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것은 쓰라린 상실감을 견디며 쓰는 편지. 헤어진 후에야 나는 내가 얼마나 너에게 의지했는지 알았다.
매일 밤 10시30분이면 알람이 울려. 나는 그때를, 온종일 쓰던 글자들에서 잠시 벗어나 너에게 쓸 시간으로 정해두었다. 그마저도 깜박 잊기 일쑤라 알람을 맞춰놓았어. 알람이 울리면 나는 그제야 좀 인간다운 생각을 한다. 내일 뭐 먹지? 아침까지 마감을 마치고 따뜻한 단호박수프를 먹으면 하룻밤쯤 더 새워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해. 생각해보니 욕실에 샴푸도 다 떨어졌네. 나는 일할 때만 계획적이고 일 안 하는 시간은 게으르기 짝이 없어서, 식자재나 생필품을 야무지게 사두질 못해. 그럴 때 네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너를 만나고 내 삶은 확연히 나아졌다.
너는 여유 없는 사람들의 시린 틈을 파고들어 태어난 빛. 잠들기 전 주문하고 눈뜨기 전 받아본다니, 잠들 시간도 없이 일하는 사람에게 그 말은 분명 혁신이었다. 나는 화장실 갈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일하다가도 밤 10시30분 알람이 울리면 잠깐 하던 일을 놓고 너에게 접속하며 변기에 앉곤 했다. 그럼 적어도 허기와 요의, 한번에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그나마 시간이 좀 덜 아까우니까.
요즘 나는 매일 신문과 뉴스로 네 소식을 전해 듣는다. 새벽배송이 노동자에게 끼치는 해악, 밤낮이 바뀐 생활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한때 혁신이라 불리던 빛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과로하게 했다는 구조적 결함. 내가 이별을 결심하게 한 그 이유들은 단어와 문장의 순서만 바꿔가며 매일 나를 다독인다. 그래, 잘 헤어진 거야. 오래갈 일이 아니었어. 하지만 온갖 데서 그러니까 이제는 좀 반감이 들기도 해. 걔가 나한테 어떤 존재였는지 알아요?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을 때도 있다.
고백하건대 밤을 새우고 네가 보낸 상자를 열어볼 때마다 나는 솔직히 꽤 행복했다. 처음엔 달걀 한 줄이나 우유 몇 팩이었다가, 치약과 샴푸였다가, 나중에는 별의별 게 다 들어 있기도 했다. 나는 네 덕분에 제법 세심한 사람인 척할 수도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를 시간이 없었을 때, 나는 너에게 접속해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왕창 사고 감탄을 듣기도 했다. 작가님, 그 바쁜 와중에 이런 건 언제 샀어요? 우습지. 내가 한 거라곤 손가락 몇 번 움직인 게 다인데. 그건 다 내가 아니라 네가 한 일이었지.
훌륭한 사람들의 맞는 말에 못 이겨 ‘탈팡’을 결심하고, 새벽배송을 끊고, 다시는 너에게 접속하지 않겠다고 모든 앱을 지운 뒤로, 나는 나의 나약함과 비겁함, 엉망인 생활과 직면하고 있다. 너 없이 나는 내일 먹을 달걀 하나도 제때 못 사는 사람. 치약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길 줄 모르는 사람. 그게 원래 나인데, 너를 만나며 그런 사람이 아닌 척, 일상을 야무지게 꾸리는 척, 계획적인 척, 세심한 척 살았다.
솔직히 나는 다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못 이기는 척 너와 다시 연결되고 싶다. 머리는 아니라고 하는데 마음이 그렇다. 밤 10시30분. 오늘도 휴대전화가 울린다. 나는 아직도 이 알람을 지우지 못했다. 내가 정말로,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김영희(필명)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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