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서울경찰청 앞 교통 통제 시시티브이(CCTV) 탑, 구미 코오롱 공장 내 송전탑, 광주 삼성전자 3공장 내 송신탑, 성남 샤니 공장 내 굴뚝, 서울 올림픽대교 주탑, 서울 구로역 교통 통제 CCTV 탑, 서울 망원한강공원 송전탑, 부산시청 앞 옥외 전광판…. 이것들이 뭐냐 하면, 책의 목차다.
문선희 사진작가에게 송전탑과 굴뚝, 전광판을 찍는 작업에 대해 들은 적 있다. 나는 이렇게 물을 뻔했다. “그걸 왜?” 좀 순화해서 물었던 것도 같다. “거기에 뭐가 있던가요?”
거기에 분명 무엇이 있던 때도 있었다. ‘서울경찰청 앞 교통 통제 CCTV 탑’에는 해고된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 3명이, ‘성남 샤니 공장 내 굴뚝’에는 해고된 배스킨라빈스 운송 노동자 4명이 올랐다. 그러니까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높은 곳에 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해고된 이들이다. 조기퇴직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기도, 문자로 해고되기도 했다. 고공에 오른 이들은 복직을 원했고, 바로잡길 원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려왔는데. 그것도 오래전에.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졌건 아니건, 그들은 거기 없다.
나는 그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잖아요.” 무용한 걸 좇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의 사진집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이 도착했다. 책에는 ‘한때의’ 고공농성장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농성장마다 누가 왜 어떻게 올라갔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김성호, 박종태, 강병재, 박명수, 윤종희, 구자현…. 기억을 붙들듯 이들의 사정과 결심이 자세히 담겼다. 그제야 나는 그곳에 우리가, 아니 내가 남겨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아주 간명한 사실 하나였다.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그는 기억을 가져온 대신 그곳에 마음을 두고 온 듯했다. 그가 두고 온 마음을 헤아리느라 ‘모든 일’을 하나하나 읽어야 했다.
덕분에 내가 잊은 고공농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제는 기억했는데 오늘은 잊은 누군가의 싸움. 당시 고진수씨가 서울 명동 도로 위 구조물에 올랐다. 세종호텔이 마주 보이는 자리였다. 그는 세종호텔 주방장이었다. 호텔은 코로나19를 빌미로 희망퇴직을 강요했고, 이에 응하지 않자 직원들을 해고했다. 팬데믹이 끝나고, 호텔에 관광객이 돌아왔지만 해고된 직원들은 돌아갈 수 없었다. 이들이 복직 싸움을 시작한 게 언제였더라. 2021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세월의 빠름에 놀라고, 나의 무심함에 놀란다. 얼마 전에는 336일간의 고공농성을 끝내고 땅에 내려온 고진수씨가 호텔 로비에서 농성하다가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도 놀랐다. 빠르고 무심하여.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땅에서 오래 싸우던 이가 철탑에 올랐다는 소식은 또다시 들려올 것이다. 그때도 나는 시간을 더듬을 테다. 그리고 한때나마 그들을 기억하려 애쓸 것이다. 그들은 사람을 믿고 높은 곳에 올랐으니까.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응답할 사람이 있다는 믿음 없이는 하늘 위는 고사하고 평평한 땅에서조차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다.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승리해 복직했다는 소식을 듣는 날에도,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 놀랄 것이다. 내가 잊고 지내던 사이에도 누군가의 시간은 치열하게 흘렀구나 하며. 누군가는 끈질기게 기억했구나 싶어. 오늘도, 내일도 잊지 않고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자리에 마음을 두고 온 이가 있다. 이들 덕분에 나는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다.
희정 기록노동자·‘죽은 다음’ 저자
*희정 작가의 ‘노 땡큐!' 연재를 이번 글로 마칩니다. 희정 작가는 “일러스트 작업을 맡아주신 슬로우어스를 비롯해, 원고가 지면에 담기기까지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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