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기사 제목에 자주 쓰이는 ‘골든타임’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저는 잠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인명구조와 관련 없는 경제나 사회 뉴스라면 더 그렇습니다. 제가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게 세월호 참사 때였고, 여전히 이 단어를 보면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제겐 ‘골든타임’이라는 단어가 그렇지만, 여러분은 또 다른 어딘가에서 세월호의 흔적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시겠지요. 그 상처엔 언론도 책임이 있습니다. 언론은 ‘전원 구조’ 오보와 속보 경쟁, 무례한 인터뷰로 생존자와 유가족, 시민들에게 아픔을 줬습니다. 호된 비판을 받은 기자들이 낡은 취재·보도 관행을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2022년 10월29일 밤, 우리는 서울 이태원에서 또 한번 많은 생명을 잃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8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했던 걸까요?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통함을 누르며 묻습니다. 재난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8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세월호 참사 보도를 반성하며 언론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재난보도준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기자단에 취재 자제를 요청할 만큼 유가족에게 일제히 달라붙는 인터뷰 관행은 여전했다고 합니다. 도로 위 주검 사진이나 다급한 현장 영상이 제대로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채 반복해서 노출됐습니다. 유명 비제이(BJ·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의 방문이나 약물 의혹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여과 없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어떤 인터뷰도 하지 말고, 현장 영상을 무조건 보여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현장의 어려움과 급박함을 상세히 전하는 보도는 재난을 직접 겪지 않은 시민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공동체의 조력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가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를 느끼는 건 뉴스가 전해준 정보를 통해 상황에 공감했기 때문이지요. 재난 현장의 취재와 보도를 막는 건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 취재와 보도는 재난 관계자에게 심리적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 목격자, 경찰관과 소방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 심폐소생술에 나섰던 시민들은 이미 트라우마 고위험군에 해당합니다. 현장에서 취재 대상이 되거나 자신이 한가운데 있던 현장을 다룬 뉴스를 볼 때, 재난을 반복해서 겪는 것처럼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재난 보도가 또 다른 재난이 되지요.
큰 참사가 일어나면 현장에 있지 않은 시민들도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이미 언론의 계속되는 특보와 현장 영상에 과도하게 노출된 많은 분이 불안감과 죄의식을 호소합니다. 현장 취재진도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비극에 장시간 노출되고 증언을 반복 청취하면 재난을 간접경험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바로 재난 보도의 딜레마입니다. 큰 재난일수록 빠르고 정확하게 전해야 하는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할수록 고통받는 이가 늘어납니다. 보도할 수도 없고 보도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기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시 미국기자협회(SPJ) 윤리강령을 볼까요. 첫째 항목인 ‘진실 추구’에 이은 둘째 항목이 바로 ‘피해 최소화’입니다. 뉴스를 쫓는 일이 누군가의 삶에 피해를 줘도 면죄받는 허가증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공적 의미가 있는 보도라도 ‘피해 최소화’라는 가치와의 균형을 따져야 하지요.
그렇다면 재난 현장에서 기자는 ‘팩트인가 아닌가’ 못지않게 ‘팩트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이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팩트를 하나라도 더 많이 보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팩트를 보도했으니 잘못 없다’는 알리바이도 통하지 않습니다. 모자이크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진을 담은 기사에 누리꾼이 항의 댓글을 달았던 건 그 사진이 팩트에 어긋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팩트가 아무리 중요해도 생존자나 유가족, 목격자에게 막무가내로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선 안 됩니다. 불가피한 경우에도 반드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한 뒤 진행하고,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계속 살펴야 합니다.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진술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도 필요합니다. 이성을 잃고 분노하거나 오열하는 모습을 촬영해선 안 됩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거나 현장감 높은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일도 피해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여전히 현장에서의 판단은 어렵기만 합니다. 당연합니다. 교과서 속 윤리 지침은 옳고 그름이 단순명확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복잡하게 꼬여 있으니까요.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재난 현장 취재는 어린 기자가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기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대부분 언론사는 가장 연차가 낮은 기자를 현장에 보냅니다.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입니다. 주체적 판단 능력을 거세당한 채 거친 현장을 뛰어다닐 ‘체스판의 말’로 쓰려는 의도니까요. 딜레마 상황에서 상사 눈치 보지 않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데스크가 판단을 존중할 수 있는 연륜 있는 기자가 현장에 가야 윤리적 취재가 가능합니다.
‘재난 현장만큼은 취재 경쟁의 예외 지대’라는 합의도 뿌리내려야 하겠습니다. ‘재난보도준칙’에서 권고한 바와 같이 언론사들이 ‘취재협의체’를 구성해 공동취재를 해야 합니다. 협의체 차원에서 관리 당국이나 피해자 대표와 논의해 취재 일정과 방식을 결정하고, 대표로 뽑힌 기자 몇 명만 취재원을 만나거나 각자 영역을 나눠 취재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취재진과 취재원의 부담을 동시에 덜고 중복 취재 비용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경쟁보다 협력을 할 때 원활하면서도 윤리적인 취재가 가능해집니다.
몇몇 방송사가 참사 현장 영상의 사용을 자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조금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결정입니다. 현업 단체들도 절제된 보도를 촉구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자정 노력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읽습니다.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재난 보도를 위해 언론의 더 과감한 인식 전환을 기다립니다. 안전한 저널리즘 없이 안전한 사회도 없습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처럼 건강에 좋은 언론 비평을 지향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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