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총선이었다. (대통령의) 대파로 (정부·여당이) 대파된 총선이라고도 한다. 대통령실에서는 단지 실수였다든지, 운이 없었다든지 하는 정도로 치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24년 4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머리발언을 보면,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거의 없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은 옳았는데 집행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반성할 것도 없다. 대통령은 옳은데 정부가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되고, 여당도 선거에서 진 것이다. 사후 대처도 이런 평가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직들이 물러나고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이제 새로운 참모진과 총리가 들어와서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나라가 다시 정상화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번 총선에서는 지난 몇 달간 일어난 국면의 변화가 눈에 띈다. 2023년 말까지 여야는 모두 내홍을 겪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낙연, 국민의힘에서는 이준석이 중심이 되어 모두 이탈자가 나왔다. 두 당에서 공통적으로 전직 당대표들이 지난 대선 후보들에게 밀려난 모양새였다. 이후 대통령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한동훈을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고, 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체포동의안 가결 파동을 딛고 ‘마이웨이’를 지속 중이었다. 여야의 당내 주류가 총선을 앞두고 각각 입지를 강화하는 동안, 대통령의 낮은 국정지지율은 여당에 부담이었다. ‘작은 파우치’가 모든 것을 삭제해버린 한국방송(KBS)의 대통령 신년 대담은 그 리스크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런데 막상 선거가 다가오자 먼저 주춤거린 쪽은 민주당이었다. 2월과 3월에 걸친 공천 기간 내내 민주당은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었고 지지율도 하락했다. 그대로 간다면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이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파를 들고 전면에 나섰다. 채 상병 사건의 가장 중요한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국외로 도피시키는 황당무계한 시도까지 했다. 선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결국 정권심판론으로 끝난 총선은 이런 국면의 변화가 이끌어낸 결과일까? 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 단지 그것만이라면 대통령실 판단이 맞을지 모른다. 출렁이는 정치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부·여당이 하강세를 그릴 때 하필이면 총선 투표일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니 총선에서 졌다고 의기소침할 것이 아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결국은 다음 지방선거와 대선에서는 오히려 기회가 올지 모른다. 양당제에서 주기적으로 변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번 총선에서 진 것이 다음 대선에서 도움이 될지 모른다. 지난번에도 총선에서 졌지만 대선에서는 이기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국면 변화와 더불어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무엇에 대한 심판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고 해도, 그 내용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 층위에서 가능하다. 그중에서 먼저 제거해야 할 것은 한 보수신문이 주장한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에 윤 대통령 부부가 있었다’는 식의 개인사적 평가다. 한국에서 총선처럼 다수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과정은 그런 작은 일에 좌우되지 않는다. 항상 구조적 원인과 사건사적 원인이 중첩돼 나타난다.
민주화 이후 주요한 선거에서 나타난 변수는 층위에 따라서 정책, 이념, 국정운영 능력이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정책은 이번 의대 증원 문제나 연금개혁, 부동산 정책 등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지 필요할 때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정책들을 제대로 수행하는지의 문제다. 이념은 남북관계를 둘러싼 외교, 과거사에 대한 대응, 조세나 복지, 노동 분야에서 어떤 이념지향을 갖고 통치에 임하느냐의 문제다. 여기에는 시대적 변화, 시장과 국제질서 등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선호되는 방향이 있게 마련이다. 요컨대 남북 간 화해·협력을 지향한 정부의 외교가 결과적으로 실패하면,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적대적 외교정책이 다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과도한 친기업·친재벌 정책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 노동과 복지를 중요시하는 정부가 들어서서 균형을 잡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국정운영 능력은 정부를 장악한 정치세력이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기본적 역량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다. 국정운영에는 최소한의 행정적 능력과 정책적 비전도 필요하지만, 민주국가에서는 야당과의 소통과 협치, 시민들의 참여 확대, 국민의 감정과 요구를 파악하려는 의지와 실천도 필수적이다. 이런 능력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발휘돼야 하지만, 비상한 상황에서는 그 역량 차이가 더 쉽게 드러난다.
지난 두 번의 총선과 그 중간에 있었던 대선은, 사실상 이 세 번째 역량에 대한 평가였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과 검찰개혁에 실패하고 있었지만,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 외교적 실적으로 그럭저럭 버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자, 문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상기시켰다. 총선 결과는 정책적 실패와 이념적 성공의 엇갈린 평가 속에서 국정운영 역량의 차이가 판가름했다. 그러나 문 정부 국정지지율 고공행진은 오래가지 못했다. 부동산값 폭등의 실체가 드러나자 백약이 무효였다. 문 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부동산 정책이 처음 잘못됐을 때는 정책적 수준의 문제였지만, 임기 후반까지도 잘못된 정책을 지속하고 성찰·반성·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국정운영 능력의 부재를 의미했다. 검찰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정치적 무능도 노출했다.
윤석열 정부는 훨씬 더 나쁜 과정을 보여줬다. 이 정부에서 보여준 정책적 역량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념적 편향성은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대외 경제 여건은 악화시켰다.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 진압해서 보수 결집에는 성공했지만, 홍범도 동상 문제는 중도층까지 돌아설 정도였다. 국정운영 능력의 부재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 잼버리 사태, 엑스포 유치 실패,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으로 무능 이미지를 착실하게 구축했다. 의대 증원은 정책적으로는 지지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도 겪고 있는 의료대란은 불통과 무능으로 연결됐다. 총선을 앞두고 대파로 상징되는 물가 관리 실패는 무능 이미지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었다. 이 정부는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없었다.
총선과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두 번, 국민의힘이 한 번 차례로 웃었다. 무능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정권과 정당이 물러나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다른 정치세력으로 교체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민주주의가 아직 작동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형식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국가의 미래도 밝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구소멸, 지역소멸, 기후위기, 안보위기, 산업전환, 노동과 복지의 위기 등 다중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역량을 가진 수권 세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일까?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작동하지만 정치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정치가 사라졌다는 증거는 이번 총선 직후 상황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보수세력이 이렇게 크게 패배한 경우는 없었다. 그렇다면 총선 직후 그에 합당한 정치적 반응이 있어야 한다. 정치가 살아 있던 시기라면, 이런 대안을 예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대통령실과 내각의 총사퇴, 취임 후 2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야당 대표와의 대화, 야당에 대한 적극적 협치 제안, 연립정부나 거국내각에 대한 구상, 필요하다면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까지 대통령이 고려하고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은 많다. 이런 일들은 ‘민주주의’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풀어가야 한다. 총선 결과에 따라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변화가 아니라, 정치인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범주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언론도 이런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정치’적 발상 자체가 소멸해버렸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일까, 정치가 사라져버린 것은? 정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흔적은 꽤 오래전부터 찾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선거제 개혁을 걸고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이것은 당장의 정치적 이익보다 국가의 장래를 우선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대표는 이를 간단히 거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여의도 ‘정치’에서 거리를 두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정치혐오를 최초로 정치에 활용한 대통령이었다. 정치를 거부한 대통령에게 협치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과 무능의 대명사였다.
희망은 촛불에 있었다. 국민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촛불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불과 두 달 뒤 치른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겨우 41.08%를 득표했다. 촛불에 찬성한 국민은 90%가 넘었지만, 문 후보를 찍은 국민은 둘에 하나도 안 됐다. 촛불정부와 탄핵연립내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 정부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다음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그런데 통치는 마치 90%쯤 지지받은 대통령처럼 했다. 그리고 총선에서 참패했다. 그런데도 국정쇄신의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임기 내내 국회에서 소수정당인 정부가 확정된 상황인데도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대통령은 정말로 국가를 운영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을까?
제22대 국회가 정말 걱정이다. 정부·여당도 정치에 나설 생각이 없고, 그렇다고 야당이 적극적으로 협치할 것 같지도 않다. 정치가 소멸하면, 그 결과는 정치의 소멸에 그치지 않는다. 그 징조는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소멸해버린 나라에서, 그들은 무엇을 통치하려는 걸까?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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