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버 과나의 프로필 사진. 과나 인스타그램 갈무리

유튜버 과나의 모습. 과나 인스타그램 갈무리
정의당 당직자가 된 지 다음달이면 꽉 채워 2년이다. 2024년 6월부터 했으니 정확하게 정의당이 원외로 밀려난 직후 당직자가 된 셈이다. 내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업무는 성명을 생산하는 것인데, 2년간 성명을 쓰면서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쓴 그 어떤 성명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식적인 말로 가득한 성명도 그와 관련된 정의당의 지난 행보가 상식적이지 못했다면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별다른 논리 없이 선언과 주장으로 채운 성명이라도 정의당의 실천이 충분히 열정적이었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논리가 된다. 예컨대 권영국 대표가 후보로 나선 지난 제21대 대선에서, 나는 그의 이름을 내세운 메시지에서 ‘연대’를 이야기할 때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그 메시지의 논리였다.
나의 논리와 필력이 당의 역사와 실천을 넘어설 수 없다는 깨달음. 글의 힘을 단호하게 믿는 사람에게 그 깨달음은 어쩌면 절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의 힘을 믿는 일보다 일상의 평정심을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한 나 같은 인간에게 이런 깨달음은 소중하다. 성명에 힘이 없다면 당 탓이고, 힘이 있으면 당 덕분이라는 것 아닌가. 어느 쪽으로든 나의 자존감이 무너질 일은 없다는 안정감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반쯤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내가 만들었지만 내 것은 아니라는 인식은 실제로 어떤 종류든 창작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누군가에겐 단단한 겸손함으로 돌아오고, 누군가에겐 무거운 책임감으로 돌아와 일을 지속해나갈 힘이 되기도 한다.

유튜버 과나가 만든 ‘애들보다 말 안 듣는 어른들’ 영상. 유튜브 갈무리

유튜버 과나가 만든 ‘잘하는 집을 안 가봐서 그래’ 영상. 유튜브 갈무리
‘과나’라는 유튜버가 있다. 작사, 작곡, 노래, 랩, 그림, 영상, 스토리텔링, 요리 등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아서 결국 유튜버라는 단출한 말로 수식하게 된다. 과나는 그 모든 재능을 몽땅 쏟아내 직접 만든 노래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첫 영상부터 ‘라볶이에 미친 사람의 인생 레시피’다.
2019년 첫 영상을 올린 직후 과나는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2026년 5월까지 약 240개의 영상을 올렸다. 채널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는 과나의 메인 소재였던 요리를 적당히 곁들이기만 하거나, 아예 배제한 영상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잘 모를 법한 사실에 대한 구독자들의 댓글을 모아 노래로 만든 영상이라든지, 망태 할아버지가 ‘애들보다 말 안 듣는 어른들’ 혼내주는 영상이라든지.
그렇게 영역을 넓히는 와중에도 과나가 끝까지 간직한 주제의식은 의외로 ‘따뜻함’이었다. 말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따뜻함.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희생을 감내하는 곰의 이야기가 담긴 ‘사람이 되기 싫은 곰’, 티브이(TV) 속 사람들처럼 대단치 못한 일상도 충분히 괜찮다고 위로하는 ‘나만 찌질한 사람인가봐’, 정답과 오답은 없고 서로 다른 개성만 있을 뿐이라는 ‘된장찌개의 노래’, 노동자들의 설움을 공주의 시련으로 풀어낸 ‘공주의 규칙’ 등 과나의 팬으로서 하나하나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다.
그에게도 부침은 있었다. 과나가 본격적으로 작곡가·프로듀서 활동을 하면서(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잘 자요 아가씨’를 알 것이다) 잠시 유튜브 업로드를 쉰 적이 있다. 유튜브의 잔혹한 알고리즘은 인정사정 봐주질 않아서, 한 번 떠난 크리에이터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휴식기 후 다시 올린 영상들은 더 이상 예전 같은 조회수가 나오지 않았다. 과나는 이에 좌절감을 느끼며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가 몇 달 뒤 또 끝내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숫자만 좇지 않겠다”며 “숫자만으로는 표기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그런 과나가 최근 구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여기서 한 구독자가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계속 새로운 걸 만드시나요? 번아웃 안 오나요?” 정말로 과나의 영상들은 매번 새롭고 독창적이기에, 나도 몇 번이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에 대한 과나의 답변은 그야말로 단순했다. “계속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엄청 많이 계속 만들면 됩니다.” 이게 무슨 교과서만 보고 공부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한 가지 더, “겸손하면 된다”. 계속 만들라는 답변이야 머리로 이해라도 되지만, 뒤의 답변은 가슴은커녕 머리로도 잘 이해가 안 된다. 과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엄청 많이’ 창작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결국 남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평가가 두려운 이유는 내가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고, 이건 일종의 교만입니다. 내가 너무 잘났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반대로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다음에 오는 과나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그는 단지 이미 존재하는 감정이나 이야기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번역’했을 뿐이며, 자신이 무언가를 “‘창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자신이 ‘번역’한 원창작물이 좋기 때문이고, 나쁜 결과가 나오면 자신이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해서라는 게 과나가 말하는 겸손한 마음이다. “이렇게 내가 별것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남들의 평가도 별것 아니게 되고, 그러면 계속 새로운 걸 만들 수 있습니다.”

2025년 12월13일 열린 시비에스(CBS) 뉴미디어 유튜브 채널 ‘씨리얼’ 10주년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신혜림 피디. 씨리얼 유튜브 갈무리

다른 듯 같은 태도를 11년째 뉴미디어 채널 하나를 가꾸고 있는 피디(PD)에게서도 본다. 과나가 이미 존재하는 영감을 끌어모아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라면, 이 피디는 이미 존재하는 사람 또는 사건을 콘텐츠로 만드는 제작자다. 시비에스(CBS) 뉴미디어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서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신혜림 피디 얘기다.
씨리얼은 언론사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반의 뉴미디어를 경쟁적으로 론칭할 무렵 탄생해, 경쟁사가 대부분 사라지거나 방향성을 완전히 바꾼 지금까지 초심을 지키고 있는 드문 채널이다. 주로 사회적 소수자나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 기후위기 등 진보적 의제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낸다. 이른바 ‘도파민 중독’ 시대에 정말 안 팔릴 만한 이야기를 열심히 생산하는 셈이다.
신혜림 피디가 2025년 12월 씨리얼 10년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 있다. ‘뾰족하게 다정할 것’(유유 펴냄)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는 ‘봐야 할 것을 보게 하는 채널, ‘씨리얼’이 일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안 팔릴 만한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구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담겼다. 제작자의 업무 팁을 나누는 실용서처럼 읽히다가도 저자 본인의 고민과 성찰이 사이사이 녹아 있어 에세이처럼 읽히기도 한다.
책 말미에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태도를 서술한 대목이 있다. 그는 창작의 사전적 정의가 ‘방안이나 물건 따위를 처음으로 만들어냄’이라고 언급하며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의 실체는 처음으로 만들어내기는커녕 언제나 빚지는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정리한다.
콘텐츠의 핵심 줄기는 출연자의 인생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도구는 누군가가 정리한 이론이나 철학이며, 영상은 언제나 누군가의 작업물을 레퍼런스 삼아 제작된다. 그러니 영상 하나를 만들더라도 ‘내가 만들었다’고 할 만한 것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누군가에게 빚져서 생산한 것이라는 성찰이다. 과나의 표현을 빌리면 신 피디는 ‘초점’을 맞출 인터뷰이를 찾고, 섭외하고, 그의 이야기를 영상 언어로 ‘번역’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과나에게 그런 성찰이 ‘겸손함’으로 돌아왔다면, 신 피디에겐 ‘무거운 책임감’으로 돌아왔다. “엔딩 크레디트에 생략된 누군가의 희생과 노고를 생각하면 결과물을 ‘내가 만들어냈다’는 알량한 자부심은 사라지고 무거운 책임만 남았다.” 과나의 영상에는 영감을 나눠준 누군가가 굳이 등장하지 않지만, 신 피디의 영상은 이야기를 나눠준 누군가가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에 생긴 차이일 테다.
신 피디가 떠안은 빚은 충실한 노동을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으로 상환된다. “이런 인생이, 이런 주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기꺼이 내 시간을 쓰기로 하는 것. 이러한 결정에 따라 충실히 노동하는 것.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빚을 진다. 그 빚을 안고 또 선택한다.”
흔히 창작과 자의식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특히 예술과 자의식은 거의 한 쌍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과나와 신혜림이 보여준 것처럼 그 둘을 효과적으로 분리해내는 창작자도 있다.
자의식과 분리된 창작은 반복성과 꾸준함을 본질로 하는 노동의 영역에 비로소 안착한다. ‘숫자만으로 표기될 수 없는 무언가’를 좇는 과나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좇는 신혜림이 물질적 보상이 충분치 않음에도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동기가 “내가 만들었지만 내 것은 아니다”라는 간단한 인식 때문이라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며, 내가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누군가에 대한 빚만 늘어난다. 그래도 뭐 어떤가. 나는 이 사실이 도리어 즐겁다. 누구도 이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빚을 꼭 껴안고 다시 한번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로 선택할 뿐이다. 최소한 그 ‘선택’만큼은 온전히 내 것 아닌가. 내가 진 빚은 나의 결과물에 빚질 미래의 누군가가 대신 갚기로 하자.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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