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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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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그린워싱’ 나팔수 노릇 해서야

과학과 대중 잇는 미디어의 역할 막중한데, 기후위기 방관하거나 위기 대응 방해하기까지
등록 2022-09-24 23:30 수정 2022-09-26 07:41
세계 460여 개 미디어가 참여한 글로벌 프로젝트 ‘지금 기후를 보도한다’(Covering Climate Now)의 누리집 메인 화면. Covering Climate Now 누리집

세계 460여 개 미디어가 참여한 글로벌 프로젝트 ‘지금 기후를 보도한다’(Covering Climate Now)의 누리집 메인 화면. Covering Climate Now 누리집

불타는 이층집에서 한가롭게 즐기는 낮잠. 기후위기에 눈감고 귀 막은 우리 상황이 이런 게 아닐까요? 1층의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조만간 우리가 있는 2층을 덮칠 게 뻔한데,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며 대책 없이 단잠에 빠진 겁니다. 불을 끄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다 데거나 다칠까 두려워 외면하고 있습니다.

불이 나면 소리를 질러 잠을 깨워야 할 언론이 경보기 구실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 큽니다. 기후변화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개인의 지각 범위 밖에서 벌어지는 거시적 현상입니다. 과학자와 대중을 매개하는 언론이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하고 다가올 위험을 경고해줘야 지혜를 모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오랫동안 기후위기를 방관해왔습니다. 우리 삶과 괴리된 여야 간 소모적인 정쟁에 대한 언론의 뜨거운 관심과 비교하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기후위기에 대한 무관심은 당황스럽습니다. 한국 사회의 현안을 공유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할 기회였던 2022년 3월 대선 때도 기후위기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는 언론은 드물었습니다.

탈원전 왜곡·기만하고 재계 대변

긴급한 현실에 침묵하는 수준을 넘어 의도적 왜곡과 기만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하는 언론도 있습니다. 보수 언론은 지난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기후위기가 탈원전 정책의 결과인 것처럼 호도했습니다. 태양광 설비를 위해 나무를 잘라내서 장마 때 하루 한 번꼴로 산사태가 났다고 주장하는 등 사실을 뒤틀어 재생에너지 정책의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경제신문은 철저히 재계 입장을 대변합니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경제위기를 초래한다는 ‘협박’이 대표적입니다. 2021년 탄소중립위원회가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내놓았을 땐 기업의 희생을 강요하고 일자리 충격을 가져올 정책이라며 “기업 발등에 불 떨어졌다”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기업들의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을 발 벗고 나서 홍보해준 것도 이들이지요.

기후위기가 관행적인 뉴스의 틀에 잘 맞지 않는 주제인 건 사실입니다. 언론은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실을 전달해야 뉴스 가치가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기자들에게 기후변화로 인한 파국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거나 이미 여러 번 보도돼 새롭지 않은 사실로 여겨집니다. 폭우와 이상고온 등 눈에 띄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반짝 주목하다가 마는 건 이 때문입니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기후·환경 분야는 우리 언론의 관행과 역량에 비춰볼 때 특히 다루기 버거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취재원에게 한마디 말을 듣고 파편화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익숙한 기자들에게 공부해서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낯설고 어렵습니다. 계속 출입처를 바꿔야 하니 지식과 경험이 쌓이지도 않습니다.

기후위기 진짜 범인은 성장 중독 자본주의

하지만 언론이 기후위기 보도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습니다.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사이토 고헤이가 저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서 정확히 지적했듯이, 기후위기의 진짜 범인은 성장에 중독된 자본주의체제입니다. 우리가 불가피하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자본주의경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다가올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기후 악당’ 자본주의체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깐부’ 사이입니다.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한 대도시를 기반으로 삼고 광고비에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현대 대중 언론은 자본주의 위에서 탄생했고 자본주의 덕분에 유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뉴스미디어 기업은 정치권력을 치열하게 감시하고 견제할 순 있겠지만, 자신의 물적 토대인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이나 비판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언론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삶과 결별하자고 단호히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기후 비상사태 해결을 위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개혁을 제안하는 대안 담론이 일부 존재하지만, 주류 언론은 이들을 비현실적 몽상에 빠진 급진적 생태주의자로 취급하며 공론장에서 교묘히 배제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봅시다. 정말 ‘비현실적’인 건 어느 쪽인가요? 과학자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아지는 것을 막지 못하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들지 못하면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재앙을 맞을 거라고요. ‘탈성장’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이 두려워 조금씩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게 과연 ‘현실적’인 걸까요?

늦은 감이 있지만, 언론도 바뀌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멈추자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덕분일 겁니다. 2020년 4월 <한겨레>가 한국 언론사 중 최초로 기후변화팀을 만든 이후 <한국일보>,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등이 전담팀을 신설했습니다. 전문기자를 두고 일회성 기사가 아닌, 지속적·심층적 보도에 힘쓰는 언론사가 늘고 있습니다.

50여 개국 매체의 ‘지금 기후를 보도한다’

국외 언론은 한발 더 앞서가고 있습니다. 2019년 세계 주요 미디어들이 모여 ‘지금 기후를 보도한다’(Covering Climate Now)라는 이름의 글로벌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보스턴 글로브> <로이터> <알자지라> <아사히신문> 등 50개 이상 국가의 460개 이상 미디어가 참여해 기후 보도의 질적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협력을 진행 중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발간한 연구서 <국내 기후변화 보도의 현황과 개선 방안>(진민정·이봉현·신우열)에 따르면, 2019년 프랑스 <르몽드>는 기후 섹션 담당 기자를 12명에서 22명으로 늘렸습니다. 2020년 영국 <가디언>은 화석연료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습니다. 미국 <시엔엔>(CNN)은 2019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예비후보 10명이 기후위기 한 주제만을 가지고 열었던 토론회를 7시간 동안 중계했습니다.

한국 언론에도 이처럼 기후위기의 절박함에 걸맞은 과감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빙하 위 북극곰을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선 저널리즘이 시급합니다. ‘환경위기’ 시계의 바늘은 지금도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처럼 건강에 좋은 언론 비평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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