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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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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그를 많이 좋아했구나

등록 2009-08-28 11:21 수정 2022-12-15 15:49

대통령의 죽음은 내 어린 날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대통령이 죽었으니 이제 우리나라는 어찌 될까 하는 우국충정으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선생님이 눈물을 멈추지 못하니 그날은 오전 내내 자습이었고, 그 다음날인가는 전교생이 줄지어 구청까지 걸어가서 분향을 하고 오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단 한 명의 대통령만을 보아온 내 머릿속에는 대통령과 박정희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으로 통째로 입력돼 있었다. 대통령도 죽을 수 있고, 또 박정희가 아닌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돼서야 알게 된 것이다.

사형수가 대통령 되는 그 순간이 감격스러웠네

이제 보니 그를 많이 좋아했구나.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제 보니 그를 많이 좋아했구나.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세월은 흐르고 그 초등학생은 학부형이 되었다.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거리에서 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고, 힘들게 얻어낸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에 간 것도 벌써 여러 차례다. 그렇게 우리 시민들이 선택한 대통령이 이미 여럿이다. 그중 참으로 큰 감격으로 취임식을 지켜본 것은 DJ가 대통령이 될 때였던 것 같다.

나는 정치인 DJ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외면한 채 양김이 등 돌리고 앉아 있던 광경은 내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대통령 DJ에게도 할 말은 많았다. 나는 그가 더 단호히 과거를 청산하고 더 멀리 나가기를 원했으나 그의 행보는 늘 나의 바람보다 부족했다.

그러나 나는 DJ를 좋아했다. 그의 삶 내내 그를 따라다니던 족쇄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해방 직후 몽양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한 일로 인해 때만 되면 ‘빨갱이’로 매도당했다. 영남 세력 집권하에서 ‘전라도 출신’으로서 당한 핍박도 컸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세 번을 낙선했다. 계속되는 역경과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영혼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

그는 삶 자체로 드라마가 된 사람이다.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 시절에 그는 최전선에 있었다. 암살 위기를 겪었다. 자택에 감금됐다. 쫓기듯 해외로 떠나기도 했다. 내란음모죄로 법정에서 사형선고도 받았다. DJ라고 해서 갈등이 없었을까? 한발 물러서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높은 자리도 주고 광영을 보장한다는데, 고집 피우면 이제 곧 죽는다는데, 그래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도 좋았다. 사형수가 대통령이 되는 역사의 반전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쉽게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그를 대통령의 자리로 보낼 수 있는 우리 사회가 감격스러웠다. 그 사회의 시민인 내가 자랑스러웠다. 대통령 DJ의 존재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꿈을 꾸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사형수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세상에 무엇이 불가능하겠느냐고, 그는 삶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DJ는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상식을 뒤집었다. 그는 죽을죄를 지은 놈은 사형이 마땅하다는 상식을 뒤집었다. DJ 이전의 대한민국은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는 ‘인권 후진국’으로 분류됐다. 그가 있어 대한민국이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이 되었다. 그는 민주화운동 운운하는 놈들은 모두 빨갱이라는 상식을 뒤집었다. 민주화운동이 우리 사회의 진보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고 국가가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민주화운동보상법, 야만의 시절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의문사진상규명법이 만들어졌다. 그는 북한과는 상종을 말아야 한다는 상식을 뒤집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정상과 마주 앉아 민족의 미래를 의논하고 합의를 이뤄낸 대통령이 바로 DJ다.

계속해서 대한민국 상식을 뒤집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통한 죽음 앞에서 통곡하던 DJ를 생각한다. 그 나이에, 그 지위에 있는 남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통곡을 하다니! 그날 나는 새삼 그에게 반했다. 그 솔직하고 인간적인 풍모가 그의 힘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또 하나 그가 그렇게 통곡할 만큼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이 엉망임도 다시금 절실하게 와닿는다.

이제 보니 나는 DJ를 많이 좋아했구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마음을 담은 꽃 한 송이 놓아드리고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현희 서울 구일고 사회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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