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사고 발생 원인과 관련해서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요. 잘 아시다시피 서울 시내 곳곳에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경찰 경비병력이 분산됐던 그런 측면들이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발생 14시간여 뒤인 2022년 10월30일 낮 12시. 이상민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준비된 발언이었지만, 안전과 재난 상황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사과하거나 책임지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행안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제2조·대통령령)는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 비상대비’를 행정부의 직무로 명시하고 있다. 또 ‘경찰관 직무 집행법’(제5조)은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극도의 혼잡이 있을 때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가 경찰·소방을 휘하에 두고 지자체를 감독하는 이유다.
이상민 장관은 다음날인 10월31일 오전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은 자리에서도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모인 시민이 예년 8만~10만에서 13만으로 30% 정도 늘었고 경찰은 예년 80~100명에서 올해 130여 명으로 40% 증원됐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이태원에 경찰력을 많이 배치하지 않은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137명 가운데 79명은 윤석열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10월24일)고 지적한 뒤 마약 등 범죄 예방을 위해 배치된 사복 경찰이었다. 정복 경찰은 58명뿐이었다. 더구나 직전 해인 2021년 이태원에는 경찰 268명(기동대 3개 부대 포함)이 배치돼 코로나19 방역패스 확인과 함께 질서 유지 역할을 했다.
자신에게 향할 비난을 방어하는 차원을 넘어 이 장관은 비판 여론을 ‘선동’이라고까지 몰아세웠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아야 앞으로도 대참사를 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의 정확한 사고 원인(발표)이 나오기 전까지 섣부른 예측이나 추측,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하지만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행안부 장관 파면 요구가 나오는 등 비난이 빗발치자 이 장관은 한발 물러섰다. 그는 이날 오후 4시 행안부 출입기자단에 다음 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내 유감을 표했다. “국민께서 염려하실 수도 있는 발언을 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더욱 사고 수습에 전념하겠다.”
이런 인식은 행안부 장관 개인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 전반적으로 공유한 것이기도 하다. 10월31일 오후 3시 대통령실 기자 브리핑에서 출입기자들이 “이상민 장관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경찰은 집회나 시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이 없습니다. 주최 측이 어떤 요청을 하면 경찰이 선제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법적, 제도적 권한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 장관도 그런 취지로 발언하신 것으로 저희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서울 법대 후배인 이상민 장관은 대통령 최측근으로 불린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행안부·보건복지부 등으로 구성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0월30일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 사고’로, 인파에 눌려 숨진 희생자를 ‘사망자’로 통일해 부르기로 결정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제4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닌다’고 규정하지만, 정부가 이런 책임을 방기하고 대규모 재난 상황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10월31일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니라 추모의 시간”이라며 “(이번 참사는) 산사태 나듯이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10월29일 참사가 발생한 직후부터 대통령실, 행안부, 여당, 지방자치단체 등은 “막을 수 없는 사고였다”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동을 관할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이태원의 핼러윈 행사는)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박 구청장은 10월31일 오전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 조문한 뒤 만난 MBC 취재진이 “구청장의 사과가 없다”고 지적하자, “이건 ‘축제’가 아니다.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핼러윈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답했다. 박 구청장이 굳이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고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행안부가 만든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주최자가 있는 축제는 구청이 직접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거나 주최 쪽의 계획을 심의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주최자가 없는 ‘현상’이라면 이 책임을 피해갈 수 있다. 박 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지난해보다는 많을 거라고 예측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많을 거라고는 저희는 예상하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박 구청장이 말한 “역할은 다 했다”는 무슨 뜻일까. 용산구청의 한 관계자는 “구청장 집이 참사 현장과 가까워서 당일 밤 10시50분부터 현장에 나와 심폐소생술도 거드는 등 뛰어다니면서 고생이 많았다. 그런 점을 얘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용산소방서 의용소방대 여성대장 출신이다. 용산구는 구청 누리집에 참사 당일인 10월29일부터 박 구청장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긴급구조활동 보조 △긴급의료지원 대책 마련 지시 등의 공적을 팝업창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부 또는 지자체 수장들의 ‘내 책임 아니다’라는 태도가 바뀐 것은 참사 사흘 뒤인 11월1일부터였다. 이날 오전 11시30분 윤희근 경찰청장은 예정에 없던 입장을 발표했다. “사고 발생 이전부터 많은 군중이 몰려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급박한 내용의 112 신고들이 있었지만 이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모든 부분에 대해 예외 없이 강도 높은 감찰과 수사를 신속하고 엄밀하게 진행하겠다.” 윤 청장은 경찰청 내에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해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민 장관이 처음으로 ‘사과’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 것도 그로부터 2시간30분 뒤였다. 그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유럽 출장 중에 급히 귀국(10월30일)했지만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던 오세훈 서울시장도 같은 날 오후 5시께 사과했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오 시장 입장에선 나서서 대책을 내자니 ‘왜 사전에 안 했느냐’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가만히 있자니 ‘아무것도 안 하느냐’고 할 것 같아서 애매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대책회의를 했지만 별다른 내용이 없었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서울시 기자단에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관내에서 발생한 참담한 사고에 대해 구청장으로서 용산구민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5시께 참사 당일 오후 6시34분~10시11분 ‘압사’ 등을 언급한 112 신고가 11건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 지자체의 태도는 ‘할 만큼 했다’였다. ‘책임질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발뺌하기에 바쁘고 숨어지내다가 사흘 지나서야 사과한다는 게 진심이겠냐. 세월호 참사가 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남 탓 하는 공무원들 태도는 하나도 안 바뀌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다음날인 10월30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마음이 무겁고 슬픔을 가누기 어렵다”고 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날 참사 현장에 가서는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말이오)?”라고 묻는 윤 대통령의 목소리가 방송사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8월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서 한 가족이 침수돼 숨졌을 때도 “아, 주무시다 그랬구나”라는 육성이 보도돼 기본적인 재난 상황을 파악조차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참사 뒤 출근길 약식 문답도 없앴다. 그간 논란이 된 ‘설화’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112 신고와 관련한 보고를 받고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전언이 흘러나온다. 경찰의 한 간부는 “애초에 질서 유지보다 범죄 예방에 중점을 뒀던 경찰 지휘부 방침이 더 큰 문제지, 말단만 쥐 잡듯이 잡는 게 상식에 부합하냐”고 말했다.
심지어 한덕수 국무총리는 11월1일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 도중에 웃으면서 농담을 던져 물의를 빚었다. 한 외신기자가 “이렇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는 사고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냐”고 물었고 중간에 통역 문제가 생기자 한 총리는 웃으며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말했다. 이날은 ‘국가 애도 기간’ 사흘째였고, 한 총리는 이태원 참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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