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로 애교 발산, 오빠야~.” “오빠야~ 하는 거 귀여움.” “사투리 쓰는 여자랑 만나보고 싶다.”
‘사투리 쓰는 여자’를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는 말들이다. 경상도 출신 여성 아이돌에게 ‘오빠야~’라는 사투리를 해보라는 중장년 남성 출연자들의 주문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종 들린다. 2024년 1월26~28일 <한겨레21>과 계명대 여성학연구소가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투리와 젠더’ 관련 경험을 묻는 말에도 비슷한 응답이 나왔다.
“주변에서 ‘오빠야~’ 한번 사투리 해보라는 소리를 하는데 대상화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정새한, 계명대 사회학과 여성학 전공 박사과정)
장지은 계명대 여성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사투리가 주류인 지역에서 남성의 사투리는 지배자의 언어, 권력의 표상, 동질감의 표현이지만 젊은 여성들이 쓰는 사투리는 섹슈얼리티와 연결되곤 한다. 미디어도 여성의 사투리를 동등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애교’로 정의하면서 미성숙하고 성애화된 언어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사투리를 핑계로 가부장적 담론을 강화하거나, 사투리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도구로 쓰기도 한다. 장 연구원은 “ ‘아지매’라는 호칭은 ‘아주머니’를 일컫는 구수한 사투리 같지만, 최근엔 ‘성적으로 밝히는 여성’이라는 의미를 담아 ‘야동’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정 태도나 성격 등을 딱 꼬집어 여성만을 겨냥해 부정적 관념을 만드는 사투리도 있다. 허경진(대구 강북중학교 교사)씨는 “사전적으로 ‘낭창하다’라는 말은 ‘성격 따위가 밝고 명랑해 구김살 없다’는 뜻인데, 대구에서는 이 말이 ‘맹하다’ ‘생각 없고 눈치 없다’는 의미로 여성들에게 주로 사용된다. ‘애살’이란 말은 의욕적이라는 뜻인데, 여성에게 ‘샘 많고 승부욕 강한 영악한 행위’라는 의미가 덧붙여져 사투리로 사용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사투리는 ‘표준’이나 ‘중심’의 언어가 아닌 변방의 언어다. 사투리를 쓰는 여성은 애교가 철철 흐르고 귀엽거나, 무식하고 낙후된 여성으로 여겨진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인 ‘밀양 할매’에게 용역들은 무자비하고 원색적인 성적 욕설, 폄하, 무시, 조롱의 말을 쏟아내며 저항하는 할매들을 주저앉히려 했다. 명백한 여성혐오(미소지니)적 폭언이었지만 할머니들도 만만치 않았다.
경남 밀양 탈송전탑·탈핵 운동의 이야기를 다룬 책 <전기, 밀양-서울>(김영희 지음, 교육공동체벗 펴냄, 2024년)을 보면 섬찟한 일화가 나온다. 어느 날 한국전력 직원과 용역들이 전기톱으로 나무를 베려 하자, 할머니들이 톱 앞에 자기 발을 집어넣었다. 인부들이 실실 웃으며 “발도 비까?”(발도 벨까)라고 약 올리듯이 묻자 할매들은 가차 없이 응답했다. “발 비라.”(발 베어라.)
30년 전부터 밀양에서 구술 기록 작업을 해온 김영희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는 “남자들의 강한 사투리는 다분히 ‘호모 소셜’(배타적으로 유지되는 남성 동성 사회) 내부를 향한 인정투쟁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농성장에서 사투리는 저항적 언어로 쓰였지만 ‘밀양 할매’는 운동가로서 호명되기보다 ‘돌봐야 할 귀여운 할머니’로 여겨지곤 했다. 사투리 쓰는 여성의 표상인 ‘욕쟁이 할머니’ 사례에서 보듯, 사투리를 쓰는 여성은 배운 것 없고 순수한 존재로 완성된 이미지를 가진다. 그것이 오히려 대상화한 감각일 수 있다. 사투리를 유독 고고학적 유물처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한편으로 지역민을 고착화하는 시각일 수 있다. 방언은 결국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다.”(김영희 교수)
시대 변화에 아랑곳 않고 옛것을 옹호하며 사투리를 고수하는 여성의 모습은 세태 비평에도 활용됐다. 1958년부터 여성지 <여원>에 연재됐던 만화 <왈순아지매>의 주인공이 대표적이다. 왈순아지매는 경상도에서 온 사투리 쓰는 아주머니로, 무식해서 용감하고 토속적인 여성으로 그려져 서구문화를 추수하는 당대 풍속을 비판하면서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데 적극 개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이선미, ‘1950년대 젠더 인식의 보수화 과정과 왈순아지매’, 2009년)
1994년부터 2015년 1월까지 방송된 마산MBC 라디오의 시사코너 <아구할매>와 부산MBC 라디오 시사비평 프로그램 <자갈치아지매>에도 사투리 쓰는 여성이 등장한다. 마산 아귀찜의 알싸한 맛, 자갈치시장의 매서운 맛을 연상시키지만 이 ‘할매’ ‘아지매’들은 정치적으로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순한 맛’으로 사실상 뚜렷한 입장 없이 푸근하고 순수한 느낌을 줬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2012년), <응답하라 1994>(2013년)에서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첫사랑 소녀’도 비슷하다. 여성 주인공들은 털털하고 과격한 것 같지만 사실은 정치적·경제적 민주화를 향한 어떤 시대적 질문도 응답도 없었다. 체제에 도전하지 않고 탈정치적이면서 가부장적 체제에 순응적인 여성들은 ‘순수의 시대’를 상징했다. 그 시절 ‘사투리 쓰는 귀여운 소녀’는 커서 ‘표준말 쓰는 성숙한 미인’이 된다.
여성은 왜 사투리를 빨리 버릴까? 사회언어학자 백승주 전남대 교수(국어국문학)는 <미끄러지는 말들>(타인의사유 펴냄, 2022년)에서 표준어가 누리는 ‘위세’(prestige)와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집단이나 개인은 언어시장에서 더 힘이 센 언어의 위세를 빌려 자신의 약함을 벌충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첫 번째 혀’를 버리고 ‘표준형’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목소리를 사회가 듣지 않기 때문이고, 남성들이 비표준형을 쓰는 이유는 (동성 사회의) 유대감을 확인하면서 사투리가 가진 숨겨진 위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여성들이 사투리를 버리고 표준어를 빨리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언어자원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주현영 인턴기자’ 사례에서 보듯, 미숙한 존재가 쓰는 결손 언어로서 여성의 언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여성은 표준어의 위세를 빌리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힘들고, 남성은 비교적 절박함이 덜하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백 교수는 “결혼이주 여성 가운데 지역 사투리를 배우지 않고 표준어를 쓰려는 사례를 분석한 질적 연구가 있었는데, 이를 보면 여성들이 표준어가 가진 언어적 위세를 빌리려는 의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억수로 높대이 저마 지 혼자 툭 불거져서 머 우짤 끼라고 흙 다 뭉개고 산목심 다 주째삐고 조래 빳빳이 고개 쳐들고 나라님 같은 고압 자세로 와 자꼬 올라가쌓노/ (…) / 내 목심 팍 집어넣을 구디 팠다 아이가 마 호박 꼭지가 확 돌아삔기라 쇠줄 칭칭 감고 밧줄 꽁꽁 짜매고 마 깜깜한 흙구디 호박씨가 돼삐리기로 작정한 기라 새끼 매단 탯줄 같은 호박 꼭지 다 비틀어버리고 나믄 느그는 누구 젖 빨고 살 끼고”(김해자, <집에 가자>, ‘밀양아리랑’ 중)
차지고 구성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사투리 입말을 접신하듯 받아서 시를 써온 김해자 시인은 여성의 사투리를 “물 같은 언어”라고 표현했다.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시골에서 남성들이 강한 어조의 사투리를 구사한다면 여성들은 웅얼웅얼 물처럼 들릴 듯 말 듯 하면서도 스리슬쩍 여우고개처럼 빙글빙글, 뱀사골이나 용고개처럼 구불구불한 원형, 원처럼 감아서 돌아가는 말투를 가졌다”고 했다. “둥글둥글하게 원형으로 굴러다니는 호박,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호박 끄트머리에 달린 ‘호박 꼭지’가 중력을 견디는 것을 보면서 밀양 할매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십 년 ‘그림자 노동’을 했던 여성 농민, 여성 노동자들은 도처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하는 게 당연한 존재였다. 그들이 권력과 탐욕의 행태를 ‘억수로 높대이’ 같은 한마디로 일갈하는 것, 투쟁 현장에서 땅과 밀착한 생활언어로 생생한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볼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 시인은 사투리를 “리듬 있는 언어, 노래 같은 언어, 생명체와 붙어 있는 언어”라고 했다. <니들의 시간>(창비 펴냄, 2023년), <해자네 점집>(걷는사람 펴냄, 2018년) 등에서는 경상도말을 일부러 피지배 언어로 묘사했다. “정치적으로 경상도 사투리는 지배자의 언어, 전라도 사투리는 피지배자의 언어로 스테레오타입화돼 있지만 지배-피지배 언어의 차이가 없다는 것,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김 시인은 말했다. “문자가 추방해버린 세계의 언어”를 가져와 의도적으로 근현대사 사건과 사투리를 섞어 쓴다는 얘기였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언어, 고래등 같은 언어 속에 밀려나는 슬래브 지붕 같은 언어, 최소한의 목소리를 빼앗기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말이 삶을 살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묻고 싶다. 이분법적 편가르기의 언어가 아니라, 성난 감정을 표출하는 파탄의 언어가 아니라, 물처럼 흘러갈 언어, 삶과 땅에 붙은 말들이 필요하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경상도 사투리중에 “확~~~마!!” 라는게 있는데 보통 가부장이 다른 가족구성원에게 하는 말인 것 같다.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는 건 아니지만 위협에 해당하는 정서적 폭력인 것 같다. ‘너는 나와 대등한 존재가 아닌데 어디서 감히 네 의견을!!! 찌그러져 있어!!’ 이런 맥락인 거 같다.
경상도 사투리중에 “내 아를 낳아도”라는 표현도 문제인 것 같다. 요즈음은 이 표현을 많이 쓰지 않지만 과거에 개그프로그램에서 프로포즈용 멘트로 써서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여성의 신체를 재생산의 도구로 보는 시각이고 남성중심의 가계구성을 보여주는 표현인 거 같다.
미디어에서 ‘경상도 사투리=가부장습성이 있는 남성’이라 구분짓고 경계를 강화하는 건 지양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사투리 쓰는 남성은 무조건 가부장적인 남성, 서울말 쓰는 사람은 부드러운 남성으로 지역간/남성간 위계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경상도의 시골마을에서는 결혼한 기혼여성을 지칭할 때 ‘○○띠기’라고 부른다. 표준어로 바꾸면‘○○댁’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이걸 어르신들은 택호라고 하더라. 택호의 뜻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이름을 피하고 벼슬 이름이나 시집 장가간 곳의 땅 이름을 붙여서 그 사람의 집을 부르는 이름. 때로는 관직명이 택호가 될 때도 있고, 유명한 선조의 시호를 택호로 사용하기도 함’이라고 되어 있지만 남성 어르신들은 그냥 서로 이름을 부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본인의 이름으로 호명되지 못한다. 내 어머니 경우에도 이름으로 불리는게 아니라 마을에서 ‘신지띠기’(신지댁)라고 불렸다. 청도군에 신지리라는 마을에서 시집을 와서 그렇게 불렸던 것. 차별적인 호칭으로 느껴진다.
-익명
‘가시나’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이분법적으로 사고를 해보면 ‘가시나’에 대응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가시나’는 젊은 청년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거나 아주 어린 여자 아이에게도 사용한다. ‘저 놈의 가시나’, 이런 식이다. 청년 남성이나 어린 남자 아이를 일컫는 비슷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한편 가수 선미의 ‘가시나’라는 노래에서 ‘가시나’는 중의적으로 쓰인 거 같고, 젊은 여성의 주체성이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성수진(계명대학교 사회학과 여성학전공 박사과정)
주변에서 경상도와 부산 여성들에게 ‘오빠야~’한 번 사투리 해보라는 소리를 할 때 대상화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정새한(계명대 사회학과 여성학전공 박사과정)
‘서울로 올라간다,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서울과 수도권 중심적인 생각.
‘블루베리스무디’는 경상도 사람이 말할 때 희화화 되는 용어.
-유경화(계명대 여성학과 석사과정)
부산 사투리 중에 ‘딸딸이’는 슬리퍼를 뜻한다. 남성의 자위를 뜻하는 은어로서 ‘딸딸이’라고 발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를 접할 때 항의하면 “슬리퍼를 말하는데 왜 예민하게 반응하냐”며 놀리는 그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지금도 그 단어를 내뱉으며 음흉하게 웃던 남성들의 표정들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불쾌한 경험으로 자리잡았음이 분명하다.
“강사님 강의는 다 좋은데 사투리 사용이 너무 없어 보여요. 표준어를 사용 하시는게 어때요?” 몇 년 전 부산지역 교직원 대상으로 폭력예방교육을 할 때였다. 선배 입장에서 조언한다며 어떤 강사가 나의 사투리 사용을 지적했다. 나는 부산 사투리를 사용하는 강사다. 나에게 사투리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의미 전달만 정확하다면 내 사투리가 강의에 부적합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사투리 사용이 부적합하다는 이유는 서울말이 표준어라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그야말로 서울 중심의 발상이다. 왜 지역의 언어는 무시되는가? 우리는 항상 중심이 되는 것과 주변화되는 것에 이의제기를 하고 그 경계를 허물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경계 허물기는 더디기만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 속 ‘말’에서 경계 허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 따지고 보면 서울말도 사투리 아닌가? 우리의‘사투리’가 아직도 부끄러운가? 나는 지금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당당하게 강의하고 있다. “쌤들 이거 억쑤로 중요합니다. 단디 기억하셔야 됩니더!”
-임은경 (계명대 여성학전공 박사수료)
*여성 특정 비난과 성희롱
사전적으로 낭창하다의 표현은 ‘성격 따위가 밝고 명랑하여 구김살이 없다’는 뜻인데, 대구에서는 이 말이 ‘맹하다, 생각없고 눈치없다’는 의미로 여성에게 주로 사용된다.
‘애살’이라는 말은 ‘의욕적’이라는 말의 의미인데, 여성적 특질이라는 사투리로 사용될 때는 ‘의욕적’이라는 뜻보다 ‘샘많고 승부욕 강한 영악한 행위’라는 의미가 덧붙어 사용된다.
-허경진(중학교 교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한덕수 ‘거부권’ 행사…양곡법 등 6개 법안
권성동·한덕수, 롯데리아 ‘권’모술‘수’ 세트 [그림판]
김병주 “선관위 30명 복면 씌워 납치하는 게 정보사 HID 임무”
거부권 쓴 한덕수 “헌법정신 최우선으로 한 결정”
[영상] 김문수, “내란공범” 외친 시민 빤히 보면서 “경찰 불러”
[속보] 법원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 취소” 판결
“다른 언론사 하세요”… 권성동, MBC 기자 질문 노골적 무시
민주 “탄핵 기간 빈집에 통지서”…‘이재명 재판 지연’ 주장 반박
[단독] 방심위 시사보도 신속심의 64%는 국힘·공언련 민원
‘야당 비판’ 유인촌, 결국 사과…“계엄은 잘못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