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는 5 대 5. 후반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30초. 한국과 짐바브웨의 4강전, 어디든 한 골이면 결승이다. 한국 남제냐(16)의 패스를 받은 포시 완지(27)가 공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슛을 날렸다. 쭉 뻗어나간 공이 골대를 맞고 튕겼다. 주장 김성준(25)이 튕겨 나온 공을 잡으려 했지만, 공 소유권이 넘어갔다. 짐바브웨가 공격을 시도했다. 한국 진영에서 패스를 주고받길 20여 초.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짐바브웨 선수가 슛을 했다. 그리고 호각 소리가 울렸다.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이 2024년 9월21일부터 28일까지 성동구에 있는 한양대에서 열렸다. 한겨레21은 제1530호 표지이야기를 통해 한국 국가대표팀에 도전한 홈리스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가족을 잃고 한국에 넘어와 공항에서 1년 넘게 버틴 완지와 지옥 같았던 보육원 생활을 딛고 사회에 나와 자립을 준비하는 성준 등 8명의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주일 동안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그 시작은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짐바브웨를 만나 팽팽한 대결을 벌이기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월21일 오전, 한양대 대운동장은 수십 개의 언어로 외치는 노랫소리로 가득 찼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 이번 홈리스월드컵엔 42개국 700여 명의 선수가 참여했다. 한양대 사물놀이 동아리가 앞장서 꽹과리와 장구를 치며 걷자 한국 대표팀을 시작으로 42개국 선수들이 줄지어 한양대 교내를 행진했다. 성준과 완지가 가장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리듬에 맞춰 덩실덩실 뛰며 걸었다. 그 뒤를 홍승우(23)를 비롯해 나머지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따랐다. 대표팀에 도전했지만 취업하면서 최종 엔트리에는 빠진 정혜세(23)도 행진에 참여했다.
“제자리에서 뛰다가 출발. 왼발부터!” 개막전을 치르는 한국 대표팀은 행진을 마치고 곧바로 몸을 풀었다. 송정섭 코치의 구령에 맞춰 스트레칭하는 선수들의 얼굴엔 어느새 웃음이 가셨다. 전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성준은 “컨디션은 좋다”고 했다. 30분 정도 몸을 데운 선수들을 이한별 감독이 불러 모았다. “자, 모든 홈리스월드컵은 경기가 끝난다고 해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야. 지든 이기든 함께 경기했던 선수들, 스태프 다 모여서 손잡고 관중석을 향해 뛰어가면서 세리머니를 한다. 알겠지?”
감독의 말이 끝나자 선수들이 경기장 앞에 일렬로 섰다. 성준이 긴장을 풀어보려는 듯 박수를 치면서 소리쳤다. “가자, 가자!” 개막전 상대는 독일. 월드컵 축구라면 버거운 상대지만, 여긴 홈리스월드컵이다. 독일의 홈리스월드컵 랭킹은 한국(25위)보다 한 계단 아래인 26위. 한국은 첫 선발로 제냐-완지-성준이 나섰다. 골대는 김재민(23)이 지켰다. 제냐는 가장 어리지만 유일하게 축구부 경험이 있는 에이스다.
킥오프를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렸다. 전반 1분도 지나지 않아 페널티킥 기회가 왔다. 완지가 나섰다. 독일 골키퍼가 먼저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는 것을 보면서 찬 공이 크게 골대를 벗어났다. 평소 완지라면 하지 않을 실수였다. 긴장한 탓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다행히 추가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전반 1분, 성준이 찬 공이 골대를 맞고 흘러나왔다. 반대편에서 달려들던 완지가 살짝 밀어 넣었다. 이 득점을 시작으로 한국은 4골을 넣었다. 독일을 상대로 개막전 4 대 0 승리. “비행기를 타는 기분이었어요.” 첫 경기를 마치고 나온 성준이 자신을 둘러싼 취재진에게 말했다. “처음엔 긴장을 많이 했는데 독일이 생각보다 못하더라고요. 골대도 커 보였는데 더 골을 못 넣어서 아쉬워요. 그래도 첫 경기 이겼으니까 충분합니다.” 완지는 페널티킥을 놓친 것을 두고 “너무 긴장했고, 스스로도 놀랐다”며 “그래도 이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개막전 승리에 한국 대표팀 전체가 달아올랐다. 그러나 첫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회 이튿날인 9월22일, 한국 대표팀은 우승 후보 멕시코를 시작으로 강팀과 연달아 경기했고, 모두 패했다. 멕시코에 0 대 10으로, 영국엔 0 대 7로 대패한 한국 대표팀은 9월23일 불가리아와 이집트에도 각각 1 대 9, 1 대 7로 졌다. 9월24일 스위스전에선 4경기 만에 승리를 거뒀지만, 정성덕(50)이 큰 부상을 당했다. 스위스 선수와 부딪히는 순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성덕의 얼굴이 처음으로 크게 일그러졌다. 허벅지 뼈 골절이었다.
지적장애를 지닌 성덕은 대표팀에서 나이가 가장 많지만 누구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큰 선수다. 선수 선발 테스트 때부터 성덕은 늘 ‘우승’을 외쳤다. 입버릇처럼 대회에 나가 4골을 넣겠다고 말했다. 개막전엔 뛰지 못했던 성덕은 “팀이 4골을 넣어서 됐다”며 다음 경기에선 꼭 골을 넣겠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골’도 ‘우승’도 겪기 전에 부상으로 대회에서 이탈했다.
성덕은 경기도 오산의 성심재활원에서 30년 넘게 지냈다. 2021년 성심재활원에서 장애인 학대 문제가 불거지면서 시설이 폐쇄됐고, 그때 처음으로 사회로 나왔다. 이후 안산의 장애인 자립생활시설 ‘체험홈’에서 2년 동안 지냈다. 2023년에야 처음으로 홀로 살기 시작했다. 다만 아직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번 홈리스월드컵도 지원사의 도움을 얻어 신청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탓에 1차 합숙 때까지만 해도 다른 선수들과 데면데면하게 지냈지만, 어느새 선수들은 ‘성덕쌤'이라고 부르며 늘 성덕을 잘 챙겼다.
예상치 못했던 성덕의 부상으로 팀 분위기가 침체됐다. 한국 대표팀은 이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프랑스전에도 연패하면서 조별리그를 마무리했다. 홈리스월드컵은 최대한 많은 국가에 트로피를 주기 위해 조별리그를 한 다음, 비슷한 성적을 거둔 팀끼리 묶어 토너먼트를 진행한다. 각 조의 1~2위끼리 토너먼트를 진행해 우승팀을 뽑고, 또 3~4위 팀이나 5~6위 팀끼리 대결하는 식이다. 이번 월드컵에선 조별리그를 마친 뒤 5개 그룹으로 나눠 토너먼트를 진행했는데, 한국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7위를 기록해 4번째 그룹에 속했다.
9월27일 오전, 토너먼트 첫 경기가 열렸다. 지면 그대로 떨어지는 상황. 이한별 감독은 경기 내내 소리를 질렀다. “바짝, 바짝 해! 가운데로, 지금!” 감독의 외침이 선수들에게 가닿았다. 동점 상황에서 후반전에 돌입한 한국은 2골을 넣어 4 대 2로 이탈리아를 꺾었다. 4강 상대는 짐바브웨. 경기 전 이한별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 이기면 결승이야. 물론 네 번째 그룹이긴 하지만. 짐바브웨가 한 명만 잘해. 걔를 완지가 잘 막아줘야 하고, 성준이 너는 덤비지 말고 슈팅만 잘 막아. 이해했어?”
“네, 할 수 있습니다!” 성준이 답했다.
“그리고 다들. 패스 오면 잡고 차지 말고, 논스톱으로 슛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짐바브웨와의 4강전 휘슬이 올리자 단체로 관람을 온 초등학생들이 우렁찬 응원을 시작했다. 경기 내내 한국이 앞서며 리드했지만, 짐바브웨는 집요하게 따라잡았다.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짐바브웨 선수가 때린 슛이 골키퍼 재민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다리를 맞고 힘없이 구르는 공을 재민이 서둘러 잡아챘지만 이미 골라인을 넘은 뒤였다.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삑, 삑, 삐익.’ 호각 소리가 울리자 완지는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막내 제냐는 빈 골대에 공을 차더니 주저앉아 울었다. 전날 프랑스에 이기다가 역전당했을 때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앞에서 승리를 빼앗긴 것이 분해 울었다. 직전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이기고 울었던 성준은 되레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상대 선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축하해줬다.
“마지막 (짐바브웨) 게임은 진짜 국가대표처럼 하고 싶었어요. 재밌는 게임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짐바브웨전은) 시작부터 재밌었고, 처음으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결국엔 우리가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마음이 들어서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성준이 말했다.
한국 대표팀은 대회 마지막날인 9월28일, 스위스를 4 대 2로 이기면서 4번째 그룹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남성팀과 여성팀 우승은 모두 멕시코가 차지했다. 멕시코는 주마다 홈리스를 대상으로 스트리트사커 대회를 연다. 여기서 선발된 선수들은 2주 동안 훈련받고 홈리스월드컵에 나선다. 1년에 한 번, 공개모집으로 선수들을 선발해 짧은 훈련만 거친 뒤 대회에 나서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금도 명예도 없는 경기지만, 멕시코를 포함해 대회에 참여한 700여 명의 선수는 모두 경기장 안에서 진심을 다해 뛰었다. 밖에서는 웃고 떠들며 춤추던 선수들이 경기할 때는 여느 프로 경기보다 치열했다. 14분 동안 모든 걸 발산했고, 끝나면 함께 손잡고 관중석을 향해 포효했다.
일주일 동안의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이미 합숙 훈련 때부터 대표팀을 ‘가족’이라고 표현했던 완지는 “축구는 그냥 즐겼고, 가족을 얻었다”고 말했다. “단체메신저방이 있어요. 거기서 대회가 끝나더라도 우리는 계속 연락할 거예요.” 짐바브웨에 지고 한참을 울었던 제냐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짐바브웨전 패배 이후 제냐와 함께 울었던 유찬혁(19)도 “끈기가 많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열정적으로 포기를 안 하고 도전할 것 같다”며 웃었다.
성준은 이렇게 말했다. “보육원을 부끄러워했는데 이젠 보육원을 다닌 게 자랑스러워요. 덕분에 국가대표도 될 수 있었잖아요. 일주일 동안 게임이 아니라 모험을 한 거 같아요. 제 꿈은 사회복지사였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일 동안의 ‘드림’은 끝났다. 7월 말부터 홈리스월드컵만을 위해 달려왔던 선수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젠 각자 삶에서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완지는 당장 머물 곳을 찾아야 하고, 사회복지사 실습을 마친 성준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어야 한다. 승우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곧 오스트레일리아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아직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 선수 선발 때부터 대회까지 대표팀 매니저 역할을 한 이가영 조직위원회 사무국 팀장은 한동안 선수들 지원을 이어간다.
폐막식 이틀 뒤인 9월30일. 경기도 안산에 승우와 이한별 감독, 이가영 팀장이 모였다. 수술을 마치고 요양병원으로 이동한 성덕의 병문안을 위해서다. 이들을 본 성덕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폈다. 경기 결과를 묻는 성덕에게 복잡한 결과를 설명하기 어려워 “잘 끝났다”는 말만 건넸다. 성덕은 “내년에도 출전하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평생 한 번만 출전 가능한 홈리스월드컵은 다시 나올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도전이 끝난 건 아니다. 성덕은 사랑하는 축구를 다시 하기 위해 재활에 도전할 것이고, 자립에도 도전할 것이다. 물론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이들은 계속 나아간다. 어디로 구를지 아무도 모르는 둥근 공처럼.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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