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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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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간 한국서 5남매 키운 엄마, ‘가족해체’ 폭탄 품고 하루하루 째깍째깍

찔끔찔끔 내놓는 정부의 한시적 ‘체류자격’ 연장 대책… 그나마 이주노동자 가족 대다수에겐 ‘그림의 떡’
등록 2026-03-13 10:32 수정 2026-03-17 08:40
2026년 3월2일 광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아미나의 첫째 딸 러블린(29). 한국에서 태어나 쭉 한국에서 성장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이라고 규정했다.

2026년 3월2일 광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아미나의 첫째 딸 러블린(29). 한국에서 태어나 쭉 한국에서 성장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이라고 규정했다.


 

아미나(55·가명)는 1997년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으로 왔다. 10년이 지난 2007년 5월 어느 날, 남편이 집에 오지 않았다. 사업하는 과정에서 비자에 문제가 생겨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바로 외국으로 추방된 것이다. 아미나 곁에 남은 건 네 자녀와 뱃속의 아이, 그리고 미등록이라는 신분이었다. 아미나는 홀로 다섯 자녀를 키웠다.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어 교회나 지방자치단체, 이주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버텼다. 그사이 법무부 방침이 바뀌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시적 체류자격이 주어졌다. 아이들은 하나둘 대학에 가고 취업도 했다. 그리고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2026년 2월, 아미나의 체류 기간이 끝났다. 한국에 온 지 29년, 5남매를 홀로 키워낸 19년의 세월 끝엔 한국을 떠나라는 싸늘한 통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별안간 사라진 남편… 알고 보니 강제추방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등 이주인권단체는 2월1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미나와 함께 국내에서 성장한 이주배경 청소년 보호자의 체류 기간을 연장하라는 취지의 진정을 인권위에 냈다. 이주배경 청소년이 국내 초중고에 재학 중일 때 그 보호자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성인(19살)이 된 이후 최대 1년까지 체류할 수 있다.

아미나에게 첫 번째 강제퇴거 위기는 2017년 그의 둘째 아들 페버(27)가 고등학교 졸업 뒤 회사에 취직했다가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 단속에 걸렸을 때였다. 당시 페버가 구금된 사연이 언론에 상세히 보도됐고 국민의 탄원이 이어졌다. 이어진 소송에서 법원도 강제퇴거명령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인권위가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를 중단하고 체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법무부에서 2021년 4월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구제대책)을 시행한 계기다. 이 대책은 ①국내에서 출생했고 ②15년 이상 국내에 계속 체류하면서 ③초등학교를 졸업한 미등록 아동에게 한시적 체류자격을 부여했다. 이 요건이 너무 좁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법무부는 2022년 2월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와서 6년 이상 혹은 좀더 큰 나이에 와서 7년 이상 머물렀고 현재 초중고 재학 또는 고교를 졸업한 미등록 아동·청소년으로 신청 대상을 확대하는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교육권 보장 방안)을 시행했다. 이 방안은 2025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2028년 3월까지로 한시 운영 기간이 한 차례 연장됐다.

 


 

문제는 아미나 같은 보호자의 체류 기간에 관한 내용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점이다. 2021년 구제대책도, 2022년의 교육권 보장 방안도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의 보호자 체류를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보장하도록 했다. “2월2일 마지막으로 출입국을 찾았을 때 체류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참담했어요.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고 가족도 전부 여기 있는데 홀로 떠나라고 하더군요. 준비할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간청했는데 거절당했어요. 그렇게 미등록 상태로 한 달이 지났습니다.” 2026년 3월8일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아미나가 말했다.

인권위 진정 이후 법무부는 최근 체류자격을 부여받은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이 24살이 될 때까지 보호자도 체류가 가능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아미나도 이 지침 변경 이후 출입국에 방문해 체류 연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체류 기간을 어설프게 연장하는 것보다 한국 땅에 장기 거주한 이주배경 가족이 영주권 등을 심사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아동·청소년 대책에서 소외된 90%

이는 법무부의 체류자격과 관련해 여전히 남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신청 대상인 이주아동·청소년이 교육권 보장 방안을 신청할 경우 보호자에게 미등록 체류에 대한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범칙금은 기간에 따라 다른데 7년 이상 미등록으로 거주했을 때 한 명당 900만원을 내야 한다. 부모가 둘 다 있을 경우 1800만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학교의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미등록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필리핀 국적의 라이한(20·가명)이 이 범칙금 때문에 교육권 보장 방안을 신청하지 못한 경우다. “아버지 혼자서 일을 했고, 필리핀에도 돈을 보내야 해서 모은 돈이 많이 없었어요. 저는 범칙금을 내고 (교육권 보장 방안으로 인한 체류) 비자를 받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못한 거죠. 아버지도 범칙금을 900만원까지 내면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고요. 그냥 (미등록 상태로) 조심히 일하다가 가시겠다고 했어요.”(‘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실태조사 보고서 중에서)

이런 ‘라이한들’에 대한 통계는 이주인권단체의 실태조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가 2023년 진행한 미등록 이주아동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실태조사에 참여한 40명 중 2021년 이후 법무부의 구제대책이나 교육권 보장 방안을 신청해 체류자격을 부여받은 이는 26명이었다. 나머지 14명 중 13명은 신청하지 않았고, 1명은 신청했지만 허가받지 못했다. 국내 거주 기간 등 신청 요건이 되지 않은 이유가 가장 컸지만 ‘범칙금 부담’을 꼽은 이도 많았다. 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체류자격 신청의 어려움을 묻는 말에 37명 중 15명(40.5%)이 범칙금 납부를 이유로 꼽았다.

미등록 이주아동 보호자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대신 범칙금을 납부하게 하는 시스템에 대한 지적은 이전부터 있었다. 2025년 9월 국회에서 열린 이주배경 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권영실 변호사는 “부모의 범칙금은 체류자격을 신청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2022년 교육권 보장 방안을 발표하면서 “범칙금 납부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는 사유가 있는 경우 범칙금 감면을 적극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한겨레21이 법무부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아 확인해보니 범칙금 감면이나 면제받은 비율은 체류 허가를 받은 보호자 2098명 중 84명(약 4%)에 불과했다.

강다영 용산나눔의집 활동가는 “법무부에선 적극 감면해주겠다고 하지만, 정말 어려운 가정임에도 감면이나 면제를 해주지 않아 빚내서 납부한 사례도 있다”며 “그나마 우리 같은 이주인권단체와 연결된 분들은 (감면을) 좀 받지만 단체 조력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못 받는 사례가 훨씬 많다”고 했다. 권 변호사는 “대부분의 부모는 범칙금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해 주변 지인들에게 빌렸고, 적은 수입에서 매달 빚을 갚느라 어려움을 겪었다”며 “범칙금 면제 사유에 가족관계의 유지와 아동 최상의 이익을 포함하도록 하고, 분할납부가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국민·국제사회 여론 봐서 제도 검토”

이런 상황이다보니 법무부의 이번 지침 개정으로 혜택을 보는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 보호자는 100~200여 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21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구제대책 시행 이후 체류 허가를 받은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 중 19살 이상 연령대는 127명이다.

문제는 공식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과 보호자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21년 이후 2026년 1월까지 법무부로부터 체류 허가를 받은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은 1728명(부모는 209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규모의 10~20% 수준이다. 2025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나온 19살 미만 미등록 체류자는 5089명으로 기록돼 있지만, 이는 입국 기록이 있는 이들에 한해 집계된 숫자다. 국내에서 출생해 기록 자체가 없거나 교육도 받지 않는 이들은 누락됐는데, 이 숫자를 다 포함하면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 규모는 1만~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결국 한국에서 성장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이 좀더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상설화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나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인권위 등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의 법제화를 권고했다. 강다영 활동가는 “지금은 지침이 연장됐지만 다음에는 없어질 수 있는 불확실성이 남았고, 그것이 당사자나 학교, 관련 단체 등의 계획 수립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 정책 전반을 담당하는 유성오 법무부 이민조사과장은 “정부 기조도 많이 바뀌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에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생활기반이 한국에 있는 분들은 정주할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해질 것”이라며 “다만 (법무부는) 다른 의견도 많이 듣고 있고 양쪽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 과장은 2028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교육권 보장 방안의 상설화를 묻는 질의에는 “제도에 대한 평가는 계속 진행 중이고 국민 여론과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 등도 종합적으로 반영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키워놓고 강제추방… 한국도 손해

2026년 3월2일 광주에서 만난 아미나의 첫째 딸 러블린(29)은 조금 더 깊은 질문을 던졌다. “거울을 안 보고 살다가 문득 거울을 보거나, 외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해야 하는 행정적인 순간에나 이런 생각을 해요. ‘맞다, 나 외국인이었지.’ 평소엔 인지를 못하죠.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교육을 다 받고 자란 아이들이에요. 사실상 한국에서 키운 인재인데 왜 나가도록 하는 걸까요. 한국에도 손해 아닌가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8년 전에 나왔다. 페버의 강제퇴거명령 처분 취소 사건을 맡은 청주지방법원은 당시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에서 초중고 정규 교과과정을 모두 이수한 원고를 강제로 내쫓는 것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경제적·인적 피해를 입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무작정 내보내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원고를 활용해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게끔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광주=글·사진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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