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방탄소년단(BTS)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가진 문화대국이라는 자부심에 우리는 어깨를 좍 편다. 그러나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동의 1등이 있다. 그것도 평균치를 2배나 넘는다. 자살률이다.
한국이 원래 자살이 많지 않았냐고? 아니다. 한국의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1990년 초반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자살자 수도 1983년에서 1992년까지 연간 3천 명대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후 20년 동안 자살자 수가 급증했다. 1993년 4천 명대, 불과 3년 뒤인 1996년에 5천 명을 넘어섰고 이때부터는 상승세가 가파르다. 매년 1천 명 가까이 늘더니 2005년에는 1만2천 명이 됐다. 12년 동안 인구는 불과 10% 늘었는데 자살자 수는 3배가 됐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두 가지 지점이 있다. 하나는 OECD 회원국들과 한국의 자살률이 극단적 반대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1988년 8.4명으로 당시 OECD 평균인 17.2명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7년에는 13위, 1998년에는 7위를 기록한 이후 2003년 1위를 차지해서 지금까지 그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시기 다른 OECD 국가들의 자살률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 전 지구적인 추세나 인류사적 변화가 아니라 순전히 ‘한국적인’ 일임을 의미한다.
둘째는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진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1997~1998년, 2001~2003년, 2008~2009년에 각각 크게 늘어났다. 외환위기, 카드 대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시기다. 이는 한국의 자살이 개인적·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요인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많이 자살하는 것은 개인들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시스템의 문제다.
한국의 자살률 추이가 저출생과 관련 있을까? 2021년 대한신경과학회는 출생률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자살률 증가라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2023년 3월,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을 맡은 황순찬 인하대 교수도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에서 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살이 많은 나라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 1992~2005년 자살자 수가 330% 늘어나는 사이, 출생률은 1.76에서 1.08까지 떨어졌다.
한국의 자살률이 출생률과 관련 있으리라는 점은 자살률 추이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부동의 1위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2011년의 자살률 31.7명, 자살자 수 1만5906명을 정점으로 현재는 조금 줄어든 상태다.(2013년 이후 현재까지 자살률은 26명대, 연간 자살자 수는 1만3천 명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OECD 평균 12명대의 2배 이상이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자살이 조금 줄어들거나 안정화(?)된 것과 달리, 출생과 직접 관련 있는 10~30대의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7~2021년 10대는 4.7명에서 7.1명으로, 20대는 16.4명에서 23.5명으로, 30대는 24.5명에서 27.3명으로 늘었다. 30대 이하 사망 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다. 이들 세대에서는 사망자 10명 중 4명이 자살자다.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10~30대의 주요 자살 충동 원인은 40대 이상과 많이 다르다. 40·50대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10~30대에서는 우울감이 1위다. 10대에서 우울감(34.2%) 못지않은 요인이 성적과 진학 문제(30.8%)다. 20대에서 우울감(36.8%) 다음의 요인은 직장 문제(22.9%)다. 30대에서는 우울감, 경제적 어려움, 직장 문제 순이다.
결국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출생률과 관련 있는 세대의 자살률이 지속해서 늘고 그 주요 원인은 학업과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체제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의 교육 수준이나 경제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낮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맹률은 낮고 대학 진학률 등은 높으며, 한국의 경제 상황은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은 죽어가고, 경쟁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결혼하거나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회복지학자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현재 한국의 불행이 ‘성공’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윤 교수는 1960~1970년대에는 국민소득이 2천달러만 되면 잘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가 될 줄 알았는데,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된 지금도 행복한 사회가 되지 못한 이 역설적 상황을 ‘성공의 덫’이라고 표현한다. 무엇에 성공했는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 산업화의 초기 성공은 ‘선 성장-후 분배’의 순환 속에서 낙수효과를 가져왔지만, 그 기반을 바탕으로 한 1990년대 이후 경제발전은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를 가져왔다. 민주화가 되면 더 평등해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아니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신자유주의와 손잡았고, 복지는 안정적인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역진적인 사회보험 체제로 구축됐다. 다시 말해, 한국의 복지는 비정규직보다 정규직을 더 잘 보호하게 됐다.
공적 복지의 공백은 사적 자산 축적의 욕구로 이어졌다. 바로 ‘부동산’이다. 집이 있으면 노후가 안정되고 없으면 빈곤으로 빠지게 된다. 이렇게 사적 자산의 축적에 올인하는 사회는 계층 간 불평등의 심화를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산업화와 민주화는 대한민국의 성공을 가져왔지만 국민에게는 불안을 안겨줬다. 이것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말한, 사회가 질적으로 더 나빠졌다고 말한 것의 실체다.
이런 세상에서 안정된 시민, 곧 남들이 보기에 좋은 일자리를 가진 시민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황세원 ‘일인(in)연구소’ 대표에 따르면, 청년 중에서 대기업 이상의 정규직이나 전문직에 취업할 확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90% 이상은 그 밖의 일자리를 갖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교육과 일자리를 둘러싼 무한경쟁의 변주가 시작된다.
최성수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공부를 잘 시키는 것에 뛰어난 나라이며, 부모 학력과 가족 배경에 따른 학업성취도 편차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서열화 경쟁이다. 그것도 최상위권의 극히 일부를 지향한 경쟁이 교육 전체를 지나치게 과대표하고 있다. 이 경쟁의 최종 목표는 10%가 안 되는 소수의 좋은 일자리다. 그 엘리트 경쟁에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물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80%가 넘는 대부분의 학생, 여전히 절반이 넘는 비수도권의 대학생에게는 사회가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실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서사는 최상위권 대학과 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에 집중됐고, 대다수 국민의 삶과는 유리돼 있다.
최 교수는 저출생이 교육을 통한 무한경쟁과 연결됐다고 말한다. “잘 사는 삶, 바람직한 삶, 번듯한 삶에 대한 내러티브와 개념이 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안정적이고 괜찮은 소득이 보장되는 직장에 취업해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식이다. 굉장히 엘리트 집단 지향적이다. 표준 자체가 너무 높은 내러티브다. 그 출발이 교육시스템에 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하거나 좋은 대학에 못 가면, 가족을 꾸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건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내러티브와 연결된다. 여건이 안 되는 상태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책임 못 지는 결정을 한다는 식으로 비판받게 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 많은 청년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가족을 번듯하게 꾸려 잘 살고 있는데도 그런 내러티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게 저출생 현상을 고도로 밀어붙이는 압력을 제공하는 문화적 저변으로서 작용한다.”
고도성장기에는 무한경쟁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도 실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는 착시가 있다. 농민의 자식이 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정규직 노동자의 딸이 전문직 종사자가 되는 사회변동이 일어난 이유는, 당시 한국의 계층 이동성이 크고 지금은 낮기 때문이 아니다. 경제 전체가 성장하면서 산업구조가 발전하고 다양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지금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자식들이 나태하고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고도성장이 더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경쟁모델을 지속한다면, 결과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무한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위해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교육으로 따지자면, 최상위권 대학, 인서울 4년제 대학에 집중된 관심과 지원을 수도권 밖의 대학과 전문대학,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넓혀야 한다. 특히 전문대학이 지방에 많고, 재학생 중 저소득층과 여학생이 많다는 사실은, 의과대학 정원을 몇 명으로 할 것인가보다 중요하다. 역진적 사회보장을 누리게 되는 소수의 정규직 일자리가 아니라, 그 밖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른 일자리에서도 괜찮은 임금과 산업안전, 보편적 공적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과 돌봄의 균형, 젠더 불평등 해소 등은 필수적 고려사항이다.
지금 한국은 ‘자살의 나라’다. 그런데 국가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자살을 말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찾아볼 수 없다. 간혹 저출생·고령화나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정책이 제안되기는 한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자살은 단지 의료 분야에 한정된 정신건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에 자살이 있다. 처음에는 개인의 자살이지만 마지막은 국가의 소멸이 될 것이다.
지금도 매년 1만3천 명 정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하루 평균 36명.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이 땅에서 36분마다 1명이 자살한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직 총선이 3주 넘게 남았다. 다음 국회 4년 동안, 자살률을 낮춰서 사회의 소멸을 막아보겠다는 후보와 정당은 과연 없는가?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소멸 직전의 정치: 2024년 4월10일 총선일을 디데이 삼아, 한국 정치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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