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올해 설 연휴 기차표 예매는 2026년 1월19일 아침 7시에 개시됐다. 우물쭈물하다 조금 늦게 접속했더니 이미 내 앞에 대기자만 42만여 명이었다. 나보다 5분 먼저 들어간 남편이 결국 표를 구했다. 꼭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시간대였다. 알람까지 맞춰두고 승차권을 예매하는 동안 기차가 왜 가장 민주적 교통수단인지 다시 확인했다. 기차는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요금을 내고 같은 선로를 같은 속도로 달려 목적지에 함께 도착한다. 누구나 이용하는 공공시스템이니만큼 나처럼 시가에 가려는 사람, 여행을 떠나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사람, 빵을 사러 가는 사람, 일하러 가는 사람 등 그 처지와 목적이 어떻든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매년 ‘민족대이동’이 있을 때마다 코레일에서 불법 매크로를 차단하고 암표상을 수시로 단속하며 고령자와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해 사전예매제도를 운용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철도의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명절이 누구에게나 ‘대이동’은 아니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고향 가기가 어렵다. 철로는 수익성에 가로막혀 읍면 단위의 작은 지역까지 촘촘히 연결되지 못하고,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는 휠체어 승강 장비가 전무해 승차권을 사도 타질 못한다. 휠체어를 타면 더는 우리 민족이 아닌가? 그동안 우리는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언사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나 민주시민에 장애인이 포함되지 않아도 우리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별도의 집단으로 분리해버리기도 한다. 장애인들이 출근길 서울 시민을 볼모로 잡고 불법 투쟁을 한다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명백한 차별이자 전형적인 ‘범주의 오류’로 장애인을 우리와 동등한 시민으로 바라본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장애인들이 목숨 걸고 투쟁하는 동안 버스나 지하철이 멈추고 도로가 막히면 그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 준비 안 된 사회를 함께 비판해야 한다.
설 연휴 승차권 예매가 시작된 바로 그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이 어느덧 1천 번째를 맞았다. 2001년 1월에 발생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로 촉발된 이동권 투쟁의 역사만 무려 25년이다. 천신만고 끝에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지만 여전히 우리는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회사나 학교, 쇼핑몰에서 장애인을 자주 만날 수 없다. 많이 좋아졌다, 기다려달라는 말은 그만하자. 이동권은 기다리거나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교육받으러 가거나 일하러 갈 수 없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이 죽을 때까지 시설에서 나오지 못한다. 기차와 버스는 이들의 인권을 보장할 최후의 보루다.
접근성이 떨어져서 장애인이 못 타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우리처럼 늦게 일어나거나 예매 기간을 놓쳐서 기차나 버스를 타지 못해야 잘 ‘굴러가는’ 사회다. 장애인에게 편한 교통수단은 결국 노인과 어린이에게도 편하다. 모든 사람이 생의 모든 순간에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이동수단이 되는 것이다. 출퇴근길에 농성장이 아니라 열차 안에서 장애인을 더 많이, 자주 보기를 바란다. 이들의 휠체어가 ‘3초 백’만큼이나 자주 보이기를, 그래서 휠체어를 탄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머리가 노랗거나 두꺼운 책을 읽어서, 최신형 휴대전화를 써서 기억날 정도로 각자의 고유성을 드러내기를 새해 소망으로 빌어본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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