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연초부터 주요 정당이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정쟁에만 몰두해오던 거대 정당들이 정책에 관심을 표명한 것, 그중에서도 ‘인구소멸’이란 문제에 집중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대통령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전직 장관 출신을 임명해서, 지난 1년 반 동안 허송세월하던 위원회의 상황을 개선해보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같은 정치권의 중요 인사가 이런 메시지를 던졌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일까?
저출생의 원인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이미 답을 모르지 않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 변화’ 결과를 소개한 글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세대·성별 간에 결혼과 출산, 일과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영미는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재생산권을 모든 개인과 커플의 권리로, 남녀의 동등한 권리로 인정하는지, 젠더 평등한 재생산권 실현을 위한 남성의 책임과 참여를 강조하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재 저출산 대응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국가의 관점과 태도의 변화, 저출산 담론의 재구성’이라고 주장했다.(‘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한 젠더 분석’, 2018)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의 최영미와 경기대의 박윤환은 저출산을 ①의지적 저출산 ②숙명적 저출산 ③사회적 저출산 ④경제적 저출산 ⑤정책적 저출산 ⑥이타적 저출산 ⑦물리적 저출산 ⑧차별적 저출산, 총 8개 유형으로 나눴다. ‘저출산의 원인이 대부분 청년층 삶의 질과 연결됐고, 결혼과 출산의 자발적인 거부라기보다는 이를 거부하게 하는 사회구조’가 문제라고 결론한다.(‘결혼 및 출산에 대한 인식변화 분석과 저출산 원인의 유형화’, 2019)
그렇다면 앞에서 던진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주요 정당이 내놓은 공약과 정책이 이런 문제의식을 충분히 반영했는지를 따져보면 된다. 먼저 여당인 국민의힘의 공약을 보자. 부총리급 ‘인구부’를 신설하고, 아빠의 유급휴가 1개월을 의무화하고, 육아로 자리를 비운 직원의 유연근무를 지원하기 위해 다른 직원에게 수당을 지급해서 동료 연대를 강화하고,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가족친화형 중소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어떤가? 아빠가 1개월짜리 유급 출산휴가를 가고, 다른 동료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고, 정부 정책을 따르면 세제 혜택을 준다는 식의 상투적 대안이 과연 청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이번 대책을 보면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교체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대통령은 위원회에 ‘과감한 대책’을 요구했고, 위원회 내부에서는 위상이 약한데다 예산과 정책결정권이 없는데 어떻게 타 부처의 반대를 사전 조율한 과감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한다. 40대 여성 교수인 김영미전 부위원장이, 논문에서 주장한 것 같은 근본적인 담론의 변화를 보수 정부에서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는 게 어쩌면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면 기획재정부 출신의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어떤 ‘과감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과연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야당의 대책은 어떤가? 두 자녀 출산시 24평 주택, 세 자녀 출산시 33평 주택을 분양전환 공공임대 방식으로 제공하고,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억원을 대출해주고, 8~17살까지 자녀 1인당 월 2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아이돌봄서비스를 확대하며, 육아휴직급여에 더해 ‘워라밸 프리미엄’ 50만원을 추가 지급하고, 취업 여부와 무관하게 아이를 가진 모든 국민에게 출산전후휴가급여와 육아휴직급여를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야당이니 당장 책임져야 하는 여당보다는 강한 내용이 많다. 그런데 정책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집 주고 돈 준다는 것이다. 공약 순서를 보면 의지가 분명하다. 1번이 주택, 2번이 지원금, 3번이 공공의료, 4번이 일·가정 양립이다. 원인과는 순서가 완전히 바뀌어 있다. 과연 이런 정책으로 저출생이 극복되리라 생각하는 것일까?
몇 년 전 경남연구원에서 근무할 때, 지방소멸과 청년유출에 대해 대규모 조사를 시행했다(‘2020년 경상남도 청년 실태조사’). 그전까지 지역의 청년유출에 대한 선입견은 이런 것이었다.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한다. 어떤 젊은이가 지역에 살고 싶겠나. 청년의 마음은 지역을 떠났고, 그들에게 애착을 갖도록 하는 건 어렵다. 현금성 지원이나 일자리 같은 물질적 지원을 통해 떠나려는 청년을 붙잡아야 한다.’
그런데 조사 결과에서 다소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절반에 가까운 청년이 예상대로 지역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절반이 넘는 청년은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가족이나 친구였다. 주거비나 물가 부담도 적은 편이었다. 생활 여건은 나쁘지 않았다. 떠나려는 이유는, 물론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컸다. 이에 못지않게 다음 순위를 차지한 것은, 권위주의적 문화와 교육환경의 열악함이었다.
여기서 특정 지역의 청년유출과 그 원인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한 번의 조사로 청년이 과연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를 단정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인구소멸이나 지방소멸에 대해 지금까지 접근을 잘못했고, 그래서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게 아닌지 제기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청년은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청년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아’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다’라는 생각은 쉽게 ‘그것이 원인이다’라는 생각으로 연결되고,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다시 그 현상 자체를 ‘문제화’한다. 요컨대 저출생이 문제고, 저출생의 원인은 청년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래서 청년의 저출생이 문제인데 그 원인은 또 결혼이나 출산, 육아, 교육 과정에서의 수고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문제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과연 청년이 지역을 떠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문제의 원인일까, 결과일까?
당시 청년정책을 고민하면서 연구진이 합의하고 내린 결론은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떠나는 청년을 붙잡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 사는 청년을 행복하게 하자’였다. 떠나는 청년만 보고 있으면, 그들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만 찾게 된다. 청년을 돌아오게 하고 싶으면, 그들이 찾는 게 무엇인지만 보게 된다. 정작 여기 사는 청년의 삶, 아직 떠나지 않은 청년의 삶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발상을 바꿔보기로 했다. 경남에 지금 살고 있는 청년들이 전국에서 가장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떠나지 않으면, 찾아오면, 그때 뭘 준다는 정책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사는 청년을 먼저 행복하게 해보자.’ 그때 경남에서 세운 몇몇 정책은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것들이었다.
이런 종류의 정책은 정책 집행자인 정부는 물론이고 공동체 전체가 그 정책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요컨대, 청년정책을 집행하면서 이들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수혜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이런 정책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역 청년들은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긍정적 시선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청년정책에 투자한들 떠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기실 지방뿐이랴.
지금 우리의 저출생 대책을 보자.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면 뭘 준다’는 식이다. 마치 청년들의 귀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호통치는 것 같다. 그런 선입견은 이런 태도와 연결된다. 내 주변의 아직 집도 없고 수입도 안정적이지 못한 청년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어떻게 여기겠는가? 그런 커플에게 정부 재원을 투입해 지원한다면, 응당한 지원이라고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좀더 번듯하고 안정됐을 때 아이를 낳으면 좋은데, 왜 그렇게 일찍 아이부터 낳느냐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아이는 잊어버리자. 결혼도 잊어버리자. 그냥 지금 미혼인 청년을 좀 행복하게 살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좀더 행복할 수는 없을까? 청년은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 내 삶이, 또 주변의 가족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당장 내가 불행한데 결혼하면 갑자기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 결혼, 과연 행복할까? 지금 결혼한 가정이 불행한데, 너는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속삭임, 믿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런 건 어떤가?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에서 자살률 1위를 놓치지 않을 뿐 아니라, 평균치인 10만 명당 11.1명의 두 배가 넘는 24.1명을 기록했다(2018~2020년). 이런 나라에서 청년에게 아이를 낳으면 집 주고 돈 준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아이를 낳겠는가? 다음엔 이 이야기를 해보자.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소멸 직전의 정치: 2024년 4월10일 총선일을 디데이 삼아, 한국 정치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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