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제주의 ‘사투리 말하기 대회’를 시작으로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고향말 경연’(명칭은 다양하다)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광주시립민속박물관과 지역 월간 <전라도닷컴>이 공동주최한 ‘2016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의 한 장면. 최성욱 <전라도닷컴> 기자 제공
☞☞[사투리 합시다①]‘“맨도롱 또똣이 표준어로 뭐냐?”는 잘못된 질문’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야~ 거게 쫄로리 세봐.” 1월23일 강릉에서 만난 김혜경 강릉사투리보존회 사무국장이 가장 좋아하는 강릉말이라며 소개했다. “표준어로 ‘나란히 서봐’ ‘줄 맞춰 서봐’ 정도의 뜻인데, 강릉에선 동창끼리 나들이를 갔을 때, 혹은 운동회에서 아이들한테 쓰는 말이에요. 방언학자들이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 추적해보니, 논에 모를 심을 때 줄을 늘어뜨리는 모습에서 왔다고 밝혀냈어요. 절대로 표준어로 하면 이 맛이 안 납니다. 정겹고 소박하고 아주 귀엽기까지 한 그런 맛이 사라져버리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강릉말로 ‘누룽지’를 ‘소디끼’ ‘소데끼’라고 하는데 그게 솥에 이끼가 끼었다고 본 거거든요. 또 불쏘시개로 쓰이는 ‘묵은 솔잎’을 여기선 ‘갈비’라고 합니다. ‘솔갈피’가 ‘소갈비’가 되고, ‘소’자가 빠지면서 갈비만 남은 말입니다. 예쁜 말들 아닌가요?”
‘낭은 돌으지, 돌은 낭으지’는 김순자 제주학연구소 센터장이 좋아하는 제주말이다. ‘나무는 돌을 의지하고, 돌은 나무를 의지한다’는 뜻의 제주 속담이다. 돌밭 위에 나무가 자라는 제주 곶자왈 숲의 환경이 반영됐다. 산과 나무도 의지하면서 사는데 아득바득 싸우면서 살지 말자는 말로, 제주도의 공동체·화목·배려를 강조할 때 쓰는 말이다. 제주 환경과 문화·정서를 이해해야 비로소 의미가 완전히 와닿는다.
지역말은 오랫동안 축적된 정서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호랭이 물어가네’를 ‘호랑이 물어가네’로 바꾸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너 왜 이제 오냐, 뜬금없다’ 등의 뜻이다. ‘호랭이’가 절대로 ‘‘호랑이’의 방언’(우리말샘 정의)일 수 없는 이유다.
이태영 전북대 명예교수(국문학)는 “ 이런 말들을 일일이 표준어로 수용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왜 최명희, 채만식, 조정래, 백석 등 문인들이 방언에 집착했을까요? 표준어만으로는 그런 정서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백석의 시 ‘고방’의 앞부분이다. 이 시의 ‘집난이’ 같은 평안도 말을 ‘시집간 딸’이라고 바꾸면 어떨까. 이 시의 화자가 전하려 한 정서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시인 박용철(1904~1938)은 <조광> 1936년 4월호에 백석이 왜 자기 시에서 평안도 말을 고집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파고들었다. “수정 없는 방언에 의하야 표출된 향토생활의 시편들은 탁마를 경(經)한 보옥류의 예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슬이 선 돌, 생명의 본원과 근접해 있는 예술인 것이다.”
이태영 명예교수가 설명한다. “표준어라는 것은 공통으로 쓸 언어를 정한 것일 뿐입니다. 표준어로 팔도 전체 국민의 정서적 욕구를 대체할 순 없는 일이지요.”

2003년 우도 비양동. ‘덕물질’ 하는 해녀들. 덕물질은 해녀들이 육지와 맞닿은 갯바위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물질을 일컫는 제주말. <한겨레> 자료사진
지역말은 우리말의 뿌리를 기억하는 귀한 유물이기도 하다. 1103년 중국 송나라 사신이 고려의 풍속과 말에 대해 쓴 <계림유사>를 보면 과거 우리말을 유추해볼 수 있다. 여기에 전복을 고려 사람들은 ‘빗’이라고 말한다(복왈필, 鰒曰必)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 ‘빗’이 현재도 제주말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암컷 전복은 ‘암핏’, 수컷 전복은 ‘수핏’, 새끼 전복은 ‘빗재기’라고 한다. 또 전복을 따는 도구는 ‘빗창’, 전복을 따는 사람은 ‘비바리’라고 부른다.
13세기 몽골어에서 온 말도 꽤 된다. 검색을 뜻하는 ‘가라’나 집을 세는 단위인 ‘거리’, 굴레를 뜻하는 ‘녹대’ 등이 중세 몽골어의 영향을 받은 어휘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해협을 넘어 들어온 옛말들이 지금까지도 제주말에 살아남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김순자 센터장)
새우를 뜻하는 지역말인 새뱅이(전북), 새방이(충청)는 새우의 고어인 ‘새 ᄫᅵ’에서 ‘ㅸ’(순경음 비읍)의 두 갈래 변화상을 보여준다. 표준어 쪽인 ‘우’와 달리 ‘ㅂ’ 쪽으로 변화한 역사가 이 말에 간직됐다. 경상도 쪽에서 ‘고마워’를 ‘고마버’라고 발음하는 것도 ‘ㅸ’이 우리말 뿌리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는 증거다. 그 변화의 경로는 달랐지만 모두 우리 모국어다.
멀리 떨어진 지역이지만, 과거 스며든 말들이 고립돼 같은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도 더러 확인된다. ‘콩장’이 대표적이다. 제주에선 ‘콩으로 만든 된장’을 보리밥을 띄워서 만든 ‘보리장’과 구분해 ‘콩장’이라 하는데, 이 말은 북한의 <조선어대사전>에도 정확히 같은 뜻으로 등장한다. 상추의 제주말인 ‘부루’는 사실 16세기 이전까지 널리 쓰였던 옛말이다. 이 말이 경상도와 충청도는 물론 함경도에서도 확인된다.
강릉·제주=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투리 합시다③]‘홑바지 입은 소라, 솥 안에 낀 이끼’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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