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에 있는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2023년 4월20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를 건너 등교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삶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기가 학령기(6~12살)다. 이 시기 아동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알아가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관점을 확립해간다. 또 나를 둘러싼 세상은 어떤 곳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인식한다. 변화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는 능력인 마음건강을 증진할 골든타임이기도 하다. 교육부가 2026년 3월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전 학년의 교육과정에 확대 적용하는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은 세계를 인식하고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아동에게 과연 좋은 붓이 될 수 있을까. 초등교사 9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_편집자
부산 남부민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김숙녀 교사는 2025년 3월 학기 초에 고민에 잠긴 일을 털어놨다.
“수업하다가 (학생들에게) ‘오늘 기분 어때?’ 하고 물으니까 ‘그냥요’ ‘그냥 그런데요’ 이렇게 얘기하고, 수업하고 나서 ‘오늘 느낀 소감이 어떻노?’ 이렇게 물으면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2학년 학급) 아이들 9명이 다 똑같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요즘 아이들은 감정을 표현할 때 매우 제한적이고 축약된 표현에 의존한다. 자기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해소하는 것도 어려워한다.(책 ‘교사를 위한 사회정서학습의 모든 것’, 김현수 등 지음, 우리학교 펴냄, 2025) 김숙녀 교사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감정 표현을 알려주고 싶었다.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힘은 학습 참여와 관계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2학기 동안 등장인물의 표정과 행동이 드러나는 그림책, 감정 단어 카드, 점토(클레이) 등을 활용한 놀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도록 도왔다. 그 결과 학생들은 기쁨·서운함·속상함·미안함·고마움 등의 감정을 언어화했고, 말뿐만 아니라 글·그림·몸짓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김 교사는 2026년 2월7일 유니세프(UNICEF) 한국위원회가 연 ‘사회정서학습 실천 콘퍼런스’에서 자신이 진행한 수업 사례를 발표하며 한 학생이 제출한 설문지 답변 내용을 공개했다. “(아이들에게 설문지를 주고) ‘2학년 들어와서 잘하게 된 게 뭐야?’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한 학생이) ‘기분을 잘 표현할 수 있어요’ ‘공부를 잘할 수 있어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게 됐어요’ 이렇게 적었어요.”
이어 친구가 울면 그냥 가만히 있었다는 학생은 ‘왜 울었는지 물어보고 안아줬다’고 했고, 싸운 친구랑 다시 안 논다던 학생은 ‘이제는 친구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사회정서교육)도 이와 유사하다. 교육부는 사회정서교육을 학생들의 긍정적인 성장과 정신건강 증진을 목표로 개인의 생각·감정·행동을 인지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공동체 내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조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지식·태도·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정의한다. 요약하면 개인이 ‘나’를 알고 타인과 어울려 사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다.
교육부가 2026년 1~2월 실시한 교원 대상 사회정서교육 연수에 참여한 박은선(36·가명) 교사는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마음을 돌보고,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차원의 교육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자기 인식과 자기 조절, 관계 맺기 기술을 알리는 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사회정서교육은 1990년대 미국 비영리단체 카셀(CASEL)이 고안한 ‘사회정서학습’(SEL·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을 기반으로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카셀은 사회정서학습을 오늘날 교육부가 제시한 사회정서교육 개념과 유사하게 정의했다.
그러나 2020년 사회정서학습 목표를 교육 형평성 제고로 설정하면서 기존 정의를 바꿨다. ‘학교·가정·공동체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아동과 성인이 함께 성장하는 학교를 만들며, 안전하고 건강하며 정의로운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개념을 확장했다. 이는 그림1(아래 이미지 참조)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범교과 학습 프로그램을 그림2처럼 하나의 목표 아래 조정해서 실시하는 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의 사회정서교육은 그림1을 구성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에 머물러 있다.

디자인주 이다은 팀장
앞서 말한 ‘교육 형평성’이란 인종, 성별(젠더), 성적지향, 민족, 언어, 장애, 가족 배경 등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 자원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카셀은 사회정서학습을 더는 단순한 감정 관리나 대인 관계 기술 향상 교육으로 보지 않는다.
교육 격차 완화와 지속가능발전교육을 강조하는 유네스코(UNESCO)도 2024년 발간한 정책 가이드 ‘교육체계 내 사회정서학습의 주류화’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회’(Social)라는 용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정서학습 프로그램이 인종차별, 식민주의, 젠더 불평등, 젠더 기반 폭력처럼 사회·문화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있다. 교육 제공자들이 단순히 아이들이 개인의 내적 역량과 대인 관계 역량을 발휘하는 것만으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 사회정서학습이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좁은 가정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초등학교 현장은 학생들이 자기 감정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가득하다.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비난, 조롱이 대표적이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교실 풍경은 어른들이 만든 사회의 거울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책 ‘젠더 수업 리포트’, 이유진 지음, 오월의봄 펴냄, 2023)
먼저 여성혐오다. 여기엔 여성을 외모로 평가해 서열화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타인을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나 물건으로만 취급)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남학생들이 여학생 가슴을 ‘체리’라고 불러요. 본인들만의 은어를 만들죠. 어느 날 남학생끼리 서로 몸을 만지며 장난치다가 한 학생이 자기 젖꼭지를 만지지 말라면서 ‘네 여자친구 거나 만져’라고 교실에서 크게 말한 일이 있었어요. 또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몸이나 얼굴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고, 그들 사이에서 ‘최하등급’으로 분류된 여학생 이름을 모욕적인 말로 쓰던 단톡방(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 근래에 적발됐죠.” 최지민(28·가명) 교사의 말이다.
전수민(가명) 교사는 “2023년에 여러 학급 남학생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서 자신의 보호자를 상대로 패드립(패륜적 언동)을 하고, 치마를 입고 온 여성 선생님을 성적 대상화를 하며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쁘지 않냐’는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말과 행동도 발견된다. 이런 언행은 대체로 교사나 또래 여학생을 당황하게 하려는 목적을 띤다. 다음은 박은선 교사가 전한 이야기다. “영어 수업에 ‘식스’(six·숫자 6) 또는 ‘삭스’(socks·양말)를 말할 때, 음악 시간에 ‘색소폰’을 말할 때 애들이 엄청 킥킥대요. 그리고 4년 전쯤 일인데요. 짝꿍 얼굴을 그리는 수업이었는데 한 여학생이 ‘선생님, 얘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해요’라고 말했어요. 들어보니 상대 남학생이 계속 ‘아헤가오’(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얼굴 표현) 표정을 지어달라고 했더라고요.”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말을 ‘게이 ××’와 같이 멸칭으로 쓰고, ‘짱깨’ 등 중국을 비롯해 특정 나라 출신 외국인을 비하하는 혐오표현도 여전하다. ‘느금마’ ‘니애미’ ‘○○맘 즐’ 같은 패륜적 언동도 일상이 됐다. 정혜진(34·가명) 교사는 “수업 중에 빙고 같은 게임을 할 때가 있는데 게임에서 져서 감정이 격앙될 때 몇몇 학생이 ‘느금마’ ‘애미 뒤진 ××’ 이런 식의 말을 쓴다”며 “이런 풍경을 매년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정 정치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표현도 초등학생 사이에서 쓰이고 있다. ‘운지’ ‘노알라’와 같이 과거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할 목적으로 사용한 말뿐만 아니라 ‘문재앙’ ‘찢재명’ ‘석열이형’ ‘네 얼굴 김정은’ ‘너 2찍이냐’ 같은 말도 통용되고 있다.
경기도 호연초등학교의 나경훈 교사는 초등 교실에서 ‘정치혐오’ 표현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2025년 경기도 지역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전교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사례연구를 해서 ‘초등교실 속 정치혐오 표현 사용에 대한 사례연구: 침묵의 나선 효과를 경계하며’라는 학술논문을 썼다. 나경훈 교사는 “학생들은 정치적 신념을 내면화하거나 이를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또래를 모방하거나 일상적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 ‘밈’(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나 신조어)을 활용하고 있었다”며 “이들에게 정치혐오 밈은 의사소통의 ‘추임새’ 같은 역할을 하며, 유머 코드로 소비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정치적 의미는 점차 희석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정혜진 교사는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남학생만 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남자아이들의 성장 환경과 관련 있어 보인다. 책 ‘불안 세대’(이충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24)를 쓴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책에서 “전통적으로 남자아이들은 싸움에서 누가 이기는지, 혹은 누가 폭력적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를 모욕할 수 있는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지위를 결정해왔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혐오·비하는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그 표현도 다양해지고 있다. 교사들이 그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밤티’라는 말이 있어요. ‘라인플레이’라는 아바타 게임 이용자 한 명의 이름이 ‘밤티’였는데, 어떤 이용자가 ‘밤티님 죄송한데 진짜 개×같이 생기셨네요’라고 말한 거예요. 그게 온라인에서 유행하면서 지금 ‘밤티’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못생긴’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어요. 이거, 교사들이 못 따라가요.” 강민정(가명) 교사의 말이다.

2025년 9월25일 서울 구로중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존중 피켓 캠페인’을 열어 혐오 반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지금까지 말한 일들은 학생 개인이 마음을 돌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은 사회정서학습 핵심 역량을 구성하는 하위 기술 중에는 자신의 사고방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을 알아차리고 점검할 수 있는 능력, 우리가 문화·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별 고정관념, 학벌주의 편견, 사회·경제적 편견 외에 나이, 출신 지역, 외모, 장애, 성적지향, 가족 형태에 대한 편견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도 포함돼 있다.(책 ‘교사를 위한 사회정서학습의 모든 것’)
이해주 교사는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단지 개인 성향의 충돌이 아니라 사회의 위계와 힘의 논리, 차별 구조가 반영된 경우도 많다”며 “혐오표현, 조롱, 비하 발언 등은 개인의 감정 조절 실패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적 담론, 미디어 환경, 또래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학령기에 성역할 고정관념, 차별적 규범, 위계적 관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자리 잡는가는 이후 삶의 태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사회정서교육은 비판적 사고에 해당하는 이러한 역량 증진 내용을 누락하고 있다. 교육부는 “‘한국형 사회정서교육’ 프로그램은 최근 우리나라 학생들의 마음건강 지표(스트레스 인지율, 자살률 등) 악화 상황을 고려해 위기 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의 마음건강 증진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으로 개발·도입한 것”이라며 “사회문제 인식 및 해결을 위한 포괄적 접근보다는 학생 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관계 형성을 통한 긍정적인 성장을 돕기 위한 보편적 마음건강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회정서교육이 지금처럼 학생 개인의 감정과 정서에만 중점을 둔다면 그것이 목표하는 학생의 긍정적인 성장과 정신건강 증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교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성평등교사모임 ‘아웃박스’의 김수진 대표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다룰 때 그 원인이 되는 사회 불평등 구조를 다루지 않고 단순히 학생 개인이 마음을 돌봐야 하는 문제, 마음가짐에 따라 해소할 수 있는 문제로 이야기하는 ‘불안의 개인화’가 지금의 사회정서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라며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상황과 마주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분노의 감정이 건강한 반응일 수도 있는데, 그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 분노의 감정만을 해소하는 쪽으로 사회정서교육이 이뤄질까봐 걱정된다”고 밝혔다.
아이들만 노력해서 될 일도 아니다. 학교, 보호자, 지역사회 등 아이들을 둘러싼 교육공동체 모두가 차별과 혐오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정서학습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를테면 주양육자를 여성으로만 가정하거나 이성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을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여기는 발화랄지, 이분법적 성별에 기인한 이성애 중심 발화, ‘여자애가’ ‘남자애가’로 시작하는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발화를 어른들이 하지 않아야 한다.
“학교, 보호자, 지역사회 모두 학생들 삶에 큰 영향을 주니까 모두 뭉쳐서 혐오에 대항해야 해요. 교사 개인의 감수성에 의존할 일이 아니에요. 세상을 본격적으로 탐구해가는 학령기에 성정체성, 성역할, 가족 형태 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뒷받침하는 교육과정이 선행돼야 해요.” 최지민 교사가 말했다.
정혜진 교사도 공감했다. “제일 이상적인 건,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어른이 줄어드는 것이겠죠?”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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