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언론개혁만큼 많은 국민이 동의하는 개혁 과제가 있을까요? 정치개혁 말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언론에 문제가 있고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각론에 있습니다. ‘어떤 언론개혁이냐’를 구체적으로 물어본다면 얘기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개혁을 가장 뜨겁게 열망하는 분들에게 언론개혁은 ‘적폐 청산’과 다르지 않습니다. ‘조중동’이나 ‘기레기’와 같은 거악을 청산하는 것이 언론개혁이며, 언론을 타락하게 하는 원흉을 하루빨리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믿습니다. 근래엔 기자단이나 출입처 같은 뉴스 생산 관행이 청산해야 할 적폐로 자주 거론됩니다.
언론개혁을 적폐 청산으로 이해하는 접근은 한국 사회운동의 관습적 인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독재에 맞서 싸웠던 시민사회는 민주화 이후에도 미완의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늘 주적인 수구세력이나 독재의 유산을 무너뜨리는 투쟁에 집중해왔습니다. 선과 악의 이분법에 따라 거악을 징벌하는 걸 목표로 하는 데 익숙하지요. 운동에서 중요한 건 적과 싸워 이기는 일이지, 정교한 분석과 실현 가능한 대안이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 구도가 뚜렷한 시절에는 이런 시각이 필요했던 게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언론 환경이 단순하고 언론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부족한 시절에는 거악 청산을 주장하는 언론개혁론이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는 그런 투박한 시각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환경이나 언론을 둘러싼 구도가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 전선으로 환원하기 어려울 만큼 다변화됐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특정 언론이나 집단을 악으로 몰아 타격하는 방식은 광범위한 동의를 얻기 어렵고, 언론개혁의 가치를 진영 논리로 오염시키기 쉽습니다. 언론개혁 운동이 시민사회에 씨를 뿌린 지 한 세대가 지난 만큼, 선명성과 당위성을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수준으로 진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언론개혁론은 치밀하고 구체적인 정책 담론이 돼야 합니다. 언론개혁은 거악과 싸워 상대를 꺾으면 끝나는 ‘한판 승부’가 아닙니다. 못마땅한 이해관계자들과 더불어 잘못된 제도를 조금씩 수선해나가는 길고 복잡한 토론이 돼야 합니다. 언론개혁을 ‘악마에 맞서 싸우는 십자군전쟁’처럼 묘사하는 건 명쾌해 보일 순 있겠지만, 현실을 설명하거나 변화시키는 데 실효성을 갖긴 어렵습니다.
출입처 관행에 관한 논의는 ‘적폐 청산’ 중심 언론개혁 담론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현행 출입처 관행에 문제가 많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자들이 취재원과 유착하고 출입처 논리에 동화되거나 획일적인 ‘받아쓰기’ 기사를 양산하는 폐단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의 법조 출입기자들이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당시 <머니투데이> 기자)였던 김만배씨와 돈을 주고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언론개혁을 위해 출입처 관행의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출입처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언론계 내부의 치열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적폐 청산하듯 출입처를 폐지하는 게 문제의 해법은 아닙니다. 출입처 관행도 나름의 필요성 때문에 고안된 제도입니다. 전문성을 갖추고 권력을 견제하는 데 출입처 관행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거지요.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 곳이 있다면, 그 가까이에 이들을 감시하는 기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대안 없이 출입처를 없애는 모험은 언론 기능에 감당할 수 없는 공백을 가져옵니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셈이지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출입처는 법조, 그중에서도 검찰입니다. 검찰 출입기자가 모두 ‘친검’은 아니지만, ‘검언유착’ 사례는 분명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위험성은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언론이 검찰 출입처를 폐쇄하고 감시 역할 자체를 포기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언론의 감시로부터 해방되면 뒤에서 웃는 건 결국 검찰일 테니까요. 유착과 일탈의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출입처 운용 방식을 쇄신하는 길이 최선입니다.
일단 기자가 출입처에서 일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기자들이 특정 기관에 마련된 기자실에 상주하는 개념의 출입처가 아니라(대통령실 등 상주가 필요한 극소수 출입처는 예외로 합니다), 담당 영역을 배정받고 해당 분야를 집중 취재하는 의미의 출입처가 돼야 합니다. 예컨대 교육부라는 기관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영역을 담당한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맡은 분야의 관련 기관들에 출입기자로 등록해 취재에 필요한 자료나 편의를 제공받는 ‘낮은 수준’의 출입처 제도는 그 자체로 문제가 없습니다. 서구 언론도 이런 개념의 출입처는 운용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기자실에 붙박이처럼 앉아 보도자료만 처리하는 게 아니라 담당 분야를 종횡무진 다니며 현안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는 기사를 쓰는 출입처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환영할 만합니다.
출입처를 아예 없애는 건 곤란하지만, 뉴스룸 내에서 출입처를 갖는 기자의 비율을 줄일 필요는 있습니다. 박재영·허만섭·안수찬의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2020)에 따르면, 한국의 주요 언론사는 뉴스룸 취재기자의 70~80%를 출입처에 내보내고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기자가 출입처에 묶여 있는 겁니다.
고정된 출입처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다른 언론사가 쓰지 않는 차별화된 기사를 쓰는 인력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출입처의 무거운 중력에서 벗어나면 기자들은 마음껏 날아다니며 참신한 기획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출입처 있는 기자와 출입처 없는 기자가 양적 균형을 이뤄 상호보완할 때 저널리즘의 품질도 높아집니다.
출입처 관행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 상반된 가능성이 동시에 있는 양날의 칼입니다. 출입처를 무턱대고 없앨 게 아니라 고쳐 쓰면서 지혜롭게 활용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고 논의가 지루하더라도 섬세하게 가다듬어 단점은 줄이고 장점은 극대화해야 합니다. 시원하고 통쾌하진 않겠지만, 그것이 언론개혁입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처럼 건강에 좋은 언론 비평을 지향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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