성’(crapularity)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기록, 편향된 데이터셋, 노이즈로 가득한 로그에 의존해 세계와 대면한다.
이때 조잡성은 단순한 기술적 한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AI의 기계학습은 ‘이해’가 아니라 ‘패턴 맞추기’를 가속화할 뿐이다. “클릭=관심” “구매=취향” “특정 지역=위험”이라는 식으로 모든 것이 단순하게 해석된다. 복잡한 현실은 관습적인 패턴으로 환원되고, 기계의 판단뿐 아니라 인간의 판단 역시 그러한 패턴 위에서 이뤄진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넘쳐나는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삶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 그것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단순해지는 상황. 고통을 설명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종교적 서사조차 상품이 돼버리고, 그렇게 시장을 통해 유통되는 이야기 외에는 세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그 이야기는 열린 사회가 아닌 더 편협하고 고립된 반향실로 파고든다.

‘밧데리 아저씨’라 불리는 박순혁씨가 2023년 4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운영하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모습. 유튜브 갈무리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유독 시선이 머무는 인물이 있다. 김어준도 전한길도 아닌, 유튜브 채널 ‘우공이산티브이(TV)’의 박순혁이다. 그는 몇 년 전 2차전지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예견하며 ‘밧데리 아저씨’라는 별명과 함께 팬덤을 형성했다. 하지만 2차전지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준을 넘어 폭망하)자 어느 순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차전지 산업을 둘러싼 투자 정보는 단순한 분석을 넘어 하나의 음모론적 세계관으로 발전했다. “공매도 세력” “외국인 세력” “언론과 증권사의 음모” 같은 서사는 수많은 개인투자자를 결집했다. 기업 실적, 산업 전망, 기술 경쟁력 같은 지표와 데이터, 그에 따른 분석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주식시장이 음모론의 가장 활발한 격전지가 됐다.
클레멘스 아프리히는 우리가 음모론 등 편집증적 상상력에 빠지는 이유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의미의 과잉에 있다고 설명한다. 기존의 상징적 질서가 흔들릴 때 인간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다시 붙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패턴을 찾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는 ‘트레마’, 즉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과 긴장의 상태다. 둘째는 ‘아포페니아’, 무관한 데이터들이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패턴으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나스트로페’,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며 그 해석이 고정되는 단계다.
“왜 내 데이터 분석이 틀렸지? 아, 공매도 세력이 있구나, 이 개××들.” 밧데리 아저씨의 음모론적 세계는 이렇게 공고해지고, 이는 돈을 잃고 비탄에 빠진 개인투자자들을 결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의 확인이라기보다는 나를 위로해줄 패턴의 발견이다. 특정 종목이 하락하면 그것은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니라 ‘세력의 공격’이 되고, 특정 뉴스는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작전’이 되는 식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주식시장이라는 믿음. 이는 언제든 깨질 수 있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음모론으로 몰아넣는 집단적 편집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재명 정부가 주식시장 부양을 약속하고 각종 시사 프로그램이 ‘땡주식 뉴스’를 흥분된 목소리로 전하는 분위기가 염려되는 이유 중 하나다.
금융자본주의 드라이브는 시민들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각자도생으로 밀어넣는다. 이제 우리는 노동자도 소비자도 아닌, 투자자로 호명된다. 내 자산의 등락이 곧 삶의 존폐가 되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시장의 냉혹한 원리(노이즈)를 견디기보다 명확한 배후(신호)를 찾으려 든다. 망상의 3단계 중 아나스트로페(세계의 재구성)가 국가 단위에서 일어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워진다.
국가가 보장해야 할 사회적 안전망이 ‘주식 수익률’이라는 불안정한 숫자로 대체될 때 음모론은 그 불안을 위로하는 가장 값싼 진통제 혹은 중독물질이 될 것이다. 의미의 과잉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오로지 숫자로만 구성된 추상의 세계와 적절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주식시장뿐 아니라 0과 1의 이진법으로 구성된 온라인 세계도 마찬가지다.
손희정 시사덕후, 문화평론가
*손희정의 정치 리부트 : 낡은 세계는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시절, 구태를 뒤집는 새로운 정치를 보고 싶은 시사덕후의 시사 평론. 4주마다 연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오늘 밤 0시부터 차량 5부제…공공은 의무, 민간은 자율 참여

‘15평 아파트·재산 6억’ 박홍근…국힘 “검소해서 질의할 게 없다”

트럼프 “공격 유예” 발표 15분 전…8700억원, 수상한 원유 거래

조국 “민주당 정치인들이 부산 출마하지 말라고 해”

“미, 파키스탄서 이란과 회담 추진 중…상대는 ‘실세’ 갈리바프”

‘에너지 절벽’ 재택근무, 학교는 주4일제 간다…남아시아 초비상

이란 “트럼프와 협상 NO…호르무즈 예전으로 못 돌아가”

전투기 1시간에 승용차 7년치 탄소배출…할수록 ‘망하는’ 전쟁

“교도관들, 윤석열 보면 진상 손님 같다고…식탐 강한 건 사실”

“남 얘기 함부로 안 하기” 공장서 숨진 19살…2년째 산재 인정 못 받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