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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 맨손잡기 체험, 사람들은 웃는데 방어 표정은 모르겠다

등록 2025-12-25 20:51 수정 2026-01-01 19:18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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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을 키운 적 있다. 그릇에 물 적신 솜을 넣고 그 위에 무씨를 올려놓으니 쑥쑥 자랐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트에서 보던 무순이랑 똑같았다. 뿌리가 있다는 것만 빼고. 잘라 먹으면 된다고 했다. 자르라고? 줄기를 싹둑 자르면 마트 팩에 담긴 그 모습이 된다. 가위를 들고 망설였다. “내가 죽이는 것 같잖아.” 그 말에 친구가 웃었다. “마트에서 죽은 걸 사는 건 괜찮고?”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인간 외에 살아 있는 것과 익숙해질 기회가 없었다. 한 생이 누군가의 먹이가 되는 순환을 마트에서 배웠다. 좀 다른 경험을 했으면 좋았을걸. 살아오며 그게 아쉬웠다.

몽둥이로 후려치는 ‘손맛’?

살아 있는 생물을 가까이 만나보고 만질 기회가 있다고 했다. ‘지역’으로 오라고 했다. 이색 체험, 오감 자극 체험, 남녀노소 체험. 지역축제 프로그램에 붙는 수식어다. 여기에 손맛 체험도 있다. 산천어같이 작은 생물은 낚싯줄을 당겨, 방어나 연어처럼 큰 생물은 맨손으로 잡아 손맛을 느낀다고 했다. 축제 현장에 가니, 큰 풀장에 풀어놓은 방어를 잡겠다고 사람들이 비명과 환호성을 터트린다. 방어도 소리를 낼 수 있다면 더 크게 비명을 질렀을 텐데. 몇 해 전 올라온 리뷰를 보니 “아이와 함께 간다면 몽둥이로 방어를 후려치는 그 순간은 못 보게 하길. 그야말로 후려쳐서 유혈이 낭자하니까”라고 쓰여 있다. 내가 본 손맛은 ‘순한 버전’이었나보다.

2025년 전국에서 열린 축제는 1214개. 이 중 흑자를 낸 축제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지역축제가 남발된다고, 촌스럽다고, 쓸모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로 특정 장소를 편의상 ‘지역’(지방)이라 뭉뚱그려도 위화감이 없는 사회에서, 지역의 ‘쓸모’를 소비하는 게 누구인지 생각한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나는 다만 내가 제주 최남단 방어축제에서 본 것을 말하고 싶다.

그날 축제 현장에서 간이 테이블을 펴고 설문하던 이들이 있었다. 방어 모자를 쓰고, 방어 모양 쿠키도 나눴다. 모슬포 인근 사람들이자, 생태 보전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제주 서쪽 생명체들의 모임이라 했다. 방어축제 폐지 서명을 받은 게 아니다. 축제 만족도를 조사했다. 주최 단위는 아니었지만, 설문으로 축제 참여자들이 방어 맨손잡기를 포함해 행사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축제 주최 쪽으로부터 이런 설문을 왜 하느냐고 핀잔도 듣고, 면담 요청도 거부당했지만 말이다.

‘펄떡펄떡 방어 잡는 모슬포 몽생이들’(추미경·염진영 지음)이란 책을 본 적 있다. 16년 전에 펴낸 책인데, 제주에서 방어축제를 시작한 지역 사람(몽생이)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말미에 축제를 진단하는 설문조사팀을 꾸린 이야기도 나온다. 이때 사람들은 의견 취합에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지금도 좀 그래야 할 듯하다. 책 표지에 방어 맨손잡기 체험 장면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웃고 있고, 방어는 모르겠다. 표정이 없다. 책이 요즘 나왔다면 표지가 달라졌을 거다. 16년 사이 세상이 좀 변했으니까.

지역을 귀히 여기게 할 축제라야

달라져야 하지 않나 싶다. “축제의 힘을 믿든 말든”(‘전국축제자랑’, 김혼비·박태하 지음) 축제는 계속되겠지만, 나는 지역(축제)의 힘을 믿는다. 지역에 새로운 사람이 오지 않는 것은 지역이 멈춰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16년 전처럼. 그런데 지역이 멈춰 있으면 이 사회 전체가 멈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울, 수도권, 기타 등등으로 구성된 곳이 아니니까. 내가 마트에서 어긋나게 배운 순환을 제대로 이뤄가는 공간이 없다면 서울도, 도시도 없다.

때려잡아도 되는 것, 맨손으로 던져도 되는 것을 내놓는 곳이라 인식되면 사람들이 그 지역을 귀하게 여길까. ‘그런 것들’을 다량으로 제공하는 공간을 귀하게 여길 사람은 없다. 지역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은 돌고 돌아 다시 지역으로 돌아온다. 지역이 지닌 귀한 것을 전했으면 한다.

 

희정 기록노동자·‘죽은 다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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