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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시정 싫어하는 어느 신문의 ‘지극정성’ 백래시

영진위 성평등·다양성 지원정책에 ‘역차별’ 프레임 씌워… 영화인 대다수의 지지 여론에는 ‘나몰라라’
등록 2026-01-22 21:43 수정 2026-01-29 12:48
2025년 영화 속 성평등이 얼마나 균등하게 재현되는가를 가늠하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들. 왼쪽부터 ‘딸에 대하여’ ‘하이파이브’ ‘파과’ ‘검은 수녀들’. 각 영화사 제공

2025년 영화 속 성평등이 얼마나 균등하게 재현되는가를 가늠하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들. 왼쪽부터 ‘딸에 대하여’ ‘하이파이브’ ‘파과’ ‘검은 수녀들’. 각 영화사 제공


 

2025년 10월 초, 지인이 온라인 기사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별생각 없이 클릭했다가 당황했다. 표독스럽게 일그러진 내 얼굴이 화면에 떴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교육방송(EBS)에서 방영된 ‘까칠남녀’의 한 장면을 갈무리한 것이었다. 이 사진 한 장을 쓰기 위해 굳이 그 옛날 프로그램까지 뒤졌다니, 꽤 정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 제목은 “‘여성가산점’ 폐지 권고에 ‘LGBT 가산점’ 도입한 영진위”였다. 대구·경북 지역 종합일간지를 표방하는 매일신문의 보도였다. 기사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성평등 영화정책을 ‘역차별 가산점’이라면서, 이 정책에 관여했던 성평등소위원회 위원 몇몇을 특별히 언급했다. 그중 한 명이 나였다. 사진 아래에는 “‘까칠남녀’에 출연해 군가산점제도에 대해 발언한 손희정 평론가”라는 설명이 덧붙어 있었다.

하지만 기사가 내 얼굴을 어떻게 소비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본질은 성평등 정책을 특정 정치적 맥락 속에 가둬 ‘논란’으로 변질시키는 방식에 있다. 이는 전형적인 백래시(반격)의 문법을 따른다.

‘다양성 항목’을 ‘LGBT 가산점’으로 축소

앞의 기사에서 공격하는 ‘여성가산점제’와 ‘엘지비티(LGBT) 가산점제’는 2021년부터 본격화한 영진위 성평등 영화정책을 가리킨다. 매일신문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대구 북구을)과 손잡고 2025년 국정감사에 맞춰 이 정책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2025년 10월5일부터 9일까지,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여자·LGBT 안 다루면 감점”이라는 내용의 특집 기사를 쏟아낸 것이다.

이 특집을 관통하는 논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역차별 방지 권고에도 불구하고 영진위가 여성가산점제를 폐지하는 대신 LGBT 가산점으로 확대해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사실과 다르다. 성평등 평가 항목(이른바 ‘여성가산점’)과 다양성 평가 항목은 적용되는 지원 사업도, 심사 단계도, 평가 기준도 서로 다르다. 여성가산점은 독립예술영화 제작 등 8개 지원 사업에 적용되고, 매일신문이 ‘LGBT 가산점’이라고 명명한 다양성 항목은 현재 시나리오 공모전 1개 사업에 한해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기사는 ‘다양성 항목’을 굳이 ‘LGBT 가산점’으로 축소해버렸다. 해당 평가 지표에는 성별, 지역, 연령, 계급, 장애, 기타 과소대표 집단이 모두 포함된다. 성소수자는 그중 한 항목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항목만 전면에 내세운 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보수 및 극우 정치가 가장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정서를 겨냥한 선택이다. 지역 영화 생태계를 대변해야 할 지역 일간지와 국회의원이, 정작 정책에 포함된 ‘지역’ 항목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정말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25년 영화 속 성평등이 얼마나 균등하게 재현되는가를 가늠하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들. 왼쪽부터 ‘그녀에게’, ‘리볼버’ ‘럭키, 아파트’ ‘한국이 싫어서’. 각 영화사 제공

2025년 영화 속 성평등이 얼마나 균등하게 재현되는가를 가늠하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들. 왼쪽부터 ‘그녀에게’, ‘리볼버’ ‘럭키, 아파트’ ‘한국이 싫어서’. 각 영화사 제공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애초에 영진위가 성평등 지수를 도입하게 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한국 영화계의 구조적인 성별 편향성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꾸준히 지적된 문제였다. 대작 상업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고 제작과 투자, 배급 전반에 걸친 산업 구조 역시 남성 중심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뛰어난 역량을 갖춘 여성 영화 인력이 성장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하기에는 불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여기에 현장 내 성희롱·성폭력 문제와 여성 영화인의 경력 단절 문제까지 겹치면서 성별에 따른 구조적 불균형은 더욱 고착화됐다. 201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터져나온다.

여전히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

이를 보여주는 지표는 분명하다. 영화학교 여학생 수가 남학생 수를 앞지른 지는 오래됐지만, 2025년 현재에도 장편 상업영화의 여성 감독 비율은 20%를 넘지 못한다.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주요 스태프 내 여성 비율 역시 30% 선에 머물러 있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은 단지 사회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영화 콘텐츠의 창의성과 다양성,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제약하는 구조적 한계로 작동한다. 성평등 지수가 특정 서사를 강요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역설적으로 현재의 한국 상업영화는 30~50대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극히 제한된 범주의 경험과 시선에 의해 과도하게 점유된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2018년 영진위 내에 성평등소위원회가 설치됐고, 이후 전문적인 연구와 공론장의 숙의 과정을 거쳐 성평등 지수가 영진위 지원 사업에 도입된다. 이는 특정 집단에 특혜를 부여하려는 조치라기보다는, 오랜 차별로 인해 기회 평등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영역에 인위적 보정장치를 두는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에 해당한다. 영국영화협회(BFI), 스웨덴영화협회(SFI), 오스트레일리아영화위원회(Screen Australia) 등 주요 영화 선진국의 기구는 이미 이런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오히려 현재의 5점 가산점 방식만으로는 정책 실효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성평등 영화정책의 철학적 토대는 단순히 남녀의 산술적 성비를 맞추는 데 있지 않다. 그 핵심에는 ‘다양성의 동수’를 지향하는 거시적 비전이 놓여 있다. 만약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지 않다면, 공공의 지원은 인구 구성비에 따라 정당하게 분배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이 철학의 출발점이다. 이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다수 집단이 구조적으로 과도한 몫을 점유해온 현실에 개입해 불공정을 바로잡자는 제안이다.

따라서 다양성 평등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성평등 영화정책이 인종, 계급, 장애, 지역,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서로 교차하는 다양한 차별의 축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정책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중 성별은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차별의 축이자, 동시에 다른 소수자 의제를 가시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가산점제’는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적 전환과 영화문화의 질적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역차별’ 담론을 활용하는 기득권 집단

그렇다면 성평등·다양성 평가 지표에 대해 영화 현장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정책이 정치적 진영 대립의 소재가 되면 ‘여성가산점’이나 ‘역차별’ 같은 단순화된 표현을 경유해 논쟁이 재구성되기 쉽다. 그러나 해당 정책을 활용하고 그 영향을 직접 체감하는 현장 영화인들의 인식은, 공적 담론에서 재현되는 갈등 구도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금년도 영진위에서 발간한 ‘영화진흥사업 성평등 및 다양성 지원정책 평가 연구’ 보고서는 이 지점을 점검한다. 보고서는 초점집단면접(FGI)과 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병행했다. FGI에는 프로듀서·감독·투자자 등 다양한 직군의 현장 영화인들이 참여했고, 설문조사 역시 20대부터 60대까지 서로 다른 경력 단계와 성별을 아우르는 응답자로 구성됐다.

설문조사 결과, 성평등·다양성 영화정책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82.7%에 달했다. 반면 이러한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가 역차별을 초래하거나 공정성을 훼손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10% 수준에 그쳤다. 성별이나 연령대에 따른 유의미한 격차 없이 전반적인 공감대가 확인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보고서는 특히 20대 응답자의 동의율이 높았다는 점을 짚으면서 이를 통해 “산업 진입 초기 단계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구조적 불균형을 직접 체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매일신문이 누군지 특정하지도 않은 채 인용한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이 실제 정책과 연루된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는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질문을 제기한다. 충분한 준비 기간과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시행된 성평등·다양성 정책이 왜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가.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그 원인을 20~30대 영화인들의 보수화나 인식 부족에서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여전히 권력과 의사결정 권한을 쥔 기득권 집단이 ‘역차별’이라는 담론을 명분 삼아 어떤 선택과 판단을 반복하는지의 문제가 더 핵심적인 변수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025년 영화 속 성평등이 얼마나 균등하게 재현되는가를 가늠하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 ‘빅토리’(왼쪽), ‘최소한의 선의’. 각 영화사 제공

2025년 영화 속 성평등이 얼마나 균등하게 재현되는가를 가늠하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 ‘빅토리’(왼쪽), ‘최소한의 선의’. 각 영화사 제공


한국 영화의 지속가능성 막는 선동적 뉴스

다시 매일신문 기사로 돌아가보자. 기자는 ‘까칠남녀’를 갈무리함으로써 내가 군가산점제에는 반대하면서 여성가산점제에는 찬성한다는 점이 상호 모순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제도는 ‘가산점’이라는 단어만 공유할 뿐 법적 근거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군가산점제는 병역 의무 이행에 대한 사후 보상적 성격이 강하며, 이는 불평등한 구조 자체를 바로잡으려는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와는 궤를 달리한다. 헌법재판소가 군가산점제에 위헌판결을 내린 이유는 병역 이행 여부를 공직 진입의 결정적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여성, 장애인, 비제대군인의 평등권(헌법 제11조)과 공무담임권(헌법 제25조)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선동적 뉴스는 복잡한 맥락을 지우고 자극적 이미지와 낱말을 잡아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주목을 끈다. 그러나 영진위가 걸어온 성평등과 다양성의 행보는 공격받아야 할 꼼수나 실책이 아니라, 한국 영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렵게 일궈낸 성취다. 왜곡된 프레임을 벗겨내고 이 정책의 맥락과 성과, 앞으로 나아갈 바 등을 정확히 검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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