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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만에…다시 부치는 편지

2025년 6월10일 박종철 열사 38주기에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재개관
등록 2025-01-10 21:01 수정 2025-01-12 12:28
1987년 스물두 살이던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 용산구 갈월동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문에 달린 외시경을 통해 본 내부 모습. 일반적인 문에 설치된 외시경과 달리 반대 방향으로 설치돼 문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1987년 스물두 살이던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 용산구 갈월동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문에 달린 외시경을 통해 본 내부 모습. 일반적인 문에 설치된 외시경과 달리 반대 방향으로 설치돼 문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가객’ 김광석의 유작 노래로 유명해진 정호승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새벽편지’에 실린 ‘부치지 않은 편지’는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며 쓴 작품으로 알려졌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 열사는 전날 경찰에 강제 연행돼 서울 용산구 갈월동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거짓 해명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고문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이재오)는 김근태·박종철 등 수많은 민주 열사들이 갖은 고문과 탄압을 겪었던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탈바꿈해 2025년 6월10일 개관한다. 1976년 10월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이곳은 용산구 갈월동 98-9에 위치하지만, 근처에 남영역이 있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렸다. 폭력과 인권 유린의 현장을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1층 뒤쪽 출입구에서 취조실이 있는 5층 복도로 곧바로 연결되는 나선형의 철제 계단. 연행자들은 얼굴에 검은 포대 자루 같은 것이 씌워지고 몸은 밧줄로 묶인 채로 끌려가 방향 감각과 고도 감각을 잃고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

1층 뒤쪽 출입구에서 취조실이 있는 5층 복도로 곧바로 연결되는 나선형의 철제 계단. 연행자들은 얼굴에 검은 포대 자루 같은 것이 씌워지고 몸은 밧줄로 묶인 채로 끌려가 방향 감각과 고도 감각을 잃고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


38주기 박종철 열사의 추모제(1월12일)를 앞둔 2025년 1월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도움을 받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둘러봤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들머리를 지켰던 육중한 철문이었다. 한밤중에 눈이 가려진 채 강제 연행된 인사들은 기계 장치로 열리는 육중한 철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듯하고 탱크 소리 같아 군부대로 끌려온 거로 알았다고 밝혔다. 연행자들은 건물 정면의 주 출입구가 아닌 뒤쪽 쪽문으로 들어와 나선형의 철제 계단을 통해 취조실이 있는 5층 복도로 곧바로 이동했다. 71개 계단을 이날 기자가 카메라 두 대를 멘 간단한 차림으로 오르더라도 1분여가 걸렸다.

검은색 벽돌의 ‘남영동 대공분실’ 정면 모습. 조사가 이루어지던 5층 창은 폭 300㎜의 좁은 수직창으로 돼 있다. 탈출 혹은 자해 시도 방지 목적이다.

검은색 벽돌의 ‘남영동 대공분실’ 정면 모습. 조사가 이루어지던 5층 창은 폭 300㎜의 좁은 수직창으로 돼 있다. 탈출 혹은 자해 시도 방지 목적이다.


검은 포대 자루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밧줄에 묶인 채 수사관들에게 끌려 오르내렸을 그들을 생각하니 아득했다. 그렇게 도착한 5층에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15개 조사실이 배치돼 있다. 같은 크기의 문에 같은 색이 칠해진 조사실 문은 서로 엇갈려 배치돼 맞은편 조사실을 볼 수 없고, 오직 비명만 오갔을 것이다. 양쪽 옆을 빼고 박 열사가 숨진 509호실을 비롯한 조사실의 창은 폭 300㎜의 좁은 수직 창으로 돼 있다. 탈출 혹은 자해 시도 방지 목적이다.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을 꾀해 취조와 고문에 최적화됐다.

‘남영동 대공분실’ 들머리를 지켰던 육중한 철문 일부를 옛 테니스 터로 옮겨 공공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들머리를 지켰던 육중한 철문 일부를 옛 테니스 터로 옮겨 공공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지 38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정권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많은 이에게 군부 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많은 이의 피와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지속적인 경계와 노력이 필요함을 목도하고 있다. 다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할 때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510호 천장 속에서 발견된 마이크. 마이크는 민주화운동기념관 조성 공사를 진행하던 2022년, 대공분실 구조보강 공사를 위해 천장을 일부 걷어내고 작업하던 중 510호를 비롯한 5개 조사실에서 발견됐다. 아이티브이(ITV)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조사실의 발언과 행동은 샅샅이 기록됐다.

‘남영동 대공분실’ 510호 천장 속에서 발견된 마이크. 마이크는 민주화운동기념관 조성 공사를 진행하던 2022년, 대공분실 구조보강 공사를 위해 천장을 일부 걷어내고 작업하던 중 510호를 비롯한 5개 조사실에서 발견됐다. 아이티브이(ITV)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조사실의 발언과 행동은 샅샅이 기록됐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15개 조사실이 배치돼 있고 같은 크기 문에 같은 색이 칠해져 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15개 조사실이 배치돼 있고 같은 크기 문에 같은 색이 칠해져 있다.


 

사진· 글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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