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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식 ‘답정너’를 거부한다

등록 2025-11-27 22:33 수정 2025-12-03 17:55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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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마을 인근에 발전소가 세워졌다. 이후 하늘은 탁했고, 매캐한 냄새가 떠나지 않았다.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다. 사람들은 자주 콜록거렸고, 감기가 들면 잘 낫지 않았다. 하늘에서 백색 가루가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주민들은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하얀 가스를 의심했지만, 발전소 쪽은 인체에 무해한 수증기라고 일축했다. 마을 주민들이 의뢰한 조사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수증기라던 기체에 각종 질소산화물과 벤젠, 톨루엔 등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었다. 대기오염도 심각해 초미세먼지가 ‘주의보’ 수준인 날이 많았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가 자리 잡은 마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문제1. 위의 사안을 해결할 방안을 고르시오.

①주민들의 건강 이상을 주기적으로 검진하고, 보상과 대책 마련을 재수립한다. 필요시 이주 대책을 마련한다.

②대기오염·배출가스 모니터링, 야간이나 취약 시간대의 배출량 제한 등 법적 규제를 강화한다.

③발전소 부지 선정 단계에서 환경영향평가 등 의무를 강화하고, 나아가 LNG 발전소의 신규 건설 계획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수급 계획을 세운다.

④집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쓴다.

 

발암물질 배출엔 ‘마스크’가 정답

 

정답은 하나다. 예상한 대로, ④번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이게 간편하다. 사람 목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효율적인 선택이다. 실제 주민들이 취할 방법도 이것뿐이다. 정부기관과 발전소(SK, 한화 등)에 건의해도 ‘법적 기준 충족’이라는 답밖에 오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마을에서 지내야 하는 주민들에게 정답은 하나다.

다음 문제도 풀어보자.

‘물류센터에서 1년 반 야간노동을 한 이가 사망했다. 퇴근 뒤,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과로사였다. 이 물류기업에서 목숨을 잃은 이는 25명. 이 중 과로사로 인정되거나 추정되는 이는 17명. 지난 4년간 이 기업의 산업재해율은 평균 6.7%. 100명 중 7명은 일하다 죽거나 다친다. 기업은 총알·새벽 배송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에 다른 택배사들도 심야배송을 도입하고 있다. 심야배송 확대가 물류업 종사자들의 업무 강도와 건강 위험을 높일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2. 위의 사안을 해결할 방안을 고르시오.

①산재사고에 관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재발 방지안을 마련한다.

②배송기사에게 분류작업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고, 연속 근무일수(노동시간)에 상한선을 두어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한다.

③배송 속도 경쟁이 과열되지 않도록 주 7일 배송 금지, 새벽배송 필수 품목 별도 구분, 초심야시간(0~5시) 배송 제한 등의 방안을 마련한다.

④일을 마치고 바로 씻지 않는다.

쿠팡 뛰고 나면 ‘씻지 말라’가 정답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런 게시물을 봤다. 제목이 ‘알바 끝나고 씻으면 안 되는 이유’다. “쿠팡 뛰었을 때 너무 힘들어하니까 담당자가 집에 가서 절대 바로 씻지 말라고 다섯 번은 강조함. 죽을 수도 있다고.” 꽤 ‘좋아요’를 많이 받은 글이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정답을 안다.

“쿠팡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가 정답이 돼가고 있다. 쿠팡아이엔시(Inc)가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으니, 그렇게 될 것이다. 쿠팡식 세상에선 쿠팡 없이 살 수 없을 것이다. 발전소가 대기를 오염시켰다고 숨을 안 쉴 수 없는 것처럼. 장시간-고강도-일용직-심야 노동이라는 쿠팡식 일자리를 찾게 하는 세상에선 사람들이 쿠팡으로 일하러 간다. 퇴근해 바로 샤워하지 않는다는 정답을 기억하며.

쿠팡식 속도가 확산해서는 안 된다. 쿠팡식 고용과 노동이 기준이 돼선 안 된다. 100명이 들어가서 7명이 죽거나 다쳐서 나오는 일터가 이 세상의 정답을 이끌게 해선 안 된다. 이게 명쾌하지 않고 비효율로 치부되는, 오답 같은 소리임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더 많은 오답을 찾아가길 바라기에 정답을 맞히지 않는다. 어떤 오답을 쓸지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틀린 답을 적어낸다.

 

희정 기록노동자·‘죽은 다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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