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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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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끝나도 꿈은 남는다

등록 2002-06-27 00:00 수정 2020-05-03 04:22

함께 열띤 응원 보낸 이주노동자들, 그러나 축제 와중에도 맞고 빼앗기고 모욕당해

베트남에서 온 반 현(45)은 인천의 한 도금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쳤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의 쉼터에서 요양 중인 그는, 지난 6월14일 한국-포르투갈전이 열리던 날 허리에 보호대를 차고 거리로 나갔다. 그 전부터 인권센터 간사들은 “나가도 된다”고 했지만 그는 줄곧 쉼터 텔레비전으로만 경기를 지켜봤다. 이날부터 인천 일대에서 일하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문학경기장 밖 야외응원장으로 쏟아져나왔다. 국적과 피부색을 떠나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만큼 반 현은 허리 통증도 잊고 이주자의 설움도 씻을 수 있었다.

붉은 아쥬… 붉은 조선족

거리 응원전에 쏟아져나온 수많은 코시안(한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뜻하나 한국에 와 있는 아시아인들을 일컫는 범칭어로 쓰임)들에게 한국의 승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승리다. 그 공동체는 한국이기도 하고 아시아이기도 하고 비서구권의 모든 나라들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코안(34·경기 남양주)도 버마에서 온 파웅(52·경기 용인)도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온 이지브(29·경기 안산)도 한국 대표팀의 선전에 “기쁘고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 온 지 10년째인 파웅은 “한국은 나에게 ‘우리나라’이다”라고 응원을 한 이유를 밝혔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한국-스페인전 때 광주까지 원정응원을 갔던 필리핀 출신 아쥬(32·서울 구로)는 틈만 나면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다녀 ‘붉은 아쥬’란 별명도 얻었다.

33만명(법무부 추계)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조선족 동포(15만명)들은 아예 조선족 붉은악마를 조직하기도 했다. 서울 구로동 조선족교회에 다니는 이들은 한국전이 벌어지는 날마다 구로중·고등학교 운동장을 빌려 응원전을 펼쳤다. 조선족 교회에서 구인·구직 상담을 맡고 있는 노인천(57)씨는 “경기 전날 설레는 가슴으로 깃발과 북을 점검한 다음 당일에는 일찍 운동장에 나섰다”며 “1만여명이 넘는 구로동 주민들이 함께해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옌볜에서 온 이해순(41)씨는 “커다랗게 펄럭이는 태극기도, 청년들이 흔드는 한반도기도 모두 감격스럽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반 현의 경우에서 보듯 상당수 이주노동자들은 월드컵 초반에는 거리에 나서길 꺼렸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의 허광 사무국장은 “불법체류자는 물론, 체류비자가 있는 이들도 괜한 심적 부담 때문에 거리에 나서지 못했다”며 “노동비자가 아니므로 언제든 불법시비에 휘말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팀의 선전이 거듭되면서 이들의 긴장이 많이 누그러졌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축제의 참모습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 축구의 대표선수이자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꿈의 고장이다. 월드컵이 끝나도 꿈은 남는다. 그러나 외국인 연수제도 폐지와 이주노동자 인권보장을 위해 5월7일부터 시작된 외국인노동자차별반대서명운동(www.jcmk.org) 사이트의 토론방에 들어가보면 월드컵 기간에도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맞고 빼앗기고 모욕당했다.

안정환·박지성이 돈도 못 받고 쫓겨난다면…

월드컵 기간에 일자리를 잃은 코안은 “안정환 선수나 박지성 선수가 이탈리아나 일본에서 열심히 뛰고도 돈을 못 받거나 추방당하는 일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라며 “그들도 그 나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가”라고 우리 안의 이중잣대를 꼬집었다.

거스 히딩크가 한국 대표팀의 저력을 일군 승부사였다면, 구제금융 한파를 딛고 이룬 경제회복에는 40만명 이주노동자의 땀이 배어 있다.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김해성 목사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월드컵이 열린다면 우리는 예선탈락 수준”이라며 “정정당당 코리아의 캐치프레이즈를 이제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적용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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