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2024년 5월, 한겨레21에 연재 중이던 ‘무적의 글쓰기’ 칼럼을 읽다가 나는 다음 문장을 썼다. ‘영희는 공장 노동자다.’
‘공장 노동자’란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아마도 푸른 작업복을 위아래로 갖춰 입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이겠지. 나는 당신이 떠올린 그 사람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 일터는 매달 혹은 매주 납품 기한이 주어진 방송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 주로 불리는 직함은 ‘작가’지만 글보다 몸을 더 많이 쓴다. 아이템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동료들과 무거운 장비를 나눠 지고, 카메라를 들고 촬영도 한다. 몸 쓰는 와중에 글도 쓴다. 어떤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 계획하는 ‘촬영 구성안’, 촬영한 영상을 하나하나 돌려보며 편집 방향을 제시하는 ‘편집 구성안’, 자막과 내레이션을 쓰는 것까지가 대개 방송작가의 일. 한 공정을 마치면 다음 공정이 줄줄이 기다린다. 생산 라인의 모든 공정에 한 발씩 걸쳐 있으니 늘 시간에 쫓긴다. 작가가 이런 일도 해요? 누군가 물으면 나는 멋쩍게 대답한다. 저희가 돈이 없어서요. 그때 나는 ‘예술품을 창작하는’ 작가가 아니라, 공장 노동자 김영희가 된다.
‘공장식’이란 어떤 것을 대량생산해낼 수 있는 장소와 설비를 갖추고 있는 방식. 최소 비용으로 최대치를 생산해야 하는 방송사 노동자 영희의 삶은 모순투성이다. 영희는 ‘공장식 축산의 폐해’ ‘공장식 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는 방송을 만들어놓고도 누구보다 공장식으로 살고 있다. 옆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입력된 업무를 시간 내에 출력하는 데만 집중하고,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것이 분명한 가장 값싼 달걀을 무심코 집어 들고, 어떻게든 생산량을 늘리려 잠을 줄이며, 종종 기계 같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공장식으로 사는 것은 쉽고, 빠르고, 싸다. 대학 시절 문예창작학과에 다니며 글 써서는 못 먹고 산다는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가난한 나의 선택은, 본체의 스위치를 끄고 ‘공장식 노동자 김영희’를 작동시키는 것이었다. 생각하지 마. 하자는 대로 해. 돈 벌러 왔잖아. 어차피 여기선 깊이 생각할 시간도 없어.
하지만 공장식으로 일한 지 12년차인 영희는, 요즘 부쩍 오류가 잦아졌다. 빨리 찍어 넘겨야 하는데,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이 울면 자꾸 따라 울고, 빨리 써서 넘겨야 하는데, 한 제품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한참을 미적거린다. 나는 영희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정신 차리라 타박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마를 때리기도 한다. 그러나 영희는, 종종 때려도 말을 듣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약속된 방송의 납품 일자가 코앞일 때 이 글을 쓰는 딴청 역시, 영희가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일 것이다. 온 나라가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 획득 소식과 인공지능(AI)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열광하는 지금, 나는 이 귀찮은 오류를 그냥 두고 보기로 한다. 방송사의 공장 노동자 김영희를 비롯해 세상 곳곳 평범한 영희들의 이야기 앞에서 계속 미적거려보기로 한다. 그래 봤자 내가 ‘방송국 놈들’이겠지만.
김영희(필명) 방송작가
*교양·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며 매일 새로운 타인의 일터를 구경하는 김영희 작가가 ‘노 땡큐!’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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