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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원 성폭력·학대 혐의 수사, 프랑스라면 어땠을까

프랑스 성폭력·가정폭력 방지 담당 검사 ““지적장애인 진술 위주 수사는 매우 비합리적”
등록 2026-03-19 22:23 수정 2026-03-24 08:02
2026년 3월6일 상드린 미라벨로 프랑스 법무부 소속 검사(가운데)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방문해 한국의 피해자 지원기관의 현황을 듣고 프랑스의 성폭력 수사 과정 등의 내용을 나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2026년 3월6일 상드린 미라벨로 프랑스 법무부 소속 검사(가운데)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방문해 한국의 피해자 지원기관의 현황을 듣고 프랑스의 성폭력 수사 과정 등의 내용을 나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시설장이 시설 거주 여성장애인 17명 전원과 퇴소자 2명 등을 성폭력 및 학대한 것으로 알려진 ‘색동원’ 피해자 조사가 경찰의 소극적 대응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겨레21이 피해자에 대한 일회성 ‘면담 조사’의 한계를 지적했지만(제1602호 참조) 여전히 2차 조사를 받은 시설 거주 여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조사의 미진함을 답답해하는 시설 거주 발달장애 여성의 가족에게 “계시는 시설에 가서 얘기를 하다가 구체적 범죄 피해가 나와서 이야기해주면 재수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등 ‘피해 관련 진술 확보’를 피해자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게다가 피해가 의심되는 색동원 거주 여성의 의료기록 확보와 관련해서도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선경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피해자에게 언어 중심의 진술만을 요구하는 현재의 수사 방식은 피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특히 중증 지적장애인의 경우 피해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흔적이 남아 있는가를 읽어내기 위해 의료기록 확보, 전문가 관찰, 영상 기록 등 다양한 증거를 함께 수집하는 방식으로 수사가 전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기록 확보, 성폭력 수사의 첫 단계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제대로 진술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의 피해를 외국에서는 어떻게 수사할까. 프랑스 검찰청 성폭력·가정폭력 방지 담당관(검사) 상드린 미라벨로는 “프랑스에서 성폭력 수사가 이뤄질 때는 의료기록 확보는 수사관이 해야 할 제일 첫 단계”라며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진술할 수 없는 아동과 지적장애인에게 진술 위주의 수사는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미라벨로 검사는 2024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사법연수기구(International Organisation for Judicial Training) 프로그램 참석 뒤 한국의 젠더폭력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번에도 한국의 젠더폭력 피해자 단체를 만나고 피해자 지원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미라벨로 검사를 3월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나 프랑스의 성폭력 수사 절차 등에 대해 들었다.

―프랑스에선 성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어떤 절차를 밟아 신고하나.

“온라인 플랫폼 ‘마 세퀴리테’(Ma Sécurité)에서 상담·예약하거나, 긴급번호 17로 헌병대 작전·정보 콜센터에 전화해 신고할 수도 있고, 방문 신고도 할 수 있다.(프랑스는 대도시를 제외한 중소도시, 교외 및 농촌 지역은 헌병대가 치안과 경찰 기능의 대부분을 맡는다.) 모든 경찰서와 헌병대에는 성폭력 등과 관련해 전문교육을 받은 성·가정폭력 담당 수사관이 있다. 대부분 이 수사관이 조사를 맡는다. 이들은 대부분 산부인과 검사를 위한 키트를 갖추고 있고, 필요하면 피해자에게 의학적 검사를 할 수 있도록 곧바로 법의학부서(UMJ·Unit é Médico-judiciaire)로 이송하고 심리상담사 등과 바로 연계하는 등 피해자 보호와 피해자 조사를 동시에 진행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시간이 오래 지나 신고하는 경우에도 폭력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부인과 검체를 채취해 이를 분석할 수 있도록 파리의 최상급 병원인 오텔디외 병원에 보내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료기록은 수사관이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할 증거다.”

―프랑스에는 지적장애인 성폭력 피해 조사 매뉴얼이 별도로 있나.

“피해자를 인터뷰할 때 사용하는 지침서가 있다. 이 지침서 안에 취약계층 피해자 및 장애인 피해자 등을 조사할 때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가 모두 담겼다. 특히 프랑스는 지적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처음 신고할 가능성이 큰 헌병대가 프랑스 최대 지적장애인 연합체인 유나페이(Unapei)와 ‘지적장애인에 대한 공공서비스 제공 기본 협약’을 맺고, 지적장애 피해자를 가장 먼저 접할 헌병대 콜센터 요원들에게 ‘지적장애 피해자에게 최선의 공공 수사 절차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다.”

안정감 주기 위해 ‘피해자 동반견’ 제도 도입

―구체적으로 지적장애인을 어떻게 조사하나. 한국에서는 주로 아동 조사를 위해 설계된 미국 국립아동건강발달연구소(NICHD) 조사면담 기법을 활용한다.

“지적장애인이나 아동의 경우 ‘면담’을 통해, 즉 질문을 통한 진술만으로 피해를 입증한다는 생각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프랑스는 질문하는 방법을 주로 규정한 NICHD 기법도 사용하지만, 그 밖에 다른 대안적 의사소통 방법, 피해자에 맞게 제스처 등 비언어적 증언을 맞춤형으로 수집하고, 글쓰기·그림그리기·그림카드 등 여러 도구를 섞어서 사용한다. 또한 피해자의 표현을 촉진할 수 있도록, 피해자와 오랜 기간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한다. 5~6년 전에는 피해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피해자 동반견’ 제도를 도입했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하고 법정에 출석하는 등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시간에 동반견이 큰 안정감을 주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나.

“16살 자폐스펙트럼 청소년이 보호시설에서 가정으로 탈출했다. 가족에게 돌아온 그는 가족 구성원인 삼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이 소녀를 면담하는 데 8~9개월이 걸렸다. 소녀만 만난 게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 모두를 인터뷰하고 소녀를 가르쳤던 교육자들도 인터뷰하고, 혈액·유전자(DNA) 등 의학적인 검사도 모두 거쳐 가해자의 유사강간을 입증했다. 가해자는 최종적으로 징역 4년, 접근금지명령, 성범죄자로 등록해 치료명령 등을 선고받았다.”

―프랑스에서도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많이 일어나나.

“지적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요즘 프랑스에는 약물에 의한 성폭력이 많고, 그와 관련해 여성이 자신도 모르게 약물을 투여받았는지를 무료로 검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프랑스 세 개 지역에서 시범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범죄자로 지목된 사람이 ‘무죄’ 입증해야

―성폭력 사건의 수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프랑스는 프레임이 다르다.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증하라고 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피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진술하면 된다. 앞에서 말한 ‘지적장애인에 대한 공공서비스 제공 기본 협약’은 그 목표로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특성과 필요, 생활환경을 사법절차 처리 과정에서 고려하며 이들이 형사범죄 피해자인 경우 그 사정을 반영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어떤 피해자든 장애를 이유로 진술을 못하지 않도록 진술을 잘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범죄자로 지목된 사람이 자신이 가해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프랑스의 성폭력 범죄와 관련한 기본 태도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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