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25일 오후 경남 김해시에 있는 영진직업전문학교 앞에 도착한 외국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해(경남)=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5억동(베트남 화폐 단위). 우리돈으로 약 2800만원인 이 돈은 베트남에서 대학 졸업 신입사원이 중견기업에 입사해 생활비를 한 푼도 안 쓰고 꼬박 4~5년을 모아야 손에 쥘 수 있는 거액이다. 한국 중견기업 신입사원이 같은 기간 약 1억5천만원을 모으는 것과 같다. 응우옌바오안(27·가명)의 보호자는 아들에게 이 돈을 건넸다. 한국에서 용접 기술을 배워 취업하거나 베트남에서 창업하고 싶다는 아들의 꿈을 밀어주기 위해서다. 팜민칸(25·가명)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한국에서 일하고 싶었다.
응우옌과 팜은 ‘빈민(Binh Minh·‘새벽’이란 뜻) 국제유학센터’(유학원)를 찾아갔다. 베트남 청년들이 외국에 가서 공부하거나 일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기관이다. 유학원은 두 사람에게 ‘D-4-6 비자를 받아 한국에 있는 직업전문학교에 가서 1년간 교육받으면 E-7 비자를 취득해 학교에서 소개해주는 회사에 취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D-4-6(우수 사설교육기관 외국인 연수) 비자는 한국에서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비자다. E-7(특정활동) 비자는 한국 정부가 외국인력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정한 분야(관리자, 전문가, 사무·서비스·판매·농림어업 종사자 등 93개 직종)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다.
응우옌과 팜은 그렇게 거금을 유학원에 내고 2023년 한국 땅을 밟았다. 같은 꿈을 품고 은행 대출 등을 통해 유학비를 마련해 2023~2024년 차례로 입국한 베트남 청년 유학생만 17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장밋빛 미래가 아니었다. ‘인신매매’의 굴레였다.
피해 유학생들은 유학비를 낼 때부터 ‘속박’을 받았다. 그 안엔 ‘이탈보증금’이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안 들으면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었다. 응우옌은 1억2천만동(약 660만원), 팜은 5천만동(약 270만원)을 냈다. 이런 족쇄를 차고 피해 유학생들이 간 곳은 경남 김해에 있는 영진직업전문학교(영진학교)였다. ‘국제교류처장’ 김아무개씨가 유학생들을 인솔했다. 월~목요일에는 용접 교육을, 금요일에는 한국어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자 학교가 한국어 수업을 뚝 끊었다. “왜 안 하는지 아무 설명도 없었어요.”(팜)
용접 교육도 부실했다. “강의실에서 영상을 틀어주고, 옆에서 선생님이 한국어로 설명했어요.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선생님이 강의한 것도 며칠뿐이었어요. 나중엔 우리끼리 자율학습을 해야 했어요. 별다른 교육 없이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어요.”(응우옌) 기술도, 한국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이건 ‘사기’였다.

영진직업전문학교 별관 내부 교실의 모습. 김해(경남)=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숙사도 엉망이었다. 벽면에 곰팡이가 핀 좁은 방 하나(원룸)에 서너 명이 몸을 구겨 넣어야 했다. 바퀴벌레도 많았다. “학교에서 얇은 매트리스를 하나씩 줬는데, 방바닥에 매트리스 깔고 누우면 그 사이로 사람이 지나갈 수 없었어요.” 학비와 기숙사비, 실습비, 교재비 등으로 거금을 낸 응우옌과 팜이 겪은 피해다.
학교는 ‘통제’를 일삼았다. 수단은 다양했다. 먼저 ‘여권 압수’였다. 학교는 외국인등록증(입국일로부터 90일 이상 체류하려는 외국인 대상) 발급과 체류기간 연장 신청을 이유로 유학생들 여권을 가져갔다. 유학생들 입국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때 이뤄진 1차 체류기간 연장은 순조로웠다. 문제는 2차 연장 때 나타났다. 다음은 2023년 6월에 입국한 응우옌의 말이다.
“2차 연장을 신청한다고 학교 선생님이 2024년 4월 여권을 가져갔어요. 그런데 (체류기간 만료일인) 6월이 다 됐는데도 연장이 안 된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선생님이 7월이 돼서야 출입국사무소(부산출입국·외국인청 김해출장소)에 갔대요. 결국 전 미등록 체류자가 됐고, 학교는 그해 12월이 돼서야 여권을 돌려줬어요.”
그러면서 학교는 돈을 요구했다. 2023년 10월 한국에 온 다른 피해자인 레반끄엉(31·가명)은 “학교에서 (2차) 비자 연장 신청에 필요하다며 학비와 기숙사비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 독촉했다”며 “결국 520만원을 추가 납부했는데 2024년 10월 이후로 체류 연장은 되지 않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을 때마다 ‘걱정 말고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역시 ‘사기’였다.
피해 유학생 중 일부는 ‘강제노동’도 해야 했다. 응우옌을 포함해 2023년 6월 영진학교에 입학한 유학생 9명은 그해 9월 현장실습 명목으로 전남 영암군에 있는 제조업체에서 3~4주를 일했다. 학교에서 200㎞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회사들이다. 체류기간 6개월이 지나야 현장실습이 가능하고, 현장실습 장소와 연수기관(여기에서는 영진학교)의 거리는 편도 1시간 이내 또는 편도 50㎞ 이내에 있는 곳으로 편성한다는 법무부 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유학생들은 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 용접 기술을 다 배우지 못했다. 지금 가서 일하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자 국제교류처장 김씨는 유학생들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교육과정은 김해직업전문학교(영진학교) 이사장과 국제교류처장인 내가 결정한다”며 “현장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싶지 않은 경우 자진출국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해”라고 답했다. ‘협박’이었다.
응우옌은 연마기(금속 등의 표면을 깎아내거나 절단 또는 광택을 낼 때 쓰는 기계)로 철판에 있는 녹을 제거하는 일을 했다. 업체 직원이 옆에서 계속 욕하며 윽박질렀다. 사전 안전 교육마저 없었던 강압적인 노동환경. 응우옌은 결국 손을 다치고 말았다. 병원에서 여섯 바늘을 꿰맸다. 응우옌이 고개를 저었다.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었어요.”

한국에 입국해 경남 김해시에 있는 영진직업전문학교에서 용접 교육 등을 받았던 베트남 연수생들이 2026년 1월25일 오후 영진직업전문학교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김해(경남)=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피해 유학생 19명 중 2명은 이미 출입국 단속으로 강제 추방됐다. 팜을 비롯한 다른 유학생 16명은 변호인단(공익법단체 두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지부,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 법무법인 원곡)과 민주노총 부산·경남본부 덕에 중앙인신매매등피해자권익보호기관(보호기관)으로부터 ‘인신매매’ 피해를 인정받고서야 G-1(기타)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각종 소송을 진행 중인 사람에게 인정되는 체류 자격이다. 피해 유학생들은 현재 영진학교를 상대로 형사고소 절차와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중 일부는 D-4-1(한국어 연수) 비자를 받아 대학에 있는 한국어교육원을 다니고 있거나 곧 입학할 예정이다. 변호인단 등에 의해 피해가 나중에 확인된 응우옌도 보호기관에 인신매매 피해자 확인서 발급을 요청할 예정이다.
영진학교는 지금까지 피해 유학생들에게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2차 체류기간 연장에 필요하다며 가져간 학비와 기숙사비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행정기관의 시정명령도 이행하지 않았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자료를 보면, 고용노동부 양산고용노동지청(양산지청)은 2025년 10월1일 영진학교에 10월28일까지 피해 유학생들에게 훈련비를 반환하라는 시정명령과 과태료 처분(50만원)을 했다. 훈련정지 1개월 처분도 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체류기간을 보장한다’는 취지의 과대광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영진학교는 모든 행정처분에 불복하고 양산지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한겨레21은 영진학교의 입장을 묻는 공문을 2026년 1월26일 발송했고 1월28일 전화를 걸어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영진학교로부터 뚜렷한 해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전화를 받은 영진학교 관계자는 “학교가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만 말했다.
응우옌과 팜처럼 보호기관으로부터 인신매매 피해를 인정받은 이주노동자는 총 57명(2023∼2025년)이다. 인신매매 피해라도 인정받아야 체류 자격을 얻거나 피해 보상 등을 받을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런 식의 인신매매 피해 인정이 가장 빈번한 분야가 E-8(계절근로) 비자다. 계절노동자 제도는 농번기 인력난 해소를 위해 2015년 시범사업을 거쳐 2017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그 수가 2017년 1085명에서 2025년 9만5천 명으로 급증했다. 취재 결과 2023년 보호기관 설립 이래 인신매매 피해자 확인서를 받은 계절노동자는 57명 중 최소 23명으로 파악됐다.
앞서 인신매매 피해를 입은 직업전문학교 유학생들과 계절노동자들은 모두 법무부가 만든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법무부가 만든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에는 사각지대가 많아 브로커가 쉽게 개입할 수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직접 관리·감독하는 ‘고용허가제’와 달리, 직업전문학교 유학생이나 계절노동자는 법무부가 따로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계절노동자는 지방정부가 직접 동남아시아 등 국가와 업무협약을 맺는데, 지방정부 사정상 통역 등 전담인력을 두기는 어렵다. 직업전문학교 유학생 제도 역시 관리 인력은 없다. 브로커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이들을 한국에 오게 하는 과정에서 돈을 뜯어내고 사기나 기만, 통제 등의 ‘인신매매’ 행위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는 마땅치 않다.
2026년 1월25일 저녁 8시,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 화면에 두 명의 필리핀 노동자가 등장했다. 파나혼(가명)과 파가사(가명)다. 이들은 2023~2024년 강원도 양구군의 한 농가에서 계절노동자로 일하면서 중간업체(브로커)에 ‘임금 갈취’를 당했다. 2024년에만 각각 211만원의 수수료가 월급에서 과도하게 공제돼 브로커 주머니로 들어갔다. 파나혼과 함께 양구군에서 계절노동자로 일했던 이는 970여 명. 이 중 파나혼을 포함한 91명이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냈다. 91명이 제기한 피해액만 약 2억원이어서 970여 명 전체의 피해액은 약 1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화상 인터뷰는 한국 경찰에 이들의 피해에 관한 증언을 제출하기 위해 진행됐다.

2023~2024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계절노동자로 일했던 파나혼(가명·왼쪽)과 파가사(가명)가 2026년 1월25일 줌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은 브로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을 갈취당한 인신매매 피해자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급여 공제 방식을 통한 수수료 갈취는 전형적인 인신매매 수단이다. 법무부 지침은 한국 지방정부와 외국 지방정부가 계절노동자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모집·선정·송출 등 업무에 단체가 개입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대가를 주고받는 것도 중대 위반 사항이다. 그런데도 파나혼과 파가사는 필리핀 현지에서 ㄱ업체(브로커)를 통해 모집됐다. ㄱ업체가 이들과 맺은 계약을 보면 매년 기본 수수료 6만페소(약 144만원)와 5개월을 넘겨 체류했을 때 매달 1만페소(약 24만원)를 내게 돼 있다. 계절노동자들은 통상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한국에 입국하기 전 비자 발급부터 항공료, 건강검진 등에 들어간 비용과 매달 내는 수수료와 숙박비 등을 제하면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월 100만원 남짓이다.
한겨레21은 파나혼 등이 필리핀에서 한국에 넘어올 때까지 작성한 네 가지 계약서를 입수했다. 첫 계약은 필리핀에서 진행됐다. 에이전트와 맺는 ‘합의 각서’다. 여기엔 계절노동자로 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수수료(브로커 비용)와 한국에서의 생활 전반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둘째로 ‘이탈보증’ 계약서다. 필리핀 지방정부와 계약한 문서로, 5개월 계약을 마친 뒤 귀국하지 않으면 지정한 보증인과 50만페소(약 1200만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계약이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공무원이 농장주들에게 계절노동자의 월급을 브로커에게 직접 송금하라고 공지한 내용.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해야 한다. 고기복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 제공
셋째로 한국에 온 직후에 받는 ‘동의서’가 있다. 앞선 ‘합의 각서’에 명시된 수수료 등을 양구군에서 일하는 동안 수금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수금한다는 내용은 없다. 의무를 이행할 대상도 ‘회사’라고만 명시돼 있다. 양구군 계절노동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이란주 이주민인권 활동가는 “노동자들에게 서명을 요구한 건 ㄱ업체인데 계약서에 누가 수령하느냐가 없다”며 “이들(브로커)의 서류가 다 이렇다. 나중에 책임질까봐 누가 돈을 받는지 서류에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농장주와 맺는 근로계약서에도 임금 공제 등에 관한 내용은 없다.
이렇게 임금을 떼여도 군소리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배경은 무엇일까. 계절노동자는 E-8 비자를 신청한 순간부터 빚을 지게 된다. 필리핀에서 버는 돈으로는 갚기 어렵다. 피해자 91명 중 한 사람인 레이에스(가명)가 한국에 오기 위해 들인 비용의 내용을 보면, 연 수수료 144만원과 연장 수수료 72만원을 비롯해 건강검진 14만원, 여행보험 12만원, 비자 발급비 10만원, 왕복 항공료 약 84만원 등 336만원 정도다. 필리핀 한 달 평균 급여가 3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계절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쏟아붓는 비용만 1년치 월급에 맞먹는다.

강원도 양구군에서 임금 갈취 피해를 당한 레이에스(가명)의 계절노동자 관련 지급 비용. 7번과 16번이 전체 수수료, 9번과 17번은 연장 체류에 대한 수수료다. 레이에스는 2년 동안 수수료로만 약 400만원을 뜯겼다. 법무법인 원곡 제공
계절노동자를 신청한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농업 교육이나 건강검진 등을 받는다. 버는 돈은 없고 쓰기만 하는데, 실제 출국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보통은 바로 안 보내요. 말은 보내줄 것처럼 하지만 5~6개월이 지나야 나가요. 브로커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계절노동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고기복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가 말했다.
파가사는 “(계약서 등에 관해) 설명을 요구하면 그냥 빨리 서명하라고 했고, 서명을 안 하면 공무원들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서명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 “필리핀 생활이 너무 어려웠어요. 계약서도 의심스럽지만 그냥 눈감고 서명했어요. 불평하면 한국 못 가니까…. 한국에서 일하는 게 유일하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어요.” 파나혼의 말이다.
파나혼을 포함한 피해자 91명은 수수료에 관해서만 노동부에 진정했다. 우리 현행법상 명확하게 문제 삼을 수 있는 지점이 급여 일부를 공제해 수수료를 지급한 부분이어서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직접 지급해야 한다. 노동부 강원고용노동지청은 2026년 1월 이 사건에 대해 91명에 대한 임금체불을 인정하고 고용주들에게 공제한 수수료를 다시 지급하라고 시정을 명령했다. 그러나 농장주들도 피해를 호소했다. ㄱ업체의 안내에 따라 계절노동자의 동의를 받고 수수료를 대신 납부해줬다고 주장했다. 실제 농장주 입장에선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했다. 다만 그 돈 일부가 브로커 쪽으로 흘러갔을 뿐이다.
그런데도 계절노동자를 유치한 당사자인 양구군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한겨레21의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양구군의회에선 농업안정경영기금 관련 조례를 개정해 농가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양구군수가 이 조례안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양구군 관계자는 농장주 지원과 관련해 “우리도 여러 방면으로 고민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기복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가 경기도 용인센터에 찾아온 계절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지원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주로 인신매매 피해를 당한 계절노동자들이 중앙인신매매등피해자권익보호기관으로부터 피해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고기복 제공
계절노동자 인신매매 피해가 처음 드러난 것은 2024년 초. 고기복 대표가 전남 해남군의 계절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였다. 이를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에 나섰고, 그해 10월 인권위는 국내 계절노동자들이 노동착취를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 피해를 당했다고 처음 인정했다. 고 대표는 “계절노동자들이 입는 피해가 대부분 비슷하다”고 말한다. 처음에 빚을 지게 하고 수수료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통제하고, 숙소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고립’시킨다. 고용주나 브로커와 문제가 생겨 숙소를 이탈하기라도 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현상수배를 걸고 가족들을 ‘협박’한다.
강원도 영월군, 경기도 안성 등에서도 피해 사례가 드러났다. “안성의 경우 숙소 밖으로 이동을 통제했는데, 한 계절노동자가 이를 문제 삼으면서 갈등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숙소 밖으로 나갔는데 (브로커 쪽에서) 현상수배를 걸고 하지도 않은 마약을 했다며 압박했죠.” 위력으로 인신매매한 사례다. 영월에선 담당 공무원이 농장주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서 브로커의 통장을 올려놓고 월급을 브로커 계좌로 보내라고 공지한 사실도 파악됐다.
“한국에 들어오는 계절노동자들이 맺는 계약 중에 인신매매 요소가 없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지금 보호기관으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은 계절노동자는 전부 필리핀 국적이거든요. 그럼 다른 나라는 관리를 잘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아요. 라오스나 캄보디아도 다 에이전시가 있고 심지어는 수수료를 더 떼가요. 그런데도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 건 더 확실하게 (브로커가) 입막음을 한다는 거죠.” 고 대표의 말이다.
필리핀에선 한국으로 계절노동자를 보내는 것을 일종의 성과로 본다. 그래서 웬만하면 문제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양구군 사건은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면서 필리핀 이주노동부가 직접 송출 금지를 명령했다. 그 여파는 이미 한국에서 인신매매 피해를 당한 파가혼 등에게 향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필리핀에 돌아가서 문제 삼다보니 계절노동자로 일하고 싶은 다른 분들이 기회를 잃었다며 (파가혼 등을) 비판하고 있다”며 “억울하면 한국에서 다퉈야지 왜 돌아가서 그러느냐는 분도 있는데, 이분들이 돌아간 것도 이탈보증금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국으로 돌아간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건 양구군 사건이 처음이었다.
파가혼과 파가사는 다시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보호기관에서 인신매매 피해자 확인서를 받으면 G-1 비자를 받고 일하면서 임금체불 등도 다퉈볼 수 있지만, 그러려면 우선 한국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법적 대응을 위해 입국 허가를 요청하자 법무부는 ‘농장 주인의 추천을 받아오라’고 답했다. 그사이 필리핀에서는 금지했던 계절노동자 재고용을 추진하면서 파가혼 등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이란주 활동가는 “(진정을 제기한) 91명 중 일부를 빼고 재고용하려는 것 같다”며 “이 피해자들이 블랙리스트(배제 명단)화되는 상황도 조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필리핀에서 많은 사람이 비난하고 원망해요. 우리 때문에 (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쁜 사람이 됐어요. 그런데 우리도 (한국에) 가고 싶어요.”(파가혼) 한국에서 착취당한 피해자들은 고국에서 죄인이 되고 말았다.
김해(경남)=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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