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다 새가 되것네 사람 그리워 보대끼다 죽으면 새가 된다네(…) 쭉쭉쭉쭉 우는 멧비둘구가 되끄나 유자밭 가생이 쭈밋쭈밋 도요새가 되끄나 눈꾸녘에 불 쓴 붱이 되끄나”(‘치술신모, 그리움의 신들’ 일부분)
2024년 1월2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의 한 사무실에서 시집 <그라시재라>(이소노미아 펴냄, 조정 지음) 읽기 모임이 열렸다. ‘그라시재라’는 ‘그러믄요, 그럴 수밖에요’라는 상대를 깊게 공감하는 전라도 서남 지역 말이다.
이날이 다섯 번째로 조정 시인이 인근 주민 6명과 함께 돌아가며 시를 소리 내어 읽고 느낌을 공유하는 자리다. 시집 속 46편 시는 모두 60여 년 전 전라도 서남 지역 여성들의 대화로만 쓰였다. 조 시인은 이 시집으로 2022년 8월 제22회 노작문학상을 받았다.
눈으론 무슨 말인지 몰랐던 낯선 활자였지만, 입 밖으로 내뱉자 상황이 달라졌다. 팔딱팔딱 살아 있는 말, 방언의 힘일까. 고양시 토박이 최은영씨는 “이야기하면서 치유받고, 남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치유받고 그런 상황이란 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남 영암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베수건 한 장’을 함께 낭독했다. “큰 동상 보듬고 불러보고 작은 동상 보듬고 불러보고 죽은 중 암서도 혹시 숨이나 붙어 있으까 허고/ 베수건 한나 들고는, 그리 험허게 죽은 중은 몰랐응께 한나만 들고 갔재”
제주도 출신인 진명희씨는 “저는 글쓰기 교실을 하는데, 이 시를 아이들과도 읽어보고 어르신들하고도 읽어봤는데, 안 우는 사람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현주씨는 “(이 시의) 생기를 따라 읽다보면 ‘입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라시재라’라는 말은 내가 평정과 평화를 찾아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전쟁통에 망나니들을 피해 떠나고 싶어도 동네를 못 떠나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 같아요. 이 ‘그라시재라’는 뭐라고 다른 언어를 덧붙일 수 없는 호흡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저는 표준어가 살기 위해 편리하게 사용하는 사회기능어라고 생각해요. 표준어 문장은 머리가 해석하잖아요. 그런데 자기 고장 ‘입말’은 완전히 달라요. 몸으로 해석하죠. 사용하면 자기가 겪었던 상황 등이 축약돼서 느껴지는 게 자기 지역말인 것 같아요. 이런 말이 없어지는 건 엄청난 손해죠. 이 입말이 살아나야 사람들이 비로소 더 풍성한 생명을 얻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조정 시인이 덧붙였다. 몇 마디 더 나눴다.
―일부 단어·구절이 방언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시집 전체가 입말로 된 방언으로만 구성됐네요.
“처음에 지문을 표준어로 쓰고 대화만 사투리로 써봤어요. 진짜 너무 이상한 거예요. 느낌이 하나도 안 살고요. 표준어는 단단한 말이잖아요. 지역말은 살아 움직이지만 누르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죠. 표준어 가운데 넣으니까 전라도말이 감옥에 갇힌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문을 전라도말로 썼어요. 이번엔 너무 어수선했어요. 차라리 틀을 벗겨버리자 해서 지금처럼 대화만 가지고 쭉 이어가는 방식으로 했죠.”
―채록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끄집어낼 수 있었나요.
“어릴 때 영암에서 할머니들에게 재밌는 얘기를 늘 듣고 컸어요. 그 말들을 버리기 너무 아깝잖아요. 다 집어넣고 싶었죠. 전라도말이 좋으니까. 편린으로만 남은 기억이나 옛날 분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저희 부모님께 여쭤본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시는 채록과 다른 것이라, 기억된 모티브가 가진 뜻과 아름다움을 문학이 되게 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그 말의 맥락을 재구성해야 해요. 평소 들었던 흩어진 말을 뽑아서 어떤 형태를 만든 거라 할 수 있겠죠. 그런 말을 어떻게 적절히 맥락에 어긋나지 않게 할지 이런 부분을 시를 쓸 때 제일 많이 신경 썼던 거 같아요.”
―서남 전라도 방언, 그중에서도 여성이 쓰던 말에 집중했습니다.
“이 시집을 읽어보면 페미니즘의 뿌리, 그러니까 가부장제 속에서도 이웃을 따뜻하게 보듬는 공공성 같은 걸 포기하지 않고 지켜가는 여성들을 볼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담고 싶었어요.”
―전라도말을 잘 몰라도 시가 잘 읽힙니다.
“용어는 다르지만 언어 구조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외국어는 아니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다른 지역 분들이 이 시를 이해할까 생각했는데 서울 토박이인 편집자부터 타지역 출신 독자까지 충분히 읽어내는 것을 보고 기쁘기도 하고 조금 신기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혼인이나 경제활동을 통한 이주 등으로 말의 섞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 드라마나 영화, 이웃과의 교류에서 타지역 언어를 들은 것도 용어나 어조 파악에서 듣는 공부가 이미 된 것 같습니다.”
―시 속 정서가 전라도말, 즉 지역어를 통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지역어가 공명하는 소리가 커요. 그 울림이 오묘해요. 아름답다고 할 수도 없고 처절하다고만 할 수도 없고… 딱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그 공명이 사람들에게서 나오죠. 그 공명이 전라도에서는 판소리고, 이 시집 안에서는 여성들의 이야기예요. 그냥 표준어 문장을 읽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는 그 공명을 지역어가 없어지면 우리가 놓치는 거죠.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 있어요. 북한말도 들으면 정겹잖아요. 백석 시를 읽으면 잘 모르는 북한 풍속이 우리한테 확 다가와요. 지역어를 놓치면 그 문화를 다 놓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국가가 나서서) 지역어를 억압하는 건 아닌데, 사회적 압력으로 잘 안 쓰게 되는 같아요. 전략적으로도 이건 좋지 않죠. 지역말이 사라지면 나머지 문화도 다 사라지니까.
표준어 교육이 시작되면서 표준어가 전 지역을 장악하는 형태잖아요. 이제는 사람들의 정서까지 표준화된 거 같아요. 표준화는 딱 떨어지고 편하지만, 그 대신 지역에 있는 풍부한 뉘앙스의 어휘는 많이 잃어버리잖아요. 그러다보니 표준어 자체도 너무 빈약해지는 거 같아요.”
―지역어를 많이 안 씁니다. 예전처럼 다시 사람들이 쓰는 말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는 진짜 학교 커리큘럼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충남 서산에 계신 한 선생님이 <그라시재라>를 읽고 쓴 글을 봤어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시간씩 서산 말만 쓰도록 했대요. 처음엔 아이들이 어색해했는데, 몇 번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서산 말을 잘하더래요. 그동안 들은 게 있으니까 금세 입에서 나오죠. 그 말이 얼마나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지를 아이들이 알게 된 거죠. 우리도 고향에 가서 고향 말을 써보면 이게 얼마나 나를 편안하게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인가 알게 되잖아요. ‘아, 이게 가능하구나.’ 교사나 교육기관이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에 따라 (지역말을 되살리는 게) 가능하겠구나 (생각했어요.)”
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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