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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이 대통령 “중지” 명령한 차관 지원 압력 의혹에 “행정의 기본도 몰라”

의혹 부인하면서도 ‘외교적 결례’ 이유로 압박 가했던 사실은 사실상 인정
등록 2025-09-09 16:56 수정 2025-09-09 22:22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2025년 9월9일 강원 강릉시청을 방문해 지역 가뭄 피해 상황을 점검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2025년 9월9일 강원 강릉시청을 방문해 지역 가뭄 피해 상황을 점검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가 차관 지원을 거부한 필리핀의 7천억원 규모 토목 사업에 압력을 행사해 지원을 재개하게 했다는 한겨레21의 단독 탐사보도(제1580호 표지 이야기)에 대해 “필리핀의 민생 프로젝트”라며 “국회의원 개인이 이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2025년 9월9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오전 한겨레21의 단독 탐사보도를 인용하며 “해당 사업에 대해 즉시 절차를 중지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힌 뒤 나온 반응이다.

권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늘 국회에서 저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보고된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뜬금없이 저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필리핀과의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사업을 전격 파기했다”며 “야당 탄압에도 넘지 말아야 한 선이 있다. 바로 국익과 국가 간 외교 관계다. EDCF는 단순한 차관이 아니라, 개발도상국과의 신뢰를 쌓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는 전략적 자산이다. 따라서 기금 신청국의 요청을 가능한 한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앞서 한겨레21은 제1580호 표지이야기에서 부정부패와 부실사업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정부가 EDCF 차관 지원을 거부한 7천억원 규모의 필리핀 토목 사업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권 의원의 압력에 의해 차관 지원 재개로 결정이 뒤집혔다는 의혹을 탐사해 단독 보도했다. 이후 이 대통령은 2025년 9월9일 오전 페이스북에 ‘[단독] 권성동, 세 차례 압박에 “필리핀 사업 EDCF 지원 곤란” 판정 뒤집혔다’는 제목의 한겨레21 기사 링크를 공유한 뒤 “부정부패 소지가 있는 부실사업으로 판정된 해당 사업에 대해 즉시 절차 중지를 명령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점은, 사업이 아직 착수되지 않은 단계여서 EDCF 지원 등의 사업비는 지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자그마치 7천억원 규모의 혈세를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고, 부실과 부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지적한 사업은 정식 명칭이 PBBM(President Bongbong Marcos Jr.) 농촌 모듈형 교량 사업으로, 필리핀 대통령의 이름까지 붙인 최핵심 국책사업이다. 농촌 접근성을 개선하고 낙후 지역의 농산물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한 민생 프로젝트”라며 “한국수출입은행 필리핀 사무소가 ‘이런 사업은 일본한테나 가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고도 외교적 신뢰를 잃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느냐”라고 밝혔다. 한겨레21이 보도한대로 권 의원이 수출입은행 관계자들의 ‘외교적 결례’를 이유로 압박을 가했던 사실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권 의원은 결과적으로 이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고 타당성 조사가 진행됐을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권 의원은 “이 대통령은 마치 7천억 원을 지켜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는 행정의 기본조차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것일 뿐”이라며 “2024년 10월 발주된 것은 ‘사업타당성조사’다. 이는 모든 공적개발원조 사업에서 본격 심사와 승인 전에 거치는 표준 절차일 뿐, 차관 지원이나 자금 집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업비는 집행되지 않았으며, 타당성 조사가 곧 사업 승인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그러면서 “사업타당성조사는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이 독립적으로 심사·승인 권한을 갖고 있으며, 국회의원 개인이 이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타당성 조사가 차관 지원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권 의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이 나온다. 타당성 조사 발주에도 17억원가량의 국세가 지출되고, 이미 진행 가능성이 큰 사업 위주로 타당성 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필리핀 농촌 모듈형 사업도 이 대통령의 사업 중지 명령이 없었으면 실제 사업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EDCF 전문가는 “타당성 조사에도 큰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의 심사가 끝난 사업들만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다”며 “타당성 조사 발주가 된 사업 90% 이상은 (차관이) 집행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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