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거창군의 한 밭에서 계절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2022년 거창군으로 일하러 온 계절노동자 138명은 브로커로부터 임금 착취 피해를 당했다. 거창군청 제공
계절노동자나 기술연수생 등 단기비자를 받고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 뒤엔 늘 ‘브로커’가 있다. 이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은밀하게, 허술한 법망을 피해 활동한다. 브로커는 계절노동자 같은 허술한 제도 안에서 중간착취 구조를 만들었다. 이주노동자를 갈아 끼우는 부품 정도로 여기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그 구조를 더 키웠다. 그런데도 이런 브로커들이 수사받고 처벌까지 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한겨레21은 필리핀 현지에서 ‘미스터 김’이라 불리며 브로커 활동을 했던 ㄱ씨의 판결문을 확보했다. 한국에 들어오는 계절노동자를 모집하고 관리하는 형태의 브로커가 처벌받은 첫 사례다.
ㄱ씨는 2021년 경남 거창군이 필리핀 타를라크주 푸라시와 계절노동자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으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거창군청이 계절노동자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인 월 195만원으로 책정했는데, ㄱ씨는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한 달에 약 82만원(3만5천페소)을 벌게 될 것이라고 월급 규모를 줄여서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누가 월급에 대해 물어보면 7만5천페소 또는 8만페소를 받는다고 말하도록 종용했다.
ㄱ씨는 서류를 허위로 꾸미기도 했다. 거창군에서 처음 작성한 계절노동자 표준근로계약서에 월급을 지우고 서명받은 뒤 수수료를 뗀 월급을 임의로 작성했다. 이어 전직 거창군 공무원인 ㄴ씨가 계절노동자들의 임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필리핀에 있는 ㄱ씨에게 보내는 방법으로 함께 월급을 갈취했다. 한 피해자는 “한국에서는 급여도 받지 못했고 통장도 보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기복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법원 판결엔 월 82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갈취 규모가 더 커서 계절노동자들이 현지에서 받은 돈은 월 45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2025년 10월 1심에서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ㄱ씨는 지금도 여전히 계절노동자 브로커로 활동하고 있다. 고 대표는 “최근엔 전남 완도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ㄱ씨가 처벌받은 사례조차 아주 드문 경우라는 점이다. 그동안 출입국관리법에는 이주노동자 브로커를 처벌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이에 법무부는 2026년 1월23일부터 시행된 개정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및 계절근로 전문기관을 제외하고 누구든지 계절근로자의 선발, 알선 및 채용에 개입하는 것이 금지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뚜렷하다. 계절노동자나 직업전문학교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사기나 기만, 통제, 감금 등을 하는 ‘인신매매’ 범죄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번에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에는 이런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고, 2023년 1월부터 시행된 인신매매방지법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은 있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매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펴내는 미국 국무부는 2025년 9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인신매매 실제 규모에 비해 단속과 처벌이 현저히 부족하고, 법 집행 기관이 추적한 성인 성매매 및 노동착취 사건 수는 보고된 범죄 규모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낮다”며 특히 한국의 ‘계절근로자 제도’를 딱 꼬집어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노동착취가 만연해 있다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노동착취 사건의 기소 및 유죄판결 건수가 적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도 가해자 처벌 규정의 공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2025년 11월 중앙인신매매등피해자권익보호기관으로부터 피해 확인을 받은 계절노동자 9명을 대리하는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의 윤성민 변호사는 같은 해 12월 경찰에 고소장을 냈지만, 추가 조사를 거쳐 2차 고소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9명은 지역은 다르지만 한 브로커로부터 피해를 당했다. “1차 고소는 노동착취 목적의 약취·유인 혐의로 고소했거든요. 다만 약취·유인이라는 혐의가 수사기관에서 잘 적용하지 않는 혐의이다보니 피해자들을 다시 만나 공갈이나 경제범죄 쪽 혐의를 적용해 추가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가해자 처벌은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중요하다. 피해 복구의 일환이기도 하다”며 “계절노동자 브로커 같은 경우 가해자들이 계속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처벌돼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절노동자나 기술연수생 비자를 관리하는 주관부서인 법무부는 브로커들이 활동하는 근본적인 구조에 대한 고민 없이 이주노동자가 오가는 현상에만 집중한다. “강원도 양구군 인신매매 사건(브로커는 떼먹고, 학교는 사기 치고, 국가는 ‘나몰라라’ 기사 참조)이 법무부가 브로커 피해를 어떻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예요. 문제가 생기니 필리핀에서 계절노동자 출국을 막았잖아요. 그러니까 바로 캄보디아 쪽으로 넘겨요.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기 막혔으니 저기 열어주자’ 이 정도 생각이에요.” 고 대표가 말했다.
법무부가 고용노동부에 더 나은 제도가 있는데도 자신들이 운용하는 제도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다. 노동부가 운용하는 고용허가제에서는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전담기관을 맡아 이주노동자 선발과 알선, 채용 등을 직접 관리한다. 하지만 법무부는 계절노동자 등의 관리를 민간기관에 맡길 예정이다. 윤성민 변호사는 “(민간기관에 맡기는 구조라면) 브로커나 브로커들이 모인 단체에도 일을 맡길 수 있기 때문에 브로커들이 좋은 점수를 받아 계절노동자 등의 관리를 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애초에 브로커가 개입할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용허가제의 경우 산업인력공단이 (고용허가제로 노동자를 보내는) 현지에 나가서 모든 송출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거든요. 여길 통해 계절노동자도 들어오면 돼요. 아니면 고용허가제 안에서도 농업 분야 쿼터(할당량)를 늘려도 되죠. 그런데 고용허가제는 노동부 관할이니, 법무부는 그냥 새로운 비자를 갖고 와서 늘리고 싶은 거예요.” 고 대표 역시 “농어업 특성상 계절적 요인이 강해도 고용허가제의 틀 안에서 조정할 수 있는데 법무부가 손을 떼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 대통령 “다주택자 눈물? 청년 피눈물은 안 보이냐”

구치소 김건희 “공책에 편지·영치금 주신 분들 이름 적으며…”

“너 나와” “나왔다, 어쩔래”…국힘, 한동훈 제명 내홍 속 ‘막장 의총’

‘파면’ 김현태 “계엄은 합법, 문형배·민중기는 내란조작범” 궤변

트럼프, 인도 관세 18%로 대폭 인하…“러시아 말고 미국서 원유 구매 합의”

BTS 광화문광장 ‘아리랑’ 공연, 넷플릭스 전 세계로 생중계 한다
![[단독] ‘신라 속국화’의 특급 단서일까…경주 돌덩이에 새겨진 고구려 글씨체 [단독] ‘신라 속국화’의 특급 단서일까…경주 돌덩이에 새겨진 고구려 글씨체](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203/53_17700700489173_20260202504028.jpg)
[단독] ‘신라 속국화’의 특급 단서일까…경주 돌덩이에 새겨진 고구려 글씨체

이해찬 조문 끝내 안 한 이낙연…6년 전엔 “대표님 뒤를 졸졸”

오늘 귀국 전한길 “체포 못 하게…비행기 내리자마자 유튜브 라방”

1년 만에 31%p 날아간 ‘트럼프 텃밭’…텍사스 상원 민주 손에








![[단독] SH “세운4구역, 설계공모 필요” 라더니, 공모 없이 희림에 설계 줘](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6/0117/53_17685924805298_2026011550414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