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고기·닭고기와 달리, 소고기가 표준어가 된 건 1988년이다. 이전에는 쇠고기만 인정됐다. ‘소의 고기’라는 의미로 ‘쇠고기’가 표준어가 된 게 아닐까. 틀렸다. 그렇다면 염소고기도 염쇠고기여야 한다. 해방 이후 한글학자들이 맞춤법에 대해 논의할 때다. “내가 자랄 때 쇠고기라고 했다”는 경기도 광주 출신 한글학자 이희승의 의견이 반영됐다. 이뿐 아니다. ‘법’이라고 하기엔 면구스러운 구석이 많다. 첫소리에 ㄹ 소리를 내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적용되는 두음법칙도 한자어와 고유어·외래어 적용을 억척스럽게 구분한다. 리본을 발음하듯 리성계라고 해도 될 텐데, 라면은 괜찮은데 성씨 ‘라’(羅)는 왜 꼭 ‘나’라고 해야 편하다는 건지…. 우리말의 ‘정답’쯤으로 여겨지는 표준어는 사실, 특정 시기(20세기 초), 특정 지역(서울 등 수도권)에서 경험·취향·주관이 뚜렷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생활을 할 때 혼선을 줄여주는 인공언어다.
표준어와 달리 지역말은 팔팔하게 살아 있는 입말이다. 누군가가 어머니 입을 보고 따라 배운 소중한 모국어다. 이런 팔도의 다양한 자연스러운 지역말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표준어에 의해 소멸 위기에 내몰리는 건 난센스다. 1960~1980년대 권위주의 시대 땐 지역말을 쓰면 ‘고운 말을 써야 한다’며 선생님께 혼이 났다. 지금도 사전에는 지역말을 ‘~의 잘못’ ‘~의 비표준어’ 등으로 규정한다. 내가 안 쓰고 모른다고 함부로 틀렸다 하는 꼴이다. 그래서 ‘사투리’라는 말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곁들여진다. 이번 표지이야기에선 뜻에 차이가 있다지만, 사투리를 대표주자로 하여 지역어·지역말 등의 표현을 두루 썼다.
최근엔 지역어를 인정한다면서도 표준어를 ‘큰강’, 지역어를 ‘시냇물’로 바라보는 정부·학계의 태도는 여전하다. 이태영 전북대 명예교수는 “편리성을 추구하면서 표준어라는 틀에 우리를 가둬놓다보니 지역민들은 고통스럽다. 모든 게 나름대로 민주화됐지만, 언어만은 민주화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중)같이 지역말로 된 문학작품을 인공지능(AI)은 그 말뜻만이라도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을까. 표준어 42만여 개(이 중 고유어는 7만여 개)를 간신히 담은, 그마저도 상당수는 예문조차 없는 <표준국어대사전>에만 의존해선 기술이 아무리 첨단으로 발전해도 영원히 불가능할 일이다. 지역어도 대등한 ‘국어’다. 이 말이 사라지면 오랫동안 형성된 역사, 문화, 정서도 사라진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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