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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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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바엔 5천만 전국민이 다 서울 와서 살면 좋겠다

용기 내 던져보는 ‘지역 공항 차별론’, 임계점 넘어선 지역 불균형 해소 위한 역발상
등록 2023-09-08 17:40 수정 2023-09-16 12:36
인천공항공사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제4활주로를 건설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탄소만 얼마일까.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인천공항공사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제4활주로를 건설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탄소만 얼마일까.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대한민국 소멸’이나 ‘희망 소멸’ 같은 용어는 낯설다. 그런데 소멸이 익숙한 경우가 있다. ‘지방 소멸’이다. 사실 이 표현을 쓰기가 망설여진다. 우리는 이미 여기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이 말에 보여주는 태도는 공감·절실함·이해·안타까움이 아니라, 차별·냉소·무기력·무관심·귀찮음 같은 것이다. 이 용어의 쓰임새 자체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소멸에 갖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합리적 시스템

그럼에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 소멸이나 희망 소멸이 많은 부분 지방 소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서울로 와야 ‘기회’를 잡는다. 교육, 연애, 취업, 유행, 정보, 모든 것이 서울에 있다. 그런데 서울 살기가 팍팍하다. 계속 수요가 있으니 주거비·생활비는 떨어질 리 만무하고 경쟁은 더 혹독하다. 겨우 숨이라도 돌릴라치면 결혼이나 아이는 포기해야 한다. 전국 합계출생률이 0.79일 때 서울은 0.59였다. 2023년 2분기 전국 출생률은 0.70이다.

지방에는 좋은 일자리가 없고, 그래서 지방대학들은 경쟁력이 없다. 정부와 언론은 경쟁력 비교를 통한 대학 평가를 말하지만 다 거짓말이다. 입학과 취업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대학을 삽으로 떠서 서울에 갖다놓기만 해보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없는 것은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어서 안 온다. 중앙은 늘 지방에 특성화를 하라고 하지만, 삶의 질은 종합적이다. 공장이나 관광지만 있는 곳에는 사람이 많이 살 수 없다. 귀촌을 말하지만, 학교와 병원이 없는 곳에서 아이와 노인은 살 수 없다. 그 가족도 못 산다. 학교는 규모의 이유로 없어지고, 병원은 의사를 구하지 못한다. 중앙은 말한다. ‘왜 서울과 경쟁하려 하세요? 지방이 잘할 수 있는 걸 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절대 지방에 와서 살지 않는다. 특성화를 통한 균형발전은 근본적으로 사기다. 지속가능성이 없다.

수도권의 경쟁력은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사람과 정보가 모이고 빠르게 유통된다. 전철 때문에 가능하다. 휴전선 앞에서 충남 천안까지, 인천 앞바다에서 강원도 춘천까지 전철이 간다. 그 전철의 근간은 국비로 지어졌다. 처음에는 도시를 따라 전철이 놓이던 것이, 나중에는 전철을 따라 도시가 형성됐다. 이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까지 국비로 지으려 한다. 그러면 또 수도권의 집값이 그 라인을 따라 오를 것이다. 지방에서는 이미 있는 철로에 기차만 놓으려 해도 돈이 없다. 국비 지원은 수요가 없어서 안 된다. 예타(예비타당성조사)라는 통곡의 벽을 넘을 수 없다. 부익부 빈익빈의 합리적 시스템이다.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중앙정부와 전라북도 중 하나를 비난하기 시작했을 때, 사회학자 조형근이 용기 있는 글을 썼다. “갯벌을 지키자는 주장이 서울 중산층의 배부른 낭만처럼 들린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수도권 사는 이익은 다 누리면서, 지방에 대해 남 일 보듯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새만금에 돌을 던지기는 쉽다. 나도 던졌다. 자기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한겨레> 2023년 8월9일치) 필자도 좀더 용기를 내보려 한다.

인천공항도 활주로 확장 중

지방 공항은 정말 동네북이다. 지방의 허욕을 비판할 때 공항처럼 좋은 것이 없다. 진보는 환경 파괴를, 보수는 수익성을 따진다. 모두 낙제점이고 사례도 많다. 이번 잼버리가 끝나자 제일 먼저 두들겨 맞은 것도 전북 새만금 공항이다. 정부는 2024년 예산을 5천억원 삭감했고, 사실상 관련 사업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은 어떤가? 외형을 보면 비슷하다. 새만금이 잼버리를 발판 삼았다면, 가덕도는 엑스포를 명분으로 한다. 새만금이 이미 천혜의 갯벌을 없앴다면, 가덕도는 섬을 없앨 판이다. 새만금에 돌을 던질 수 없다는 사람들도 가덕도에 대한 돌팔매를 재고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2021년, 경기도 고양시갑이 지역구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신공항이 지어지고 이용이 활성화되면 항공부문 탄소배출량은 추가로 1.5배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신공항들이 2050년 탄소중립 비전의 적이 되지 않으려면, 공항에서 고추를 말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신공항을 안 지으면, 탄소배출량은 늘어나지 않을까? 전혀 아니다. 수도권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을 말하자면, 신공항을 안 지어도 항공부문 탄소배출량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중이다. 인천공항은 현재 3본의 활주로를 가지고 있는데 네 번째 활주로를 만들고 있다. 네 번째 활주로 공사가 끝나면 바로 다섯 번째 활주로 공사가 시작된다.

한 언론사의 기사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오는 2024년 10월 완료를 목표로 7년간 4조8000억원을 투자해 제2여객터미널 확장, 제4활주로 건설 등을 골자로 하는 4단계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4단계 건설사업이 완료되면 인천공항의 연간 여객수용능력은 현재 7700만 명에서 1억600만 명으로 증가하게 되며 세계 최초로 국제여객 5000만 명 이상이 수용 가능한 여객터미널을 2개 보유하게 된다.”(<파이낸셜뉴스> 2023년 8월22일)

이런 기사를 읽으면 우리는 탄소배출을 걱정하기는커녕 가슴이 웅장해진다. 가덕도 신공항은 탄소배출의 주범이자 지구의 적이지만 인천공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 중 어디가 탄소배출을 더 많이 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그렇다면 진보적 정치인들과 기후 관련 활동가들이 분기탱천해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농성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는 ‘서울’이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항에 기후위기나 탄소중립 같은 것을 따져서는 안 된다.

새만금 공항 부지에 포함된 수라갯벌. 류우종 기자

새만금 공항 부지에 포함된 수라갯벌. 류우종 기자

첨단기업이 남쪽에 못 오는 이유

그러면 지방은? 쉬운 답변이 있다. ‘시골에는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가? 가덕도 신공항은 아직 미확정인 부산 엑스포랑 별 관련이 없다. 경남 김해공항 자체가 포화된 지 오래다. 생각해보자. 수도권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나가는데, 그곳 국민은 시골 사람이라서 외국을 안 가겠는가. 코로나19 이전까지 김해공항은 해마다 1천억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해, 김포공항(670억원)과 제주공항(730억원)을 뛰어넘는 가성비가 가장 높은 공항이었다. 이용객 수가 예상을 이미 넘어섰고, 국제선 탑승자용 줄이 공항 밖까지 늘어서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간단한 자료조차 찾아볼 생각도 없이 진보·보수 모두 확신에 차서 ‘고추 타령’을 하고 있었다.

탄소중립의 효율성을 위해 ‘시골 사람들’이 인천까지 오는 수고를 좀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공짜가 아니다. 서울 사람들은 전철 타고 인천공항에 가지만, 시골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한 해 동남권 국민 약 500만 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하는데, 이동비용이 연간 7천억원이다. 이 돈 누가 주지 않는다. 서울 사람들은 싸고 편리하게, 시골 사람들은 불편하고 비싸게 가는 것이다. 물론 2등 국민이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사실 김해공항 확장이 아니라 신공항이 필요한 논리는 다른 데 있다. 사람들은 인천공항이 밤에는 노는 줄 알지만 화물기가 끊임없이 뜬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사는 것이다. 김해공항에선 화물기가 뜰 수 없다. 도심에 인접해 이착륙이 금지되는 ‘커퓨타임’(밤 11시~아침 6시)이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여객기 뜨기도 바쁘다. 그래서 비행기로 제품을 실어 날라야 하는 첨단기업은 남쪽에 못 온다. 사람과 금융이 해결된대도 유통할 방법이 없다. 관련 인프라도 당연히 없다. 코로나19 시기에 한번은 비상의료용품을 비행기로 실어 보내려 한 적이 있다. 못 받았다. 화물기가 올 수 없었고, 공항에 보관할 냉장기기가 없었다. 서울에서는 농담 아니냐며 웃었고, 지방에서는 울 수도 없었다.

꼭 가덕도여야 하느냐? 당연히 아니다. 그래서 서울의 환경전문가들이 함께 부지를 찾아봤으면 좋겠다. 낙동강 근처는 철새도래지에 인접해 있다. 내륙은 가덕도보다 더 많은 산지를 깎아야 한다. 지리산이나 울산 인근의 경남 알프스로는 더더욱 갈 수 없다. 지방 사람들이 다들 개발에 환장해서 가덕도를 깎고 싶어 안달이 난 게 아니다. 가덕도를 깎을 바에야 공항이 없으면 어떠냐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괜찮다. 그럼 대신 앞으로 지방에 대해 경쟁력이 없다는 둥, 지방대학이나 첨단기업이 어떻다는 둥, 스스로 노력을 안 한다는 둥 그런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고, 기왕에 지방 사람들이 다 서울로 이주해서 5천만 명이 다 서울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 사회경제적 비용을 서울만 내라고도 안 할 테니까.

고향이 서울인 사람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필자의 주장이 무조건 신공항을 짓자는 말이 아님을 이해할 것이다. 돌이야 던질 수 있지만, 일단 사정은 들어보자는 것이다. 과거 가난할 때 ‘먹고 죽으려도 먹을 쥐약도 없더라’는 말이 있었다. 지방연구원에 근무하는 동안 그 말을 실감할 때가 많았다. 대학들에서 학과가 없어지고 청년들이 계속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지속 가능한 대안이 있는지 많은 사람이 고민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냉소적이었다. 곰곰이 이유를 따져봤다. 여론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무래도 인구였다. 수도권 인구가 50%를 돌파했던 것이다. 수도권 국회의원 지역구는 지난 20여 년 만에 24개가 늘었다. 그만큼 지역은 줄었다. 정치, 경제, 언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많은 사람이 이제 수도권 출생자다. 고향이 서울이다. 지방과 동남아는 둘 다 휴가 때 며칠 가는 곳이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 도시보다 인도네시아 발리나 베트남 다낭의 지리를 더 잘 안다. 대한민국의 지역 불균형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지방 소멸을 막지 않고 대한민국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런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인구증감 그래프만 본다. 하지만 인구이동 그래프는 어떻게 될까? 생산인구 이동은 어떻게 될까? 전체 인구가 줄면 수도권 인구도 줄까? 그 수도권의 인구구성 피라미드는 어떻게 될까? 그 수도권은 과연 지속 가능할까? 그럼 대한민국은?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소멸 직전의 정치: 2024년 4월10일 총선일을 디데이 삼아, 한국 정치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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