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얼마 뒤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2022년 3월9일 치른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그가 앞으로 5년간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력은 막강합니다. 돌아온 보수정권은 많은 것을 바꾸려 할 겁니다. 언론계에도 한바탕 소용돌이가 예상됩니다. 지난 보수정권들은 언론을 장악하려 하거나 비판 언론에 적대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부디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윤석열 정권에서 이런 권위주의적 행태가 되풀이될지 모릅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언론들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요. 문재인 정권을 날카롭게 공격했던 보수언론의 펜 끝은 윤석열 정권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무뎌질 가능성이 큽니다. 권력의 폭주를 비판하고 퇴행을 막아내는 감시와 견제 기능은 결국 진보언론의 몫입니다. 윤석열 정권 5년은 진보언론의 존재 이유를 세상에 입증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꼭 해결하고 가야 할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진보언론의 핵심 소비층인 ‘깨어 있는 시민’들과 진보언론 구성원이 어깨를 겯고 높은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바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2011년 첫 방송을 한 팟캐스트 <나꼼수>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했던 이명박 정권 시절에 시원한 풍자와 해학을 선보였고, 기성 언론의 낡은 형식을 깨뜨린 신선한 실험이었습니다. 진보 진영은 이 재기발랄한 대안적 저널리즘에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진보 공론장은 <나꼼수>의 강한 중력장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나꼼수>는 오래전에 종방했지만, <나꼼수>의 논리와 스타일은 진보 담론의 절대적 우세종이 됐습니다. <나꼼수> 멤버와 그 아류들은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리더가 됐고, <나꼼수> 사고방식을 따르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의 <나꼼수> 같은 역할을 해줄 진보언론을 찾는 시민이 적잖습니다. 진보 정파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며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진보 종편’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진보언론이 <나꼼수>를 따라가면 윤석열 정권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와 진보를 바라는 시민들이 그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꼼수> 저널리즘은 극단적인 진영 논리를 추구합니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따져 ‘내 편’이면 로맨스라고 옹호하고, ‘네 편’이면 불륜이라고 저격합니다. 어떤 정보든 정파적 유불리를 기준 삼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나꼼수> 저널리즘은 오로지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할 뿐, ‘왜 우리 편이 이겨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 구도에만 집중할 뿐, 젠더 이슈를 비롯해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에는 눈감습니다. 변화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진보적 가치에 무관심합니다.
대선 개표 조작 음모론을 처음 제기한 곳<나꼼수> 저널리즘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네 편’을 향한 분노에 불을 지르고 ‘내 편’이 듣기 좋다면 사실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중에 떠도는 ‘카더라’나 ‘뇌피셜’(검증된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이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동원됩니다. 대선 개표 조작 음모론을 처음 제기한 건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아니라 <나꼼수> 멤버였던 김어준이었습니다.
<나꼼수> 저널리즘은 늘 승리를 강조하지만,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민주·진보 진영의 승리에 도움된 적이 없습니다.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끼리 서로 신념을 증폭하는 ‘반향실(Echo Chamber) 효과’만 있을 뿐, 다른 생각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외연을 넓히진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꼼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했고, 이어진 대선에서도 정권교체에 실패했습니다. 국정농단이라는 상대의 ‘자살골’이 없었다면 몇 번의 선거 승리도 없었을 겁니다. <나꼼수>의 후계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 부인의 ‘쥴리’ 의혹을 물고 늘어졌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나꼼수> 저널리즘을 바라보는 중도층의 시선은 늘 차가웠습니다.
<나꼼수> 저널리즘으로 득을 본 건 뜨거운 팬덤을 거느린 몇몇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입니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린 인플루언서들이 진보 여론을 좌지우지하면서 공론장을 망가뜨린 겁니다. 정권이 바뀌면 이 인플루언서들은 <나꼼수> 저널리즘을 한층 더 ‘매운맛’으로 몰아가며 주목을 끌려 할 겁니다.
벌써 진보 진영 내에는 임기도 시작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증오와 조롱이 넘쳐납니다. 진보언론의 기사 제목에서도 정권의 실패를 바라는 저주의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문재인 정권에서라면 다르게 쓰지 않았을까요? ‘허니문’ 기간이 필요하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닙니다. 진보 진영부터 ‘네편내편 저널리즘’에서 벗어나자는 겁니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잘못할 땐 호되게 비판하고, 윤석열 정권이 잘했을 땐 기꺼이 칭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정권이 잘못할 땐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싸우는 것 자체가,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돼선 안 됩니다. 싸움을 통해 지키고, 승리를 통해 만들어내려는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 가치는 일부 정치인을 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같은 것이 아니라 평등이고, 인권이며, 환경이어야 합니다. 추구하는 가치가 없다면 왜 진보입니까? 무엇이 저들과 다릅니까?
싸움의 무기는 언제나 ‘정확한 사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막강한 권력에 맞서는 언론의 힘은 현란한 요설이 아니라 소박한 사실에서 나옵니다. ‘네 편’에 대한 분노와 ‘내 편’에 대한 열광을 자극하는 화려한 언어의 유혹을 이겨내고 소외와 차별에 시달리는 약자들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분노와 열광’의 저널리즘은 분명 중독성이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를 주는 콘텐츠에 맛을 들이면 기성 진보언론은 밋밋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나꼼수> 저널리즘이 그려내는 환상은 현실이 아닙니다. 달콤하더라도 진보 진영이 언젠가 깨어나야 하는 한바탕 꿈입니다. 이 꿈에서 깨어나야 진보가 삽니다.
<나꼼수> 저널리즘과 단절하려는 진보언론에 손가락질하는 시민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진보언론의 존재 이유는 ‘안티 윤석열’ 이상의 무언가가 돼야 합니다. 이제 진보언론은 중요한 시험대에 오릅니다. <나꼼수>가 드리운 그늘을 걷어내는 새로운 저널리즘을 기다립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처럼 건강에 좋은 언론 비평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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