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기레기’라 부르는 게 예사로운 일이 된 건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부터입니다. 한국 언론의 가장 부끄러운 ‘흑역사’라 할 만한 ‘전원 구조’ 오보가 결정적 빌미가 됐지요. 언론에 대한 신뢰 추락을 부른 주범은 오보입니다. 반복되는 오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언론개혁은 아득히 먼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오보’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고 다 같은 오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보(誤報)는 ‘사실과 다른 보도’를 말합니다. 개념 정의 자체가 너무 느슨하고 모호하다보니, 광범위한 보도가 하나로 묶여버리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오보’ 딱지가 붙은 기사들은 천차만별입니다. 기사의 핵심 내용 전체가 잘못된 보도가 있고, 사소한 부분에서 주변적 사실이 잘못된 보도가 있습니다. 알면서도 진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사실무근의 날조가 있고, 기사 작성이나 편집 과정에서의 단순한 착각이나 실수, 오기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격이 다른 기사를 ‘오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도 괜찮을까요? 멀쩡히 살아 있는 김정은이 숨졌다거나 낙선한 후보가 당선됐다고 보도한 건 누가 봐도 오보입니다. 하지만 기사의 본질과 무관한 부분에 부정확한 내용이 일부 포함된 경우까지 오보라 불러야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오보가 나쁜 이유가 무엇인가요? 시민을 현혹하고 여론을 호도할 위험성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사실이 독자에게 미칠 영향을 평가해서 유형을 구분하고 책임도 다르게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단편적 사실관계에서 잘못된 부분이나 해석상 작은 실수가 있다고 해서 싸잡아 오보라 하며 의미를 폄훼하는 건 가혹합니다.
영화에 일부 아쉬운 장면이 있다고 작품 전체를 ‘망작’이라 하진 않습니다. 영화가 담은 주제의식과 영상미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평가하지요.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에 기여하는 보도 여부, 잘못된 사실이 기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불편한 진실’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정확한 사실을 하나라도 포함할 경우 오보로 규정한다면, 웬만한 뉴스는 다 오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진실만 담은 뉴스도 없습니다. 기자도 인간입니다. 기자가 아무리 열심히 취재해도 100% 진실을 복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강제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검사조차 못하는 일입니다.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해도 상관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당연히 기자는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이 아닌 걸 사실로 믿는 일은 아무리 성실하고 뛰어난 기자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게 현실 속 기자의 결격 사유는 아닙니다.
‘김건희 주가조작 혐의’는 과연 오보일까굳이 오보의 유형을 따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보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뉴스의 영향력은 사라지거나 크게 줄어듭니다. 이유가 어쨌든 대중의 머릿속에서는 ‘전체가 허위 사실’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가 퍼지는 걸 막으려는 이들은 최대한 기사에 ‘오보’ 낙인을 찍으려 합니다.
기자들은 작은 오류를 핑계 삼아 ‘오보’라는 프레임을 걸어 탐사고발 보도의 김을 빼려는 취재원을 자주 만납니다. 후속 보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위공직자나 기업이 ‘오보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언론이 평소 오보를 많이 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에, 이런 전략은 꽤 효과적입니다.
어느 부분이 얼마나 오보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보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순간 기사의 임팩트는 크게 떨어지고, 비판적 보도는 위축됩니다(오보 프레임은 민·형사 소송과 더불어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보 표현의 남용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대통령선거를 앞둔 2022년 2월 한국방송(KBS)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 기간에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 명의 계좌를 이용한 수십 차례의 주식거래가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검찰이 김씨 계좌와 모친 계좌 간에, 김씨 명의 계좌 간에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김씨 명의 계좌들 간의 거래는 없었습니다. 김씨와 이름이 비슷한 다른 명의 계좌와의 거래를 오인한 것입니다. 취재팀이 확보한 검찰 공소장에 잘못 표기된 부분이 있었기에 벌어진 실수였습니다. 윤 후보 쪽은 이 점을 들어 KBS가 “초대형 오보”를 냈다며 보도의 의미를 깎아내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보도가 오보라는 주장에 동의하시나요? 범죄사실이라는 꽤 비중 있는 내용에 오류가 있었던 건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오류가 기사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씨 명의 계좌에서 여러 의심되는 거래가 있었고, 검찰이 이를 통정거래(매수자와 매도자가 사전에 가격을 정해놓고 일정 시간에 주식을 서로 매매하는 것)로 의심한다는 핵심 혐의 내용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언론이 확인 가능한 범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지어내 조작한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 후보와 그 주변을 검증할 언론의 책무를 생각하면 공익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이런 보도에 오보 프레임을 걸어 보도 전체가 허위인 것처럼 침소봉대하면 안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마다 ‘가짜뉴스’(Fake News) 딱지를 붙여 효과를 반감시켰습니다. 한국의 권력자들도 ‘오보’라는 모호한 표현을 남용하는 방법으로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기사의 핵심 내용이 사실과 배치되거나 일부러 사실을 왜곡해 진실로 믿게끔 꾸미는 허위 보도에는 엄정히 대응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공익적 보도 과정에서 작은 실수를 한 기사에까지 함부로 오보 딱지를 붙이는 일은 멈춰야 합니다. 옥과 돌을 함께 태울 수는 없습니다. ‘오보’라는 이름은 ‘진짜’ 오보에만 절제된 방식으로 씁시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처럼 건강에 좋은 언론 비평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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