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신발, 생활 폐기물이 오랫동안 뒤섞여 쌓인 쓰레기 산. 땅을 빈틈없이 메운 구더기와 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귀 떼, 수도 없이 날리는 파리. 타이 아라냐쁘라텟시에 있는 쓰레기 매립지의 모습이다.
이 매립지 부근에는 롱끌르아 중고시장이 있다. 이 시장을 포함한 타이 여러 지역에서 20t에 달하는 쓰레기가 매일 이 매립지로 모인다. 한겨레21 취재팀이 서울 중구의 한 의류수거함에 넣은 신발도 경기도 포천과 양주를 거쳐 인천항에서 배를 탄 뒤 이곳까지 온 것으로 추정된다.
공간에서 진동하는 역한 냄새를 겨우 참아가며 한국에서 온 의류를 10여 분 찾았을 때였다. 이 공간과는 이질적인 어린아이와 조우했다. 이곳을 관리하는 노동자의 자녀로 매립지 입구에 마련된 작은 판자 공간에서 지내는 아이다.
아이는 외국인이 이곳까지 온 게 신기한지, 호기심 섞인 눈망울로 취재진을 멀리서 바라보더니 이내 취재팀 쪽으로 걸어왔다. 바닥에 구더기가 가득한 터라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레 걸었던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망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발보다 큰 신발을 신은 탓에 종종 신발이 벗겨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땅을 딛고는 걸음을 이어갔다. 나는 구더기가 많은 땅을 아이가 혹여 맨발로 디딜까 싶어 마음을 졸였지만, 정작 아이는 덤덤했다. 고작 3~4살로 보이는 이 아이에게 쓰레기 매립지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 아이를 향한 시선을 쉽사리 거두지 못했다. 아이의 눈망울에는 알록달록한 자연이 아니라 구더기와 파리가 가득 메운 공간, 거친 들개와 까마귀 떼, 하늘로 치솟는 쓰레기 산이 어렸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아이에게 ‘세상’은 ‘쓰레기 산’이 전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곳과 3500㎞ 떨어진 한국에서 보내온 의류도 쓰레기가 되어 이 쓰레기 산의 일부로 묻혀 있다.
인도에서는 아이가 밟는 세상이 그 자체로 몸을 해치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옷이 그 원인이다. 많은 한국 옷이 인도로 수출된다. 취재팀은 이동하는 헌 옷을 따라 인도 파니파트로 갔다. 파니파트는 중고의류를 수입해 재활용하는 산업이 발달해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몸에 해롭다. 특히 옷을 실로 만들기 전에 표백하는 공정에는 독성 물질이 든 화학 용수가 쓰인다.
취재팀이 표백 공장에서 만난 노동자 할림은 가족과 함께 공장 안 오두막에서 산다. 할림의 오두막에서 6살 파라빈, 5살 라이언, 3살 하마라, 생후 9개월 된 매핵을 만났다. 아이들은 화학 용수가 사방에 흐르는 표백 공장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녔다.
내가 평소에 입고 신다가 쉽게 버린 의류와 신발이 쓰레기 산을 더 높이 쌓고 있다. 재활용 과정에서도 많은 화학물질이 그곳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매립지와 표백 공장에서 만난 아이의 눈망울이 질문을 던진다. 어른이 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을까.
파니파트(인도)=사진·글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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