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13일 문화방송(MBC)이 드라마 <맨도롱 또똣> 방영을 시작하며, 이 제주말의 뜻을 이렇게 소개했다. 항의가 빗발쳤다. 2주 뒤 국립국어원이 나서서 이 뜻풀이가 잘못됐다며 ‘맨도롱 또똣’은 ‘제주 방언으로 매지근 따뜻하다는 의미’(정책브리핑)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데…’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렇게 지역말(방언)을 ‘표준어’(서울말)로 표현할 때 지역말의 쓰임·정서·말맛 등이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제주말 ‘맨도롱 ᄄᆞᄄᆞᆺ’을 ‘매지근 따뜻’의 여러 ‘보조표현’ 중 하나로 바라보는 건 표준어 중심 우리나라 언어 질서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지역어가 사라지는 건 우리말로 된 표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출신지 말을 쓰는 것이 한 사람의 정체성과도 같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이 아득하다. 시나브로 어느 지역에서나 표준어를 쓰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그러면서 지역말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5년마다 조사하는 ‘국민의 언어인식 조사’(20~69살 5천 명 조사)를 보면 자기 스스로 ‘방언을 쓴다’고 주장하는 인구도 2010년 52.5%에서 2020년 43.3%로 크게 줄었다. 특히 제주·강원 등 큰 도시가 없고 자본 기반이 약하며 관광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지역말 소멸’이 거센 것으로 나타났다. 이 10년 새 제주도민 가운데 제주말을 쓴다고 답한 비중도 67.6%에서 46.0%로 급감했다. 강원도에서 강원말을 쓰는 비중(59.2→39.7%)도 크게 줄었다. 강원·제주에선 그 고장 사투리를 듣기가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지역어 사용의 질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8년 제주대 국어상담소가 조사한 ‘제주지역어 생태지수 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20~60대 제주도민 312명에게 농업·문화 관련 176개 어휘의 사용 정도와 이해도를 조사해보니, 조사자의 50%가 여전히 사용한다는 어휘는 36개(20.5%)에 그쳤다.
특히 10대 등 젊은 세대의 자기 지역말 이해는 비경한 수준이다. 2010년 제주대 국어문화원이 중·고교생 400명에게 ‘제주도민의 제주어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것을 보면, 조사한 120개 일상생활 어휘 가운데 90% 이상 이해한 어휘는 아방(아버지), 어멍(어머니), 하르방(할아버지), 할망(할머니) 4개뿐이었다. 10% 미만 이해한 어휘는 45개(37.5%)였다. 난시(냉이)·둑지(어깨)·부루(상추)·어욱(억새) 등 자주 쓰이는 비교적 쉬운 어휘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유네스코는 제주말을 2010년 12월 ‘소멸 직전 언어’로 분류했다.
표준어로 대체할 수 없는 우리말이 사라진다는 점은 지역말 소멸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강릉말 ‘ ᅌퟂ’(요+ㅣ)라는 말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말은 표준어로 ‘누군가의 몫’ 정도로 바꿀 수 있다. 아버지가 늦게까지 돌아오시지 않으면 “아버지 ‘ ᅌퟂ’(요+ㅣ) 떠놨나?”고 하거나, 시제(제사)에 참석한 사람에게 떡 등을 싸서 줄 때 “내 ‘ ᅌퟂ’(요+ㅣ) 좀 받아좌”라고 쓰는 말이다.
방언의 뜻을 잘못 풀이하고, 이것이 사전 등에 등록돼 굳어지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강원 영동지방 방언인 ‘개락’에 대해 ‘우리말샘’(국립국어원 온라인 국어사전)은 “‘홍수’의 강원도 방언”이라 규정한다. 하지만 ‘홍수’에 해당하는 강원 영동지방 방언은 ‘포락’이라고 따로 있다. 개락은 오히려 ‘뭔가가 너무 많아서 넘쳐난다’는 뜻으로 쓰인다. ‘돈이 개락’ ‘쓰레기가 개락’으로 쓰인다. ‘아랫도리만 벗는 것’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인 ‘꾀벗다’는 ‘발가벗다’로 정의됐다. ‘꾀’는 바지를 의미하는 고의(袴衣)가 ‘고이→괴’로 바뀌면서 만들어진 어휘다.
강릉·제주=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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