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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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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처럼 기자들도 앓는 ‘마음의 병’

최근 1년 새 기자 20% 트라우마 겪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강해야 한다’ 강요된 ‘기자 정신’에서 벗어날 필요
등록 2022-08-31 20:52 수정 2022-09-02 08:43
수도권에 많은 비가 내린 2022년 8월6일 폭우 피해 취재에 나선 한 사진기자가 뒤집힌 우산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국민일보 제공

수도권에 많은 비가 내린 2022년 8월6일 폭우 피해 취재에 나선 한 사진기자가 뒤집힌 우산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국민일보 제공

얼마 전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언론인의 직업문화에 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문의가 내린 ‘진단’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집단이 소방관과 유사한 심리적 위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소방관은 ‘마음의 병’을 얻기 쉬운 직업입니다. 소방청의 2021년 조사를 보면, 전국 소방관 5만3980명 중 22.8%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5.7%,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빈도가 높은 위험군은 4.4%에 이릅니다.

어떤 일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기자?

그런데 이런 정신적 고통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소방관이 많습니다. 소방관은 아무리 위험해도 두려움 없이 현장에 뛰어드는 강인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돕는 사람’이라는 사명감이 커서 마음의 병을 얻더라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소방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기자도 다른 직업에 견줘 극단적 상황을 자주 겪습니다. 안전 장비 없이 재난·사고 현장을 취재하다 위험에 노출됩니다. 사람이 죽고 다치거나 쑥대밭이 된 현장을 목격합니다. 범죄 피해자 또는 유족을 만나 끔찍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기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괴롭힘’이 기승을 부립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나 성희롱을 담은 악성 댓글과 전자우편, 문자 ‘폭탄’이 일상을 침범합니다. 가족 신상을 알아내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는 기자도 있습니다.

일반인에겐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이지만, 기자는 직업 특성상 수시로 겪는 일입니다. 기자도 사람입니다. 극단적 사건을 반복적으로 겪으면 흔들리고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충격적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나 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언론인 2014명을 조사한 바를 보면, 지난 1년간 취재 이후 트라우마를 겪은 기자가 19.7%나 됩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충격적 사건이 떠오르거나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합니다.

문제는 기자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왜곡된 인식이 고통과 불안을 치유하기 위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는 점입니다. 소방관처럼 ‘기자는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취재나 업무 과정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집념과 의지로 이겨내는 것을 진정한 ‘기자 정신’이라 생각하는 고정관념 말입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각인된 ‘전형적인 기자’는 어떤 모습인가요? 특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거칠고 드센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이 많을 겁니다. 상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어떤 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한 ‘멘털’의 소유자.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그려내는 기자의 모습입니다.

상사에게도 ‘님’자를 붙이지 마라

언론사는 갓 입사한 어린 기자를 깎고 잘라 이런 ‘전형적 기자’를 만듭니다. 신입 기자가 들어오면 몇 달 동안 잠도 재우지 않고 경찰서를 돌며 취재를 시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전근대적 악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기자는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믿는 문화는 여전합니다. 이렇다 할 지침이나 준비 없이 다짜고짜 취재해오라며 현장에 던져놓고 제대로 못하면 ‘깨는’ 훈련 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기자는 누구에게도 머리 숙여선 안 된다는 이유로 취재원에게 뻣뻣한 태도를 보이도록 가르치고, 상사에게도 호칭 뒤에 ‘님’자를 붙이지 말라고 시킵니다.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기자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며, 응원과 위로 없이도 모든 문제를 혼자 알아서 처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기자입니다.

이런 문화를 무의식중에 내면화하다보니 기자는 정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리더라도 힘들거나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 어렵습니다. 자질이 부족한 기자로 평가받기 싫으니까요. 동료와 조직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도 못합니다. 아픈 자신의 모습이 기자답지 못하다고 스스로 탓하는 일마저 있습니다. 강요된 ‘기자 정신’이 기자를 병들게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자 정신’이 강하지 않으면 정말 기자를 잘할 수 없는 걸까요? ‘기자 정신’을 강조하는 주장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정보를 감추려는 권력과 싸워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집념이 필요하지요. 역사상 특종은 대개 강한 정신력을 밑거름 삼아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 말고도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모든 기자가 같은 종류의 기사만 쓸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선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전문 분야에서 심층 지식을 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언론도 사회 변화에 발맞춰 유연해져야 합니다. 무리하게 획일적 기자상을 강요하느라 기자의 개성을 말살하면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역량을 잃어버립니다.

거칠고 강한 캐릭터를 강조하는 ‘기자 정신’은 뉴스룸이 남성의 배타적 공간이었을 때 그들의 업무 스타일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유일하게 바람직한 모델로 포장한 결과입니다. 뉴스룸에서 여성 비율이 높아지는 등 구성원이 다양해지고 세태가 바뀐 오늘날에는 모델을 다변화해 더 많은 가능성을 포용해야 합니다. 이른바 엠제트(MZ)세대 기자가 잇따라 언론계를 떠나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현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직업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강한 기자’는 남성 중심 뉴스룸의 유산일 뿐

저널리즘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취재와 보도에는 로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럴수록 소중한 생산 자원인 사람을 잘 챙겨야겠지만, 역설적으로 언론사만큼 사람에 무관심한 조직이 드뭅니다. 기자 사회는 동료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살피고 소리 없는 비명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후배와 동료에게 섣불리 “기자가 고작 그 정도로 힘들다 하느냐”고 말해선 안 됩니다. 소방관도, 기자도, 그 누구든 힘들 때 도움을 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기자가 쓴 기사가 과연 시민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아프게 해야 비로소 성취할 수 있는 저널리즘이라면 지속가능성도, 존재 이유도 없습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처럼 건강에 좋은 언론 비평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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