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의 기적’이 브라질 앞에서 멈췄다. FIFA(피파) 랭킹 세계 1위 브라질의 벽은 높았다. 그러나 ‘눈물의 퇴장’은 없었다. 목표로 했던 원정 16강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서로를 안아주고 토닥여줬다. 2014년, 2018년 눈물을 흘리며 월드컵을 마무리했던 손흥민도 이번엔 울지 않았다. 한국의 2022 카타르월드컵 무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2022년 12월6일 새벽(한국시각) 카타르 도하 974 경기장에서 열린 16강전에서 한국은 브라질에 1-4로 패배했다. 전반전에만 4골을 허용하며 승기를 내줬다. 기술과 기세, 체력 싸움에서 밀렸다. 한국의 패배를 마지막으로, 16강에 오른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3개팀(한국· 일본·호주) 모두 8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됐다.
브라질을 상대로 한국은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손흥민과 조규성이 투톱으로 나섰다. 왼쪽 미드필더엔 3차전 교체 투입돼 극적인 결승 득점을 했던 ‘황소’ 황희찬이 나섰다. 중앙 미드필더엔 황인범과 정우영, 오른쪽엔 이재성이 선발출전했다. 종아리 부상으로 조별리그 3차전에 빠졌던 수비의 핵 김민재와 김영권이 중앙 수비수로 나섰고 김진수와 김문환이 각각 왼쪽과 오른쪽 수비수로 투입됐다.
이에 맞서 브라질은 하피냐와 히샬리송, 비니시우스가 공격 삼각편대로 나섰다. 발목 부상으로 조별예선 2차전과 3차전 결장했던 네이마르도 선발로 출전했다.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는 1992년생으로 손흥민과 동갑내기다. 그는 2013년과 2022년 한국과의 국가대표 친선경기에 나와 각각 2-0, 5-1 승리를 이끈 선수다.
이날 경기장 분위기는 브라질의 홈 경기장을 방불케 했다. 이미 조별리그에서 1위로 올라갈 것을 예상하고 표를 예매해둔 브라질 국민들이 관중석에 가득 찼다. 브라질 관중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세계 1위를 상대한 한국 선수들은 전반 초반부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전반 7분. 레알마드리드에서 뛰는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의 첫 골이 터졌다. 브라질의 측면 공격수 하피냐가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달고 뛰었다. 김진수가 붙었지만 순간적으로 제쳐낸 하피냐는 뒤쪽으로 공을 전달했다. 골문 앞 브라질 공격수와 한국의 수비수가 엉켜 공을 받지 못했고, 공은 뒤에 홀로 있던 비니시우스에게 연결됐다. 비니시우스는 침착하게 비어있는 골문으로 차 넣었다. 비니시우스의 월드컵 첫 골이었다.
첫 골 이후 5분도 지나지 않아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공을 걷어내려던 정우영의 발 앞에 히샬리송이 발을 뻗어 걷어차이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브라질 입장에선 영리하게 얻어낸 파울이었다. 전반 12분. 네이마르가 한국의 골키퍼 김승규의 템포를 완전히 빼앗는 슈팅으로 페널티킥을 성공했다. 전반전 내내 브라질의 흐름이 이어졌다. 쉽게 공격했고, 쉽게 골을 넣었다. 한국 선수들은 브라질 선수들의 춤추는 세레머니를 전반에만 4차례 봐야 했다.
전반전 한국의 날카로운 공격 장면은 없었다. 황희찬이 전반 16분 페널티박스 밖에서 오른쪽 상단 구석으로 향하는 중거리 슈팅을 했지만, 브라질의 골키퍼 알리송에게 막힌 것이 전부였다. 한국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힘든 모습을 보였다. 이틀만 쉬고 경기에 나서 체력적으로 회복하지 못한 티가 역력히 드러났다.
반면 브라질은 한국과 출발점부터 달랐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16강 진출을 일찌감치 확정지은 뒤 조별예선 3차전에서 주전을 대거 빼고 1.5군을 기용했기 때문이다. 조별예선 3차전에 선발로 나선 뒤 16강전에도 선발로 출전한 브라질 선수는 수비수 에데르 밀리탕이 유일했다. 나머지 10명은 조별예선 3차전에 선발로 뛰지 않았다.
후반 시작과 함께 손준호와 홍철이 교체되어 들어갔다. 전반전의 무기력했던 모습과 다르게 후반전은 초반부터 좋은 기회를 맞았다. 시작 1분 만에 길게 넘어온 패스를 받은 손흥민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브라질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슛을 했다. 골문으로 향하는 유효슈팅이었지만, 골키퍼에 막혀 골문 옆으로 흘러나갔다.
팽팽한 흐름이 이어지던 후반 31분. 기다리던 한국의 만회 골이 나왔다. 이강인의 프리킥이 브라질의 수비수를 맞고 교체 투입된 백승호 앞으로 흘렀다. 한 번의 터치로 자신의 발 앞에 떨어트린 백승호는 그대로 왼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브라질 수비수를 막고 미세하게 굴절된 공은 그대로 오른쪽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반 30분이 넘어서야 첫 득점을 한 한국은 기세를 몰아 몇 차례 공격을 시도했지만, 끝내 브라질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브라질도 추가 득점 없이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손흥민은 경기가 끝난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 “죄송하다”면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쳐 너무나도 죄송스럽다는 말밖에 없다”며 “선수들과 스태프 모두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경기장에서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동료들을 향해서도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선수들이 자랑스럽게 싸워줬다”며 “경기를 뛴 선수들이든, 뛰지 않은 선수들이든 헌신해주는 모습이 고마웠고 그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덧붙였다. 안와골절 부상을 입고 4경기 풀타임을 뛴 부분에 대해선 “선수들이 고생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후배들을 향해선 “어린 선수들이 너무 잘해줘서 고맙고 월드컵 무대에서 실력을 펼칠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이 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월드컵 첫 출전에 데뷔골까지 넣은 백승호는 경기가 끝난 뒤 “승리에 기여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며 "벤치에 있으면서 기회가 된다면 최선을 다해 보여주려고 했다”며 “정말 좋은 경험을 했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힘든 조에서 끝까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16강에 왔다”며 “(브라질에) 졌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모두에게 보여준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에 비해 확실히 열세라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은 FIFA(피파) 랭킹 9위 포르투갈을 조별리그 3차전에서 잡아내면서 극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한 것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12년 만이다.
16강에 오른 것은 단순히 운이 아니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월드컵 전까지만 하더라도 ‘빌드업’ 축구만 고집한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막상 월드컵에 돌입한 뒤에는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한국 대표팀은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32개국 중 30m 이상 긴 패스 시도 1위(294회)를 기록했다. 또 공중볼 경합 승리도 60회로 1위였다.
11%와 29.1%. 미국 데이터 업체 ‘그레이스노트와’ 스포츠 통계 전문 업체 ‘옵타’가 각각 월드컵 직전 예상한 한국의 16강 진출 확률이었다. 통계를 바탕으로 예측된 결과를 바꿔낸 건 선수들이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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