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평창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예선과 남자 5000m계주 예선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들이 2018년 2월13일 저녁 강원도 강릉시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쇼트트랙 국가대표 지도자인 윤재명 감독과 김현곤 코치를 ‘막가파’식으로 찍어내기(제1582호 참조)해 비판을 산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이 당사자들의 소명을 듣는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이들을 징계하고 대표팀에서 배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빙상연맹 이사회는 애초 징계 사유이던 ‘식대 부당 청구’ 건 외에 지도자 간 불화, 직무 태만, 선수단 면담 결과 등의 별건까지 종합해 ‘감독의 보직 변경과 코치의 해임’을 의결했다.
빙상연맹 임원들은 2025년 8월20일 3차 이사회에서 ‘선수단 면담 결과’를 문건으로 받았다. 문건은 경기력향상위원회(경향위) 위원인 이인아 변호사가 8월6일 윤 감독과 김 코치에 대한 의견 등을 듣고자 선수단 15명을 만난 뒤 작성했다.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됐다. 선수단 면담 결과를 종합하면, 선수단은 기존 지도자를 놓고 부정적 평가를 내린 뒤 “새 지도자를 원한다”는 의견에 무게를 실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빙상연맹 3차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이날 이사회는 2024년 말 국제대회에서 식대를 부당하게 청구한 혐의로 지도자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던 윤 감독과 김 코치의 처분을 논의했다. 빙상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공정위)가 내린 징계에 불복했던 윤 감독이 대한체육회 재심의에서 ‘무혐의’ 처분을, 김 코치는 법원에서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단 면담 결과가 갑자기 공유되자, 임원 ㄱ씨는 “당사자가 만약 이 내용(선수단 면담 결과)을 알았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며 우려를 표한 뒤 “그 카드 사용 건(식대 부당 청구)을 가지고 얘기해야 하는데, 다른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본점을 흐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면담 결과에서 김 코치를 두고 “해외 쇼핑이 주목적인 사람처럼 행동” “줏대 없는 훈련 방식” “순간의 기분에 따라 행동” “감독 부임 뒤 불만이 많아짐” 등 부정적 답변이 많았음에도, 김 코치가 이에 대해 해명할 기회는 없었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면담 결과)을 전체가 공유해서 보는데, 법에 저촉되는 게 아닌가. (당사자들이) 모욕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자, 경향위 위원장인 박세우 전무는 “영수증 사건(식대 부당 청구)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안이 더 심각하다. 이런 지도자를 데리고 올림픽 시즌을 보낸다는 게 희망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박 전무는 경향위의 자체 조사와 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감독·코치의 불화와 훈련 소홀 등을 확인했으니 지도자들로부터 선수단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사회에 개진했다.
하지만 “이런 사안을 여기서 당장 보고 정리하기에는 굉장히 적절하지 않다”(임원 ㄴ씨) 등의 의견이 추가로 나왔다. 그럼에도 박 전무는 “본건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이걸 다루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가 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김현곤 지도자는 중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애들을 구타했다는 민원이 (빙상연맹에) 접수됐다”며 김 코치의 해임을 제안했다. 이때도 “본인한테 (확인) 하셨나요?”(임원 ㄷ씨) 등의 말이 나왔지만, 박 전무는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았다.
임원 ㄴ씨는 다시 “지금 카드 건 말고 다른 건은 여기서 논의할 수 없다. (선수단 면담 결과와 중국 선수 폭행 의혹은)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거듭 우려를 제기했다. ㄴ씨는 이어 “절차라는 게 있다. 이런 내용이 있으면 공정위에서 결론이 나온 다음에 이사회에서 심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의장인 이수경 빙상연맹 회장은 “우리가 해임하거나 보직 변경을 하는 것 또한 절차”라고 맞선다. 이 회장은 이어 “같은 사람(김 코치)이 다른 내용(선수단 면담 결과와 중국 선수 폭행 의혹)으로 또다시 공정위를 하면 ‘저 사람들이 연맹에 찍혔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지금 봐서는 (선수단과) 분리하는 게 시급하고 다른 지도자를 투입해야 한다”며 지도자 교체에 힘을 실었다.
두 지도자 모두 7월14일 빙상연맹 4차 인사위원회에 출석해 서로 간 불화를 일축했고 지상 훈련 방식 역시 충실히 소명했지만, 이사회에서 이 내용은 언급조차 안 됐다. 8월20일 열린 이사회는 무기명 투표로 윤 감독(보직 변경 12표·해임 2표)의 보직 변경, 김현곤 코치(보직 변경 1표·해임 13표)의 해임을 의결해 다음날(8월21일) 이를 보도자료로 외부에 공식 발표했다. 일련의 과정을 잘 아는 체육계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된 사안은 인사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한다. 이사회는 인사 문제와 관련해 인사위가 결정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정도지, 이사회에서 의결한다고 바로 시행되는 게 아닌데도 의결되자마자 보도자료를 냈다”고 지적했다.
김 코치는 해임 의결을 주도한 박 전무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국제대회에서) 해외 쇼핑을 한 적이 없다”며 “중국 선수 폭행 의혹도 사실이 아니다. 연맹으로부터 단 한 번도 문의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훈련 소홀’ 문제를 놓고선 “개인훈련은 2018년 김선태 감독부터 시작됐던 관행”이라며 “저 역시 단체운동을 하지 않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겨 2024년 7월부터 11월 사이 윤 감독이 채용되기 전 선수촌 트레이너와 회의해 단체훈련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선수단 면담 결과를 놓고도 “면담에 참여한 선수 중 9명은 지난 시즌(2024~2025) 저와 선수촌에서 함께 훈련해본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라며 “익명 면담 결과로 특정 결론을 유도하려 한 게 아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도자와 선수들 모두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선발됐다. 지도자가 선수를 임의로 선택할 수 없듯, 선수 또한 지도자를 지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무는 한겨레21에 지도자들이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면담 내용을 보면 그동안 선수들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다들 지도자 편에 서서 (피해를) 호소한 선수들의 입장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선수단을 만나려는 노력을 해봤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선수들은 김 코치가 들어올까봐 걱정하고 있다. 전·현 집행부의 자체 조사와 선수 면담을 통해 (지도자 간 불화와 자질 문제가) 명백하다고 생각해, 징계 당사자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빙상연맹은 “(원래 징계 사유인) 식대 부당 청구 건은 감독이 코치의 행위를 연맹에 제보했고, 조사 중 코치가 감독에게 책임을 돌리는 등 둘 사이 갈등이 드러났다”며 “두 지도자가 원만했다면 이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전 집행부가 지도자 의견 및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이사회는 경향위 자문을 토대로 결정했다. 추후 인사위에서 소명 기회를 부여하려 했으나, 김 코치가 외부 기관에 민원을 넣어 인사위를 열 수 없었다”고 했다.
김 코치는 법원에 “지도자로 복직시켜달라”는 취지의 간접강제 가처분을 신청해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초고속으로 총감독에 선임됐던 김선태 이사는 감독 결격 사유가 발각돼 5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놨고 윤 감독만 복직했다. 빙상 관계자는 “올림픽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선수 보호’를 이유로 지도자를 배제한 연맹으로 인해 결국 선수단만 혼란에 빠지게 됐다”고 꼬집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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