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곁, 그 앞에 삶의 곁어르신은 처음 전화통화를 했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80대 후반 말기암 환자인데, 응급 상황으로 응급실을 몇 번 찾은 뒤 보호자인 딸이 연락해왔다. 식사를 못하고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찾아뵙고 도와드릴 부분이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정을 잡고...2025-04-12 21:02
왜 의사 정원은 한 명도 늘릴 수 없나의대생이 돌아왔다. 오랜 의정 갈등을 거치는 동안 의사가 꿈이라는 이들의 말을 참 자주 들었다. 총리, 장관, 양당 대표 등 주요 정책 결정권자 모두가 그들의 말을 경청하겠다고 나섰다. 미디어도 앞다퉈 보도했다. 이미 엄청난 특권이다.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은 1천 일...2025-04-05 19:12
이주민에게 한국은 늘 그랬다2024년 12월3일, 밤 9시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계엄이 있다가 없어진 세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날 일찍 잠든 내가 진정한 승자라고 했다. 영광 없는 승자로 100일 넘게 살고 있다.그 겨울, 취재를 위해 한국 현대사 자료를 읽었다. 책 곳곳...2025-03-29 20:49
“날으는 교실”로의 시간 여행“안녕? 나는 날으는(나는) 빗자루 선생님이야. 우리 반은 날으는 교실이고.”(맞춤법과 다르지만 말 그대로 옮겼다.)초등학교 6학년 새 학기 첫날, 선생님을 처음 대면하는 자리.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원색의 목폴라를 입고 쇼트커트를...2025-03-22 19:39
너무 반가워 우는 어르신…‘죽음 관리’보다 필요한 건 무얼까“저 의사 참 귀엽네.”막 문을 나서는데 어르신이 요양보호사에게 건넨 말을 들어버렸다. 문을 나오니 좀 부끄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르신은 90대 중반으로 고령이었다. 공직 생활을 오래 해선지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집안 곳곳에 메모한 흔적이 보였...2025-03-16 15:59
잘못은 ‘핫이슈지’에 있지 않다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을 두고 논란이 여전하다. 풍자라기에는 특정 계층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인데 근거가 좀 모호하다. 본래 패러디는 실제를 모방하되 우습게 변용하여 재현한다. 지나치게 희화화했다는 말은 곧 지나치게 ...2025-03-08 20:01
마흔한 살 황유미에 기대다올해로 마흔한 살. 아니다.윤○열 나이로 계산해야 하나. 그래도 사십 줄이다. 마흔한 살은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평균 나이라고 들었다. 신빙성 있는 정보는 아니다. 그래도 마흔한 살 황유미에게 흰머리 몇 가닥 정도는 있겠지. 그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황유미를 ‘소...2025-03-01 21:18
듣고, 관찰하고, 불꽃이 일고2024년 여름의 나는 몸도 마음도 좀 지쳐 있었다. 10여 년 동안 해왔던 다양한 활동들을 일단락하고, 다른 진로를 택하려 시간을 쓴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느낌이 들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보였다. 일종의 위험신호...2025-02-22 20:51
남은 고민“장례 비용이 걱정이네요.”오래된 빌라 4층에서 부모님을 돌보는 아들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전하며 장례 비용 걱정부터 했다. 두 달 전 주민센터 의뢰로 처음 찾아간 이 집은 아들이 파킨슨 증상으로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와 알코올 남용 등의 문제로 치매 증상이...2025-02-15 20:26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 ‘작은’ 죽음이쪽을 밟으면 살고 저쪽을 밟으면 죽는 곳이 있다. 지옥이 아니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2023년 한 해 산재 사망자는 2016명. 그중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수는 356명이다. 이곳에선 하루에 한 명꼴로 사람이 죽는다. “350여 명이면 참사예요.” 하지만 현실...2025-02-01 19:56
민주주의를 감각하기연말부터 새로운 운동을 배웠다. 근력과 근지구력 향상을 주목적으로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과는 다르게, 신체의 복합적인 움직임과 총체적 기능성 향상에 목적을 둔 펑셔널 트레이닝(Functional training) 관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 관점에서 바라본 나...2025-01-18 13:18
누구를 위한 대통령입니까 다음날의 빡빡한 방문진료 일정을 생각하며 잠을 청하던 중이었다. 잠들기 전 휴대전화로 잠시 뉴스를 보다가 이상한 속보를 확인했다. 비상계엄 선포. 기사가 미처 기록되지 않은, 제목만 달린 기사를 여러 언론에서 게재했다. ‘이상하네, 우리나라 대통령이 전두환이...2025-01-11 21:32
20년째 반복되는 이 장면널찍한 체육관 여기저기서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맨바닥에 사람들이 주저앉아 있거나 실신한 듯 누워 있다. 안쪽 단상에는 수많은 영정사진과 위패가 도열해 있다. 단상 옆으로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가족대책위원회’ ‘삼풍유가족협의회’ 등의 명의를 단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다...2025-01-04 22:36
서로가 서로의 풍경 되기“제주를 걷고 싶을 때 내가 즐겨 찾던 곳은 사계리 해안에서 형제섬을 바라보면서 한반도 최남단 산인 송악산에 올라 멀리 마라도와 가파도를 조망하고 모슬포 알뜨르 들판으로 내려오는 해안길이었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언급한 이 길은, 제주올레 10코스...2024-12-21 20:26
금실로 이어진 시민들원래는 이번 지면에 김소영 작가가 ‘어떤 어른’ 출간을 기념해 진행한 북토크에 다녀와 느낀 것을 쓰려고 했다. “어떤 어른이 돼야 할까?”를 질문하는 이 책은 비양육자 시민인 내가 어린이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일깨우며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린이 청중과 함께한 다정한...2024-12-15 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